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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경 May 06. 2022

이상한 세계로 말려들다

<블루 벨벳> 리뷰 / 전주 국제영화제 연상호 감독 추천작




블루 벨벳 (Blue Velvet, 1986)

“이상한 세계로 말려들다”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장르 : 드라마, 스릴러, 미스터리

러닝타임 : 120분

감독 : 데이빗 린치

출연 : 카일 맥라클란, 이사벨라 로셀리니, 데니스 호퍼, 로라 던

개인적인 평점 : 4/5


블루 벨벳 줄거리


미국 작은 도시에 사는 순수한 남학생 제프리(카일 맥라클란)는 산책 중 잘린 귀 한쪽을 발견하고 윌리엄 형사(조지 디커슨)에게 사건을 신고한다. ‘블루 벨벳’을 노래하는 매력적인 여가수 도로시(이사벨라 로셀리니)가 사건의 용의자로 의심받자 제프리는 묘한 끌림과 호기심으로 그녀의 아파트에 몰래 숨어들어가지만 곧 들키고 만다. 그때, 갑자기 정체불명의 남자 프랭크(데니스 호퍼)가 들이닥쳐 옷장에 숨게 되고 이내 그곳에서 충격적인 장면을 엿보게 되는데...



2022년 제23회 전주 국제영화제는 22회에 이어 올해도 <J스페셜: 올해의 프로그래머> 섹션을 진행했다. <J스페셜: 올해의 프로그래머>는 프로그래머로 선정된 영화인이 직접 영화를 선정해 하나의 섹션을 꾸며나가는 프로젝트로 올해의 프로그래머는 애니메이션과 실사의 경계를 허물며 무한한 상상력을 보여주고 있는 ‘연상호 감독님’이 선정되었다.


연상호 감독님은 상영작으로 데이빗 린치 감독님의 <블루 벨벳>과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님의 <큐어>, 가타야마 신조 감독님의 <실종>을 선정했다. 올해의 <J스페셜: 올해의 프로그래머> 섹션은 연상호 감독님이 추천하신 세 작품과 연상호 감독님의 첫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 <돼지의 왕>과 첫 실사 영화 <부산행>을 포함해 총 다섯 편으로 구성되었다. 연상호 감독님은 좋은 기억으로 남은 영화이면서도 젊은 씨네필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한 영화, 그리고 감독님 자신도 영화관에서 본 기억이 없어 꼭 영화관에서 한 번 보고 싶었던 영화를 기준으로 상영작을 선정했다고 언급했다.


(연상호 감독님의 어둡거나 다소 이상한 세계를 그려내는 감성을 좋아하는 팬이라면, 감독님이 추천하신 이 작품들이 대부분 마음에 들것이라 생각한다.)



사심대로라면 당연히 모든 작품을 감상하고 싶었지만, 나는 시간 관계상 <부산행>을 제외하고 <돼지의 왕>, <큐어>, <실종>, <블루 벨벳> 총 4편을 감상하게 되었고, 그중에서 가장 제대로 감독님께 영업당한 영화 <블루 벨벳>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블루 벨벳>은 <이레이저 헤드>, <엘리펀트 맨>, <멀홀랜드 드라이브> 등 보통의, 평범한 세계와 공존하기 힘든 ‘이상한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걸 즐기는 컬트의 대가 데이빗 린치 감독의 전성기를 열어준 영화로 심히 도전적이고 강렬하며 폭력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용감함을 가졌다.


데이빗 린치 감독님의 많은 작품이 그러하듯 <블루 벨벳>은 간혹 당위성을 뒤로 미뤄버리는 느낌을 주지만, 그 순간 떠오르는 물음표들이 만들어내는 질문이 결국 이 영화의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이상한 세상


<블루 벨벳>은 평소엔 보지 못하는 이상한 세계와 완전한 악인과 선인. 그리고 그 세계를 만나기 위해 넘어선 안 되는 선을 당당히 넘어가는 악인이자 선인인 주인공의 모습을 그린다.


