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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MG 저널 Aug 08. 2022

오트 타낙 핀란드 랠리에서 거둔 승리로 종합 2위 등극

현대 월드랠리팀이 핀란드 랠리에서 팀 역사상 처음으로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2022 시즌 WRC 제8전 핀란드 랠리의 애칭은 ‘그레이블 그랑프리’. 그립이 높은 부드러운 흙바닥이 완만한 코너와 어우러져 비포장이면서도 순간 최고 속도 200km/h가 넘는 고속 주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굴곡진 노면이 연속 점프를 유도해 드라마틱한 장면을 연출한다. 2016년 크리스 미크(Kris Meeke)가 기록했던 평균 속도 126.62km/h는 WRC 역사상 최고의 기록이었다.


고속 코스가 많고 앞이 보이지 않는 블라인드 코너도 자주 나타나기 때문에 선수들은 최적의 속도를 유지하는 데 전념해야 한다. 고속 코스 중심의 랠리 경기는 의외로 선수들의 시차가 적고, 실수를 만회할 기회도 적다. 점프가 자주 연출되는 만큼 숙련된 점프 기술에 대한 노하우도 필요하다. 



핀란드 랠리는 고속 주행과 점프가 많아 WRC 경기 중 가장 드라마틱한 장면이 자주 나오는 랠리다. 사진 : WRC (https://www.wrc.com)


핀란드 랠리는 1951년에 몬테카를로 랠리를 위한 지역 예선으로 시작됐다. WRC가 창설된 1973년부터 캘린더에 포함되어 올해로 49년째를 맞는 유서 깊은 이벤트다. 예전에는 ‘1000호 랠리(1000 Lakes Rally)’라는 명칭을 사용하기도 했다. 핀란드에는 18만 개가 넘는 호수가 있을 만큼 호수의 나라로 유명하다. 랠리 본부가 설치된 이위베스퀼레(Jyväskylä) 주변에도 크고 작은 호수가 수없이 많다.


지난해 코로나 여파로 인해 가을에 열렸던 일정은 기존의 전통에 맞춰 여름으로 돌아왔다. 방역 통제도 풀려 관중들은 보다 자유롭게 이벤트를 즐길 수 있었다. 올해는 전체 코스 중 약 절반이 새로워졌으며, 30km 정도는 이전에 전혀 사용된 적 없는 도로가 배정되었다. 올해는 비 예보까지 있어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 관심이 쏠렸다.



타낙은 핀란드 랠리에서 2018, 2019년 우승, 2021년 2위를 차지한 바 있어 많은 기대를 모았다


현대 월드랠리팀(이하 현대팀)은 티에리 누빌(Thierry Neuville)과 오트 타낙(Ott Tänak), 올리버 솔베르그(Oliver Solberg)를 엔트리했다. 타낙은 2018, 2019년에 우승, 지난해에는 2위를 차지해 핀란드에서 강한 면모를 보여왔다. 모국 에스토니아 랠리와 흡사하다는 점이 이점으로 작용한다. 반면 누빌은 핀란드에서의 역대 성적이 그다지 좋지 못하다. 현대팀 이적 직전인 2013년에 2위에 오른 것이 유일한 포디엄 기록이다. 누빌은 경기 직전 인터뷰에서 에스토니아와 비교해 핀란드 랠리의 그립이 높아 코너링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더 까다롭다고 평가했다.



현대팀은 올해 초 핀란드에 새로운 테스트 기지를 마련해 고속 그레이블 주행 성능을 다듬었다


솔베르그는 지난해 랠리2로 엔트리했기 때문에 최고 클래스 경주차로는 핀란드 랠리에서의 첫 도전이다. 강렬한 스피드와 드라마틱한 점프에 얼마나 빨리 적응할지가 숙제다. 랠리2 클래스에서는 티무 수니넨(Teemu Suninen)이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살려 우승을 노린다. 2014~2018년에 현대팀 드라이버로 활약했던 헤이든 패든(Hayden Paddon)도 에스토니아에 이어 현대 i20 N 랠리2에 다시 올랐다.


올해 초 현대팀은 핀란드에 새로운 테스트 기지를 마련해 고속 그레이블에 대한 대응 능력을 키워왔다. 본거지인 독일 알체나우와 비교해 고속 그레이블 노면과 윈터 테스트를 겸할 수 있는 핀란드가 테스트에 적합하다는 판단에서다. 거점은 토요일 경기가 열리는 얌사(Jämsä) 인근에 자리잡고 있다.



