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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지 않는 도시, 경주 여행 코스

우아한 낮과 찬란한 밤을 간직한 명소가 가득한알찬 경주 여행 코스

by HMG 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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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친숙한 도시, 경주. 역사와 전통을 소중히 여기며 옛 이야기를 오늘에 전하는 지붕 없는 박물관, 살아 있는 교실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낮과 밤 모두 색다른 매력과 아름다움을 간직한 경주의 길을 누비며 그 속에서 숨 쉬고 있는 경주의 다양한 얼굴을 만나봅니다.



달빛 어린 연못에서 즐기는 경주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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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여행은 서두를 필요가 없습니다. 서울이나 광주, 부산 어디에서 출발해도 몇 시간은 걸리지만 여유를 갖고 달려도 좋습니다. 진정한 경주의 매력은 밤에 한결 빛을 발하기 때문입니다. 일상을 마무리한 사람들이 따뜻한 음식과 위로를 찾아 시장과 식당으로 들어서고, 왕릉과 옛 건물에 따뜻한 조명이 깃들기 시작하면 움츠렸던 겨울 경주는 시나브로 온몸에 피가 도는 듯 얼굴빛이 곱게 상기됩니다. 이방인도 토박이인 듯 섞여들 수 있는 포근한 어둠은 덤입니다.

밤을 맞은 경주의 멋을 제대로 누릴 수 있는 곳이 바로 경주 동궁과 월지입니다. 보통 우리에게 ‘안압지’로 알려져 있는 신라 왕궁의 별궁입니다. 평소에는 신라의 왕자가 머물며 사는 동궁이었고 특별한 손님을 맞거나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는 연회가 열렸습니다. 오랫동안 불려온 이름, 안압지는 신라 폐망 이후 후대의 시인들이 ‘쓸쓸한 옛 터에 기러기와 오리만이 날아든다’고 노래하면서 붙게 되었습니다. 본래 이름은 월지, 달이 비치는 연못입니다. 1980년대 월지라고 새겨진 토기 조각이 발견되면서 제 이름을 찾은 것입니다.

겨울 동궁과 월지의 점등시간은 오후 6시입니다. 그 전에 도착해 경주의 낮과 밤이 교대하는 순간을 지켜보는 것도 경주 여행의 특별한 경험이 될 것입니다. 경주를 대표하는 야경 사진 대부분도 이곳 동궁과 월지를 배경으로 탄생했습니다. 동궁과 월지에 비친 달빛을 조명 삼아 일대를 산책하며 숨어 있는 나만의 앵글을 찾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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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성대와 가까운 곳에 월정교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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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궁과 월지에서 10분 남짓 걸으면 만날 수 있는 첨성대 또한 밤의 자태가 남다릅니다. 특히 첨성대의 야경이 사랑받는 이유는 다양한 컬러로 그 빛을 달리하며 비추는 다채로운 조명 연출 덕분입니다. 붉은빛에서 푸른빛으로 다시 보라에서 노랑으로 옷을 갈아입는 첨성대를 보면 마치 하나의 대상을 다양한 색상으로 표현해낸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의 작품을 마주하는 듯합니다. 별자리를 관측하던 천문대였던 첨성대가 스스로 땅 위의 별로 반짝이는 장관은 한동안 걸음을 멈추고 바라보게 만드는 경주의 특별한 볼거리로 손색없습니다. 한편 첨성대와 가까운 곳에 훌륭한 야경을 볼 수 있는 월정교가 있습니다. 월정교는 신라 고대 교량 건축의 백미로 꼽히는데요. 특히 월정교의 야경은 자연과 사람이 어우러지는 역사에 남을 장면을 연출하며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보문관광단지 역시 야경과 주경 모두 계절을 온전히 담아내고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걸음하고 있습니다.



켜켜이 쌓인 이야기와 정신을 맛보다

포기할 수 없는 여행의 즐거움, 아니 여행을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음식입니다. 늦은 산책으로 허기가 느껴질 때, 경주의 다양한 맛과 거기 얽힌 사연들을 한곳에서 즐기고 싶다면 경주시 교촌안길에 자리한 요석궁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인근 100리 안에 굶어죽는 이가 없게 하라’, ‘과거를 보되 벼슬은 진사 이상을 하지 마라’, ‘흉년에는 땅을 늘리지 마라’ 등 가훈을 실천하며 산 최부잣집 터에 자리하고 있는 요석궁은 집안 대대로 내려오던 조선시대 양반가 음식을 ‘경주 최부자 가정식’으로 재정립해 선보이고 있습니다. 존경받는 부자의 삶이란 무엇인지 가르쳐주는 요석궁에서의 한 끼는 전통 반가의 상차림과 더불어 경주의 정신과 마주하는 또 하나의 의미 있는 체험이 될 것입니다.