눈에 띄게 잘 사는 사람도, 못 사는 사람도 없고, 커다란 사건도 일어나지 않아 경찰들도 방심할듯한 평화로운 마을 림버튼. 어느 날 마을의 분위기와 절대 어울리지 않는 무언가가 발견된다. 그건 바로 사람의 귀. 산책 중 잘린 귀를 발견한 주인공 제프리는 귀를 주워 들고 형사 윌리엄에게로 향한다. 제프리는 바에서 공연을 하는 여가수 도로시가 사건의 용의자로 의심받게 되자 그녀의 아파트에 몰래 숨어 들어가기 위해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너무 헐거웠던 계획은 곧장 실패로 이어지고, 옷장에 숨어있던 제프리는 충격적인 장면을 엿보게 된다.


모든 요소들이 각자의 자리에 알맞게 들어차 있는 작은 마을. 마을은 여느 때처럼 평화롭게 굴러간다. 마당에 물을 주고, 이웃과 인사하고, 산책을 한다. 하지만 잘린 귀가 발견된 후, 마을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폭력적인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다. 제프리는 마을과 어울리지 않는, 지금껏 본적 없던 것(잘린 귀)을 보며 그것과 얽혀있을 새로운 이야기를 탐색할 생각에 두근거림을 느낀다. 그는 “만약 그녀(도로시)가 범인이라면!?”하는 가정하에 혼자만의 수사 계획을 펼쳐나간다.



이상한 사람들


영화가 시작하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예쁜 빨간색이네”였다. <블루 벨벳>이라는 제목과 다르게 영화가 시작한 후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색은 빨간색이다. 주로 열정과 열망, 욕정과 집착을 상징하는 색깔 말이다.


제프리는 흰 울타리와 초록 잔디 같은 정갈하고 깔끔한 색들 사이에 숨어있는 빨간색처럼 평범한 일상에선 들여다볼 일이 없었던 마음 이면에 숨어있던 비정상적인 궁금증과 욕정을 느끼고 사건에 접근한다.


하지만 평소에 이런 사건을 접해본 적 없는 제프리는 아주 쉽게 발각되고, 한순간에 이상한 세상과 사람들을 목격하게 된다. 역하게 느껴질 만큼 질이 안 좋은 범죄자 프랭크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상황들. 폭력에 그대로 노출되어있는 여가수 도로시까지. 보통의 경우라면 학을 떼며 도망을 가야 정상이겠지만 제프리는 그 상황을 조금 더 지켜보기로 결정한다.


누가 봐도 대학생 한 명이 해결하는 건 절대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이지만 제프리는 도로시와의 밀회를 즐기며 자신의 욕정을 풀어가고 그 와중에 동급생인 샌디와의 만남을 이어간다.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겠지만 완전한 악인인 프랭크가 정말 한치의 의심도 없이 미친 인물이라면 제프리는 흐린 눈으로 앞을 보고 있는 이상할 만큼 안일한 인물처럼 느껴진다. 용의자라는 한 마디에 여가수의 집에 침입하고 그녀를 지켜보고, 위험한 걸 알면서도 호기심에 이끌려 행동하고. 하지만 사건을 해결하는 큰 역할을 하는 완벽한 선인도 악인도 아닌 제프리. 그의 존재가 상당히 이상하게 다가온다.



영화에 나오는 세 가지 색


빨강, 파랑, 초록. 영화를 보며 가장 눈에 띄었던 세 가지 색이다. 빨강은 주로 열정, 욕망을 이야기할 때 많이 쓰이며 도로시의 집, 립스틱 (도로시가 사용하며, 프랭크의 광기를 보여주는 장면에서도 사용됨), 구두에서 찾아볼 수 있고 파랑은 도로시의 블루 벨벳 원피스에서, 초록은 도로시의 집에 있는 두 개의 화분과 주민들의 마당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색들이 무엇을 상징하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빨강은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대로 ‘욕정’을 의미하는듯하다. 다만 도로시의 집에 가득 찬 빨간색은 도로시의 것이 아닌 불특정 다수의 것들로 채워진 것 같다는 느낌, 그리고 빨갛게 타오르는 욕정의 색 같다기 보단 타인의 욕정에 그을려버린, 타버린 색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도로시는 프랭크에게 납치된 가족들의 목숨을 위해 무대에 섰고 프랭크가 원하는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프랭크가 원하는 조건들에 맞춰 상황을 연기한다. 도로시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발 끝과 입술에 빨간색을 얹는다. 현재 자신의 마음은 블루 벨벳 드레스의 색처럼 차갑게 질려있으면서 말이다. 분명 내 집임에도 빨간색에 둘러싸인 도로시의 모습은 불안하고 애처로워 보인다.


