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시리즈 <지옥 시즌 2> 리뷰 후기 해석 / 한국드라마 연상호
개봉일 : 2024.10.25. (NETFLIX)
관람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장르 : 공포, 스릴러, 미스터리
감독 : 연상호
출연 : 김현주, 김성철, 김신록, 임성재, 문소리, 문근영
개인적인 평점 : 3.5 / 5
-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된 글입니다.
스포 없는 전반부 (1-3회) 후기는 ↓
https://brunch.co.kr/@hkyung769/436
연상호 감독의 작품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그는 좀비, 귀신, 지옥사자, 초능력자, 기생수 등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별 특별한 것들을 다 그려내는 창조주면서도 자신이 창조한 것들보다 현실에 널려있는 평범한 사람을 더 사랑하는 박애주의자 같다는 것이다.
연상호 감독의 작품은 언제나 사랑을 기반으로 흘러간다. 그는 대체 여기서 어떻게 사랑을 말해야 하나 싶은 상황에서도 열심히 틈을 벌려 사랑을 짜넣는다. 그래서 누군가는 사랑, 신파를 연상호 감독의 가장 큰 흠이라 말하기도 한다. 그래도 나는 언제나 사랑을 놓지 않는 마음이, 그런 마음이 담긴 그의 작품들이 좋다.
정진수의 실종 후 8년. 세상은 날이 갈수록 더 큰 혼란과 공포에 빠지고 사람들은 이 현상을 해석해 줄 만한 힘 있는 자를 원한다. 정부와 새진리회, 화살촉. 그리고 소도는 이 혼란 속에서 각자의 교리를 펼치며 상황의 주도권을 잡으려 노력한다. 이제 중요한 건 신의 힘이 아닌 사람의 힘. 권력이고 평범한 사람들은 모든 해석과 결정을 이들의 손에 맡기며 힘없이 지옥으로 휩쓸려간다.
정진수를 데리고 화살촉 본거지에 들어간 세형은 화살촉의 손에 죽는 순간에 겨우 현재 사회의 모습을 깨닫는다.
‘아무 의미도 없는 것에 의미를 부여해서 서로 죽이는 사람들로 가득 찬 세상’
새진리회엔 시연당한 사람들의 상반신을 모아둔 공간이 있다. 본당에 잠입한 혜진, 성집은 그곳을 지나다 화살촉에게 들켜 격투를 벌인다. 두 집단의 격투가 이어지며 전시장 유리와 보관 케이스가 깨지고 상반신들은 힘없이 바닥에 내리꽂힌다.
정진수와 공포, 믿음이 만든 세상이 딱 이런 모습이다. 종교 단체들은 아무런 설명 없이 갑자기 제시된 시연이라는 현상에 죄, 공포라는 케이스를 덮고 전시한다. 그리고 이득을 위해 싸움을 벌이기 시작하면서 애써 덮어둔 케이스와 시연이라는 현상 자체를 무시하고 내동댕이 친다. 그 결과 세상은 아수라장이 된다.
신은 현실에 지옥을 옮겨놓겠다거나 죄를 심판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고지하며 죄를 읊은 적도 무엇이 옳고 그르다고 말한 적도, 죄를 심판하겠다고 말한 적도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단체의 교리를 믿고 싸우며 스스로 지옥을 만든다. 시연에 사람의 뜻을 개입시키지 않았다면 그저 두려운 자연재해 정도로 받아들여졌을 거고 세상은 이렇게 심하게 뒤틀리지 않았을 거다. 전 시즌의 지옥이 신과 사람이 함께 만든 지옥이었다면 이번 시즌의 지옥은 100% 사람이 만든 지옥이다.
<지옥 시즌 2>는 전 시즌에서 무너진 사회의 잔해를 힘껏 휘저으며 커다란 태풍과 혼란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태풍이 지나간 후 깔끔히 정돈된 자리에 새로운 희망을 앉힌다. 언젠가 다시 다가올 태풍을 막을 순 없지만 적어도 우리에겐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지금이, 지금을 함께할 수 있는 사랑하는 이가 있다는 희망을 말이다.
새진리회는 4년 전에 부활한 박정자를 앞세워 말도 안 되는 새로운 교리를 전파하려 하고 정부는 새진리회와 소도를 이용해 손 안 대고 세상의 중심을 잡으려 한다. 그 와중에 새로운 부활자가 된 정진수는 화살촉의 우두머리가 되어 박정자를 만나러 온다. 여러 단체의 믿음과 목적이 충돌하고 상황은 더 이상 명확히 정의할 수 없는 단계까지 치닫는다. 이제 이들이 원하는 게 구원인지 죽음인지 정의인지 알 수 없다.
이런 혼란 속에서 정의를 행하고 있다는 믿음 하나로 버텨온 소도는 흔들리기 시작한다. 정의를 말하던 소도 일원들이 희생하고 이탈하는 동안 믿음의 대상과 원하는 이득이 명확히 존재했던 화살촉과 새진리회, 정부는 거침없이 힘을 불려간다. 혜진은 결국 정자와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른 소도 지부들의 도움 없이 성집과 단둘이 정자를 구하러 새진리회 집회로 향한다.
혜진에게는 믿음을 맡길 신도 그에게 믿음을 보내는 추종자도 강력한 무기도 없다. 하지만 혜진은 흔들리지 않고 무사히 정자를 구해 새진리회 본당을 빠져나와 새로운 세상을 살아간다. 연약해 보이는 혜진이 온갖 위기를 넘기고 온전한 몸과 마음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재현을 향한 사랑과 정의를 향한 믿음 덕분이다.
이 시리즈에서 결국 가장 큰 힘을 내는 건 신을 향한 광기 어린 믿음이 아닌 사랑이다. 부활자인 정자는 은율이, 하율이를 생각하며 수많은 지옥을 견뎌 현실로 되돌아왔고 영재와 소현의 사랑의 결정체인 재현은 심판 직후 부활해 새로운 삶을 산다. 반면 충분한 사랑을 받지도 나누지도 못한 정진수는 몸이 찢기는 수많은 지옥을 살다가 현실에 돌아와서도 악몽에 시달린다. 그리고 결국엔 영원히 지옥을 떠돌 사자가 되어 사라진다.
사람들은 그토록 믿었던 정진수가 지옥사자가 되어 지옥으로 사라지는 장면을 지켜본다. 종교가 가진 권위, 상징성. 모든 게 무너지고 수많은 고지가 떨어지며 사회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게다가 정자의 말에 따르면 세상은 곧 멸망할 거라고 한다. 이제 누굴 믿든 어떤 행동을 하든 지옥과 죽음은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하지만 연상호 감독과 최규석 작가는 이 절망스러운 상황에서 또다시 사랑과 믿음을 높이 들어 보이며 새로운 세상을 제시한다.
혜진과 재현, 정자와 은율 하율이는 종교를 잃은 사람들이 절망하고 새로운 해석을 기다리는 동안 사랑하는 이와 함께할 새로운 세상을 찾아 떠난다. 이들은 지옥과 멸망이 곧 닥쳐올 거라는 걸 알고 있지만 그 불가해한 힘에 기대거나 눌리지 않고 눈앞에 있는 사랑하는 이의 손을 잡는다. 혜진은 재현의 엄마가 되고 정자는 다시 은율이 하율이의 엄마로 돌아가 남은 생을 행복으로 채워갈 것이다. 사랑은 세상 전체를 구하진 못하지만 적어도 혜진과 정자처럼 사랑을, 사랑하는 이를 믿는 자들의 세상은 구할 수 있다.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movie_read_togeth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