한편, 요석궁 곁에는 경주 최부잣집의 가양주, 교동법주를 직접 맛볼 수 있는 제조장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제사를 모시고 손님을 맞이하는 일을 중요하게 여겼던 명문가의 술인 만큼 그 맛과 향의 깊이가 남다릅니다. 350년 전통의 교동법주 한 잔으로 언 몸을 녹이면 경주 여행의 첫날도 서서히 저뭅니다.



지붕 없는 박물관, 경주 남산과 양동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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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어디든 발 닿는 곳이 명소고 유적이지만 그중에서도 한 곳을 꼽는다면 역시 경주 남산입니다. 하루 일정을 모두 할애해도 아깝지 않고 오히려 아쉬움이 남습니다. 해발 500미터 남짓한 산은 그리 험하지 않은 코스로 가족 단위 관광객들에게도 어렵지 않습니다. 경주를 일컬어 흔히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고 부르는데 그 이름 또한 이 남산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위봉과 금오봉의 두 봉우리가 중심이 되어 30개 남짓의 계곡과 70여 답사 코스가 촘촘하게 이어져 있습니다. 특히 남산의 능선과 골짜기에 두루 퍼져 있는 절터와 석불, 석탑은 ‘현세에 경주 땅에 불국토를 만들고야 말겠다’는 신라인의 간절하고 깊은 염원을 실감하게 해줍니다. 깎아지른 듯 아찔한 암벽에서 속세를 유유히 내려다보고 있는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이나 온화한 미소로 관람객을 맞이하는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은 딱딱한 돌로 쪼아 만든 불상이라 믿기지 않을 만큼 자애롭고 편안한 위로를 선사해줍니다. 특히 용장사는 괴짜 천재이자 조선 3대 기인으로 꼽히는 매월당 김시습이 머물며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 소설, <금오신화>를 집필한 곳으로 자녀들과 함께 방문해볼 만한 역사 속 장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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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의 전통 주거 양식과 생활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곳으로 경주시 강동면에 자리한 양동마을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민속마을 중에서도 가장 오랜 역사와 규모를 자랑합니다. 양동마을이 세간의 주목을 받은 건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부터입니다. 그 이전에는 영국의 찰스 왕세자가 방문하면서 유명세를 떨치기도 했습니다. 양동마을은 조선시대의 상류층 주택과 더불어 일반민들이 살던 초가를 한 장소에서 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입니다.



경주는 새로운 내일을 꿈꾼다

여행지의 역사와 전통을 알고 싶다면 박물관을, 여행지의 생생한 오늘을 느껴보고 싶다면 시장에 가보면 됩니다. 경주시 금성로의 중앙야시장은 활기찬 경주의 일상을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는 바로미터입니다. 30곳 가까운 야식 매대에서 익어가는 음식의 향기를 즐기면서 걷다보면 어느새 양손 가득 묵직하게 쇼핑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야시장뿐 아니라 전통 시장도 함께 자리하고 있는 만큼 지역색 짙은 음식과 장거리를 경험해보고 싶다면 시간을 내보기를 추천합니다.

최근 경주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핫 플레이스는 황리단길입니다. 옛 지번 주소상의 황남동, 도로명 주소로는 태종로 일대에 형성된 새로운 상가 거리를 일컫습니다. 거리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황남빵이 동네를 대표하는 메뉴였습니다. 황리단길은 경주 특유의 한옥 건축을 뼈대로 하되 디저트와 경양식, 커피 등 젊은 입맛에 맞춘 메뉴와 인테리어가 특징입니다. 맛집으로 꼽히는 가게들은 서울 중심가 못지않은 손님들의 행렬이 이어집니다. 사진관과 한복 대여점, 서점들은 빠르게 변해가는 시간을 의식하지 않고 느리고 예스러운 정겨움을 무기로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합니다.

신라 천년의 수도만으로 경주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오늘의 경주는 말하고 있습니다. 경주야말로 과거와 현재, 그리고 역동적인 미래가 함께 어우러지는 공존과 희망의 고장이라고요. 온고지신, 옛 경주와 새로운 얼굴의 경주 사이로 난 길을 달리며, 또 걸으며 만나는 수많은 사람과 이야기들을 가슴에 담고 돌아오는 길. 경주는 변함없이 깊고 환한 빛을 발하며 이방인의 귀로를 배웅해줍니다.




글. 허재훈
사진. 경주시청

현대자동차 사외보 <현대모터> 2018년 1, 2월호에서 원문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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