핀란드 랠리는 랠리카의 고속 주행 성능과 공력 성능, 드라이버의 점프 테크닉과 코 드라이버와의 호흡이 완벽할 때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사진 : WRC (https://www.wrc.com)


도요타팀은 핀란드가 팀 본거지인 만큼 홈그라운드나 다름없다. 드라이버즈 챔피언십 포인트 리더인 칼리 로반페라(Kalle Rovanperä)를 비롯해 엘핀 에반스(Elfyn Evans), 에사페카 라피(Esapekka Lappi) 그리고 다카모토 가츠타(Takamoto Katsuta)를 그대로 엔트리했다. 이번 시즌 5승으로 최연소 챔피언이 유력한 로반페라는 의외로 홈그라운드에서 우승한 적이 없다. 에반스는 지난해, 라피는 2017년 핀란드 우승자다.


M-스포트 포드 진영에서는 5대의 푸마 랠리1을 준비했다. 팀에서 유일하게 핀란드 포디엄을 밟아봤던 크레이그 브린(Craig Breen)을 필두로 아드리안 포모(Adrien Fourmaux), 거스 그린스미스(Gus Greensmith), 피에르루이 루베(Pierre-Louis Loubet) 그리고 여기에 야리 후투넨(Jari Huttunen)을 새로 더했다. 현대팀 주니어 육성 프로그램 출신인 핀란드 선수 후투넨은 이번이 랠리1 클래스 데뷔전이다.



호숫가 숲 사이의 코스가 대부분을 이루는 핀란드 랠리


목요일 저녁 7시, 이위베스퀼레 도심에 마련된 3.48km의 SS1 하르유(Harju)에서 경기가 시작되었다. 시내 도로와 공원 내 흙길을 활용한 복합 노면 코스로, 공원 구간을 2바퀴 달렸다. 이 특설 스테이지에서는 누빌과 타낙이 1, 2위로 산뜻하게 출발했다. 물론 본격적인 핀란드 랠리의 시작은 금요일부터다.


금요일 오전은 북동쪽으로 이동해 라우카(Laukaa)와 란카마(Lankamaa)를 반복해 달렸다. 그런 다음 하르유의 단축 버전(SS6)을 거쳐 다시 서쪽으로 이동, 아사마키(Ässämäki)와 사홀리넨-목시(Sahloinen-Moksi) 스테이지를 반복하는 9개 스테이지 124.91km 구성. 이 날의 오프닝인 라우카는 이번 경기 중 가장 긴 21.69km 코스다. 2017년 이래 오랜만에 부활하는 유명한 스테이지 란카마는 이전과는 반대 방향으로 달렸다.



첫날부터 여러 사고가 발생했지만, 솔베르그의 리타이어는 가장 안타까운 사고였다. 이 사고로 인해 솔베르그는 핀란드 랠리를 포기했다. 사진 : WRC (https://www.wrc.com)


오프닝 스테이지에서 타낙이 톱타임을 기록하며 종합 선두로 올라섰다. 반면 누빌은 타낙과 8.6초 차이로 다소 페이스가 밀렸다. 이날은 타낙과 라피가 1, 2위를 다투며 치열한 접전을 이어갔다. 안전 문제로 SS5가 취소된 가운데 타낙이 3개, 라피가 4개 스테이지를 가져갔다.


첫날 경기 결과 리어 트랙션 확보에 고전한 누빌은 가츠타 뒤인 종합 7위. 하지만 가장 불운한 참가자는 솔베르그였다. SS2 스타트 직후에 코너를 살짝 벗어나며 바위와 충돌한 솔베르그는 롤케이지 손상으로 더 이상 경기를 이어갈 수 없었다. 이미 코너에 빠르게 진입한 직후라 방향을 바로잡기도 힘들었다. 후투넨의 랠리1 데뷔전도 혹독했다. 연료압 문제로 SS8에서 5분가량을 허비하며 득점권에서 멀어졌다. 이밖에 루베는 스티어링 파손, 브린은 인터콤 고장에 시달렸다.


