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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경 Mar 22. 2024

시대가 바뀌었다. 나약하고 수동적인 공주는 가라

넷플릭스 오리지널영화 <댐즐> 리뷰, 해석 / 신작, 액션, 판타지 영화




댐즐 (Damsle, 2024)

"시대가 바뀌었다. 나약하고 수동적인 공주는 가라."


개봉일 : 2024.03.08. (NETFLIX)

관람등급 : 12세 관람가

장르 : 판타지, 액션

러닝타임 : 108분

감독 : 댄 메이조

출연 : 밀리 바비 브라운, 닉 로빈슨, 레이 윈스턴, 쇼레 아그다쉬루, 브룩 카터, 안젤라 바셋

개인적인 평점 : 3 / 5

쿠키 영상 : X


넷플릭스에서 가장 많이 스트리밍 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기묘한 이야기>로 전 세계를 사로잡은 배우 ‘밀리 바비 브라운'. 그녀는 시즌 5로 마무리될 예정인 <기묘한 이야기>의 스핀 오프 시리즈 출연을 거절했는데, 그 이유는 바로 “나는 내 인생의 새로운 장을 열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이었다. 인생의 절반 가까이를 연기해온 <기묘한 이야기>의 일레븐이 아닌 밀리 바비 브라운의 삶을 살 것이라는 당찬 포부를 밝힌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그녀는 꽤나 파워풀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또 다른 넷플릭스 영화 <에놀라 홈즈>로 진보적이고 똑똑한 여성 탐정의 모습을 보여줬던 그녀가 이번엔 거침없는 강력한 공주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댐즐>은 물자가 희박한 한 북부지방의 공주 엘로디가 외교를 위해 낯선 왕국 오레아의 왕자와 결혼하게 된 후 벌어지는 이야기다.


엘로디의 아버지(국왕)는 오레아 왕국의 조건이 달린 혼담을 수락하고 엘로디 가족은 긴 여행길에 오른다. 엘로디는 이 결혼과 왕자에 대한 기대를 전혀 갖지 않고 있었으나 막상 도착한 오레아 왕국은 엘로디의 예상보다 훨씬 평화롭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게다가 왕자와도 꽤 말이 통하는 걸 보니 어쩌면 멋진 결혼이 될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이 올라온다.


다음날, 왕족치고는 이상할 만큼 소박한 결혼식이 끝난 오후. 오레아 왕국은 엘로디의 기대감을 단숨에 무너트리고 그녀를 깊은 동굴에 던져버린다. 도저히 살아나갈 구멍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동굴 속에서 엘로디는 스스로 위기를 헤쳐나가기 시작한다.



나약하고 수동적인 공주는 어울리지 않는 시대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공주는 나약하고, 연약하고, 왕자를 기다리는 존재였다. 공주는 여리여리하고 아름다운 겉모습을 가졌지만.. 참 자아도 없고 실속도 없는 캐릭터였다. 하지만 이젠 시대가 바뀌었다. 주저앉아 “도와주세요!”만 외치는 공주와 이런 수동적인 여주인공에 환호할 관객은 없다. 물론 영화만이 아닌 현실에서도 그렇다.


<댐즐>은 딱 이 시대적 변화를 정면으로 내세운 영화다. <댐즐>은 ‘악의 무리에 잡혀간 위험에 빠진 공주와 그녀를 구해낸 용감한 왕자. 그리고 두 사람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대요.’ 같은 케케묵은 클리셰를 단호하게 부숴버린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스스로 장작을 패는 엘로디의 모습을 보여주며 그녀가 연약하거나 수동적인 공주 캐릭터가 아님을 자신 있게 제시하며 시작한다. 그리고 영화 내내 엘로디는 깊은 절망과 공포에 뒹구는 것 대신 소리를 지르고 몸을 움직이며 자신의 감정과 에너지를 거침없이 뿜어낸다.


엘로디는 깊은 어둠 속에서 스스로 등불을 만들고 빛을 향해 걸어간다. 이 캐릭터엔 이제 인생의 새로운 장을 열고, 스스로의 삶을 살겠다는 밀리의 당당한 포부가 그대로 담겨있는 듯하다.



시대적 재물이 되어온 여성


옛날엔 여성이 누군가의 소유가 되거나 재물, 협상의 카드로 이용된 사례들이 많았다. 우리나라를 예로 들면 고려 후기~ 조선 전기쯤 원나라와 명나라의 요구에 의해 여성을 공녀로 바쳤던 역사가 있고, 조선시대에 들어선 궁에 미혼 여성을 바쳤던 궁녀 제도가 생기기도 했다. 또한 가난한 집의 여성들은 팔려가듯 결혼을 하기도 했고 근대에 들어서도 힘이 강한 나라에 끌려가 온갖 수모를 겪기도 했다.


<댐즐>속 공주 엘로디도 국력이 약한 왕국의 공주로서 무거운 책임을 지고 오레아 왕국으로 향한다. 이 정략결혼이 식량과 신부를 주고받는 단순한 물물교환이었으면 그나마 괜찮았을 텐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엘로디는 오레아 왕국이 저지른 과거의 실수(용의 새끼를 몰살함)를 수습할 재물이 되어 동굴에 던져진다. 엘로디를 제외하고도 아르테미스, 파티마, 칼로타, 빅토리아 등 여러 여성들도 엘로디와 같은 방식으로 재물이 되어 목숨을 잃었다. 과거에 칼을 휘두른 사람,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따로 있는데 억울한 여성들만 죽어간 것이다. 엘로디는 이들의 이름을 업고 자신에게 닥친 위험에 적극적으로 대항하고 마침내 진실을 밝히는데 성공한다. 엘로디의 삶에 대한 의지, 앞서 희생된 동지들에 대한 연민과 책임감이 더해져 만들어진 꽉 닫힌 해피엔딩이다.



배우의 매력으로도 커버하지 못한 스토리


배우의 연기와 캐릭터 설정, 초반부에 보여준 의상과 배경 설정, 들려주고자 하는메시지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다. 엘로디가 깊은 동굴에 빠진 이후, 이야기는 점점 더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향한다. 나는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까..’ 기대하고 있었는데 영화가 보여주는 건 공주의 지혜와 의지가 아닌 공주의 힘과 운빨뿐이다. 수상할 만큼 몸을 잘 쓰는 공주 엘로디와 그녀에게만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용. 그리고 따라가기 힘든 엘로디 가족의 애잔한 감정선까지… 초반부에 보여준 매력들을 다 깎아버리는 요소들이 많았다.


재밌다고 말하기도 애매하지만 볼 가치가 없다고 말하기도 애매한.. 킬링타임 용도에 적당한 영화다. 밀리 바비 브라운을 좋아하거나 여성 캐릭터가 이끌어가는 영화를 보고 싶다면 추천, 성글게 엮인 이야기를 싫어한다면 추천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댐즐>을 본 후 다짐한 게 하나 있다.


“진짜 공주가 되려면 운동을 지금보다 더 빡세게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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