또한 프랭크는 도로시의 블루 벨벳 드레스를 찢고 벨벳 조각을 갖고 다니는 모습을 보인다. 이 행위는 프랭크가 드레스를 찢듯 도로시의 인생을 무자비하게 찢어놨으며, 그가 벨벳 조각을 들고 다니는 건 조롱과 동시에 도로시가 자신의 소유물임을 알리는 행위가 아닐까.


마지막으로 초록색은 일반적으로 쓰이는 평화, 편안함이자 정상적인 일상, 도로시의 가족(남편, 아이)를 의미하는 듯하다. 제프리는 평소처럼 산책을 하던 중 잔디 사이에서 잘린 귀를 발견한다. 그는 평화롭고 정상적인 일상 사이에 묻혀있던 이상한 세상을 여는 열쇠를 줍는다.


그리고 대부분의 것들이 붉은 끼가 도는 도로시의 집에서 눈에 띄게 다른 색을 가진건 화분 두 개가 유일하다. 도로시가 붉은색(=프랭크)이 지배한 삶을 그럼에도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가족 때문이다. 도로시는 가족을 지키고 함께했던 행복한 일상을 되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삶을 이어간다.


빨강, 파랑, 초록. 이 세 가지 색을 인물에 비유하자면 프랭크, 도로시, 제프리일 것이다. 이상한 세계에 사는 프랭크와 평화롭고 정상적인 세계에 사는 제프리. 빨강과 초록이 서로의 보색인 것처럼 두 사람은 완전히 반대되는 세계에 살고 있다.


추가적으로 하나 더 눈에 띈 색은 분홍색이었다. 분홍색은 샌디의 옷에서 찾아볼 수 있다. 빨간색보다는 연한 분홍색은 ‘약한 욕정’을 의미하는 것 같다. 제프리는 샌디와 도로시. 두 사람의 근처를 맴돈다. 제프리는 도로시와는 진한 밀회를 나누지만 샌디와는 막 애정을 키워나가는, 흔히 말하는 ‘썸’과 비슷한 단계에 멈춰있다.


신체적 접촉과 도로시가 제프리에게 크게 의지하는 모습을 보자면 제프리와 도로시의 사이는 빨간색처럼 느껴지고, 제프리와 샌디의 사이는 그보단 연한 분홍색처럼 느껴진다.



풀지 못한 미스터리가 남은 진짜 미스터리 영화.
과연 이 이야기는 정말 끝난 걸까?


<블루 벨벳>의 장르는 미스터리다. 이 영화는 장르의 이름 그대로, 여러 개의 미스터리를 남긴다. 옐로우 맨이라 불리는 사람의 정체는 언더커버 경찰이었던 건지, 범죄 조직의 끄나풀이었던 것인지. 제프리가 도로시를 보며 느꼈던 감정은 정확히 무엇이었을지. 애정이 맞긴 한 건지. 이 상황이 정말 끝난 게 맞는 것인지, 어색한 움직임의 개똥지빠귀는 무슨 의미인지 등등 되새겨봐도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다.


욕망과 폭력, 선인과 악인. 선과 악을 넘나드는 이상한 인물, 이상한 상황, 이상한 세계. <블루 벨벳>은 정말 이상한데, 이상하게도 관심을 끄는 영화였다.


만일 내가 제프리처럼 일상 속에 숨어있던, 일상과 어울리지 않는 귀를 만나게 된다면?… 그냥 바로 제 3자에게 신고하겠다는 후줄근한 답변을 내놓으며, 길게 이어진 궁금증을 정리해본다.


당사자 외에는 그 누구도 알지 못했던 일상 밑에 숨겨진 끔찍한 폭력과 그 근처에서 불태운 욕정 가득한 상상을 대담하게 풀어놓은 영화 <블루 벨벳>. 추가로 만약 이 영화의 포스터’만’ 보고 관람을 결정한다면, 포스터에선 상상할 수 없는 이상한 세계를 마주하게 될 것이라는 작은 경고를 함께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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