경기 초반부터 i20 N 랠리1을 한계까지 몰아붙였던 타낙이 금요일을 마감하는 시점에서 3.8초의 근소한 차이로 종합 선두를 유지했다. 라피가 2위를 차지했고 그 뒤로 에반스, 로반페라, 브린, 가츠타, 누빌, 루베, 그린스미스 순서다. 현대 WRC2의 수니넨이 린드홀름을 19.4초 차이로 밀어내고 종합 10위에 위치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수니넨은 올 시즌 본인의 첫 클래스 우승을 가져가는 듯 보였다.



토요일에는 밤새 내린 비로 노면이 더 미끄러웠다. 이 와중에도 드라이버들의 멋들어진 점프 주행은 계속됐다


8월 6일 토요일. 참가자들은 이위베스퀼레 남서쪽의 얌사로 이동했다. 이날은 전체 경기구간 중 절반에 육박하는 150.3km에서 치열한 하루를 보냈다. 얌사는 현대팀의 새로운 테스트 기지가 위치한 곳으로 인근에는 드라마틱한 롤러코스터 도로들이 즐비하다. 게다가 핀란드의 상징과도 같은 오우닌포야 점프대에 인접해 있다. 안전 문제로 2008년 제외되었다가 2012년 복귀했지만 다시 사라졌다. 대신 새로운 랩슐라(Rapsula) 스테이지 일부가 예전 오우닌포야 구간을 포함하고 있다.


밤새 내린 비로 촉촉해진 노면은 더 미끄럽고 시야 확보에도 어려움을 주었다. 오프닝 스테이지 SS11에서 에반스가 이번 경기 첫 스테이지 톱타임을 기록했다. 어제까지 가장 먼저 출발해 노면 청소를 도맡았던 로반페라는 족쇄에서 풀려나며 페이스를 끌어올렸다. 4개 스테이지에서 가장 빨랐던 로반페라는 SS16에서 종합 2위로 올라섰다.



경기 초반부터 실수 없이 꾸준히 좋은 실력을 발휘한 타낙은 토요일까지 종합 선두를 유지했다. 사진 : WRC (https://www.wrc.com)


타낙은 SS14 톱타임, SS17에서는 로반페라와 타이기록을 수립하며 선두 자리를 지켜냈다. 브린은 SS12에서 착지 도중 오른쪽 덤불 속 바위와 충돌해 리타이어. 금요일 저녁에 디퍼렌셜을 교체했던 누빌은 브린과 가츠타의 부진에 힘입어 7위에서 단숨에 5위로 올라섰다.


타낙은 전날에 이어 종합 선두로 토요일을 마감했다. 2위 로반페라와의 시차는 8.4초. 창문이 부서져 시야 확보에 애를 먹은 라피가 조금 뒤처졌지만 3위 자리는 유지했다. 4위 에반스와 45.8초 차이로 누빌이 5위. 가츠타, 그린스미스, 루베, 수니넨, 린드홀름이 그 뒤를 이었다. WRC2 선두로 토요일을 시작했던 수니넨은 린드홀름과의 시차를 10.7초로 유지했다.



타낙과 로반페라의 치열한 접전은 마지막 날인 일요일까지 이어졌다


일요일은 오이틸라(Oittila)와 루이마키(Ruuhimäki) 2개 스테이지를 반복하는 SS19~SS22의 43.92km 구간에서 최후의 격전을 벌였다. 파워 스테이지를 겸하는 루이마키는 코스 마지막을 대형 점프로 마무리하며 관람객들에게 멋진 볼거리를 선사한다.


근소한 차이의 타낙과 로반페라는 물러설 수 없는 마지막 혈투를 시작했다. 오프닝 SS19 오이틸라에서 타낙은 놀라운 페이스로 로반페라와의 시차를 10.3초로 벌렸다. 이어진 루이마키에서는 두 선수가 타이 기록으로 팽팽한 싸움을 이어갔다. 오이틸라를 다시 달린 SS21에서는 로반페라가 더 빨랐다. 하지만 타낙이 0.3초 차 2위를 기록해 종합 시차는 딱 10초가 되었다. 격전을 이어가는 두 선수에 이어 누빌이 3연속 3위. 하지만 종합 4위 에반스와는 40초 이상 벌어져 있어 순위 변동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마지막 파워 스테이지의 결승선을 힘차게 날아오르며 통과하는 타낙의 모습. 사진 : WRC (https://www.wrc.com)


오후 1시 12분. 루이마키를 다시 달리는 파워 스테이지 겸 최종 스테이지가 시작되었다. 타낙이 마지막까지 숨 막히는 집중력을 유지하며 밀어붙인 결과 시즌 2승째를 손에 넣었다. 파워 스테이지 포인트는 로반페라, 브린, 에반스, 타낙, 누빌 순으로 가져갔다. 타낙은 턱밑까지 추격당하는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는 주행을 유지했다. 이번 승리로 타낙은 드라이버즈 챔피언십 포인트에서 누빌을 밀어내고 종합 2위에 올랐다.



도요타팀 라피는 차가 전복되는 커다란 사고를 당했는데도 불구하고 경기를 완주해 3위를 지켰다. 사진 : WRC (https://www.wrc.com)


타낙의 신들린 주행을 앞세운 현대팀은 팀 역사상 첫 핀란드 우승컵을 손에 넣었다. 반대로 로반페라는 이번에도 홈그라운드 첫승의 염원을 이루지 못하고 2위에 머물렀다. 3위는 라피. SS21에서 전복 사고를 당했음에도 포디엄 마지막 자리를 지켜냈다. 4위 에반스에 이어 누빌이 종합 5위.



팀 역사상 처음으로 핀란드 랠리 우승컵을 품에 안은 현대팀은 9라운드 벨기에 랠리를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할 계획이다


한편, 현대팀 WRC2 클래스의 수니넨은 시즌 첫 클래스 우승과 함께 종합 8위라는 좋은 성적을 거두었지만, 경기 후 검차 과정에서 공인중량 미달로 실격 처리됐다. 규정상 프런트 범퍼의 무게는 4.51kg이어야 하는데, 실수로 3.93kg의 테스트용 프런트 범퍼를 장착하고 경기에 참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 결과에 영향을 미칠 만한 무게는 아니었지만, 공정한 경기를 위한 모터스포츠의 엄격한 규칙이 적용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WRC 제9전은 8월 18~21일, 누빌의 고향인 벨기에에서 시즌 2번째 타막 랠리로 진행된다.



현대모터스포츠법인은 WRC에서의 우수한 활약뿐 아니라 올 시즌 WTCR에서 드라이버와 팀 더블 챔피언을 노리고 있다


같은 주말, 프랑스 동부 알자스 지역에서는 WTCR(월드 투어링카 컵) 제7라운드가 열렸다. 현대 BRC팀과 미켈 아즈코나의 더블 챔피언 가능성이 높은 상황. 타이어 안전 문제를 이유로 사이안 레이싱 세력이 시즌을 통째로 포기하면서 출전차는 12대로 줄었다. 아노 듀 랭 서킷(Anneau du Rhin)에서 치러진 레이스1에서 아즈코나가 3 그리드 출발 3위, 8 그리드 출발인 미첼리즈는 치열한 몸싸움을 뚫고 4위로 경기를 마쳤다. 이어진 레이스2에서는 반대로 8 그리드의 아즈코나가 신들린 추월로 미첼리즈 뒤까지 따라붙었고, 팀 오더에 따라 자리를 바꾸어 다시 아즈코나 3위, 미첼리즈 4위를 기록했다. 


이로써 아즈코나의 드라이버 포인트 241점, 현대 BRC 팀 포인트가 368점으로 양대 챔피언십 타이틀에 더욱 가까워졌다. 5개 라운드 취소로 시즌이 너무 짧아졌다는 의견이 많아 FIA와 주최측에서는 추가 라운드 편성을 위해 논의 중이다. 이에 따라 최종 결과는 조금 더 지켜보아야 할 듯하다.



글. 이수진(자동차 평론가)


1991년 마니아를 위한 국산 자동차 잡지 <카비전> 탄생에 잔뜩 달아올라 열심히 편지를 보냈다가 덜컥 인연이 닿아 자동차 기자를 시작했다. <카비전>과 <자동차생활>에서 편집장과 편집 위원을 역임했고, 지금은 자동차 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전기차와 커넥티드카, 자율주행 기술 같은 최신 트렌드를 열심히 소개하면서도 속으로는 기름 냄새 풍기는 내연기관 엔진이 사라지지 않기를 기원하는 ‘자동차 덕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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