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중립이라는 인류의 과제 앞에서 고성능 자동차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인류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탄소 중립에 대한 요구가 나날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자동차 업계도 이 흐름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 이에 따라 매년 새로운 전기차가 등장하고 있고, 전기차 판매량도 빠르게 늘어나는 중이다. 하지만 전기차의 확산에 대한 우려와 불안을 가진 이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고성능 내연기관 자동차가 주는 희열과 감성을 전기차에서도 느낄 수 있을지 걱정하는 마니아들 말이다.
일상과 레이스 트랙을 오가며 주행할 수 있는 능력과 역동적인 코너링 성능을 갖춘 ‘일상 속 스포츠카’를 지향하는 N브랜드 또한 이런 점을 잘 파악하고 있다. N브랜드는 친환경 전기차 시대에도 고성능차가 선사하는 짜릿한 즐거움은 계속돼야 한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고성능 전기차 개발에 힘을 쏟아왔다. N브랜드가 선보일 고성능 전기차에 대한 실마리가 담겨 있는 퍼즐 조각, 그게 바로 RN22e다.
RN22e는 현대자동차가 WRC, WTCR, ETCR 등의 모터스포츠에서 활동하며 쌓은 고성능 기술력과 노하우를 양산 N 모델에 적용하기 위해 거치는 연구·개발 과정인 RM 프로젝트에 이은 차세대 롤링랩(Rolling Lab) 시리즈다. 지난 2012년부터 RM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롤링랩은 도로 위를 실제로 달리며 신기술을 연구·개발하는 프로토타입 모델로 기술의 양산화를 위한 징검다리 역할을 수행해왔다. 즉, 레이스카와 N 모델 사이에서 ‘움직이는 연구소(Rolling Lab)’처럼 활동하는 테스트베드인 것이다. 벨로스터 N, 코나 N, 아반떼 N 등 현재 여러 N 모델에 적용된 E-LSD와 8단 습식 N DCT, 리어 스포일러 등이 RM 프로젝트를 통해 완성된 대표적인 고성능 기술이다.
RM 프로젝트는 2014년 첫 프로토타입 모델인 RM14를 선보이며 주목받았다. 스포츠 주행에 가장 적합한 구성을 뜻하는 ‘레이싱 미드십(Racing Midship)’이란 콘셉트 아래 RM14로 시작된 RM 시리즈는 N브랜드의 전동화 비전에 발맞춰 새로운 변화를 맞이했다. 2020년 선보인 첫 전동화 프로토타입 RM20e까지는 기존의 코드네임을 유지했으나, RN22e에 이르러 움직이는 연구소(Rolling Lab)의 머리글자 ‘R’과 N브랜드의 ‘N’을 합쳐 RN 시리즈로 거듭난 것이다. 뒤의 숫자는 제작 연도를 뜻하며, ‘e’는 전동화(Electric) 기술을 가리킨다.
RN22e가 한층 진화했다는 건 태생에서도 드러난다. 전동화 기술을 처음 접목했던 미드십 구조의 RM20e와 달리, RN22e는 800V 고전압 시스템, 전륜 감속기 디스커넥터 기술 등 현대자동차그룹의 혁신적인 전기차 기술을 아우른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를 기반으로 삼았다. 내연기관 모델인 벨로스터 N을 바탕삼아 개발한 기존 RM 프로젝트를 넘어, 고성능 기술력과 노하우를 전기차 전용 플랫폼에 접목한 것이다. RN22e가 앞뒤 전기 모터로 이뤄진 사륜구동 방식을 롤링랩 최초로 갖춘 점이나, 기존 RM 프로젝트의 공통점이었던 벨로스터의 외관과 다르게 RN22e는 현대차의 2번째 전용 전기차인 아이오닉 6의 외관을 두른 배경이기도 하다.
RN22e의 외관에 아이오닉 6의 차체를 사용한 또 다른 이유는 공력 성능의 이점을 활용하기 위해서다. 매끈한 유선형 디자인의 아이오닉 6는 역대 현대자동차 모델 중 가장 뛰어날 뿐 아니라 양산차 중 가장 이상적인 수준의 공력 성능(CD 0.218)을 갖춘 전기차다. RN22e는 최적의 공력 성능을 갖춘 아이오닉 6의 디자인을 바탕으로 휠 에어 커튼과 차폭만큼 넓은 리어 스포일러, 거대한 리어 디퓨저 등 이상적인 공력 설계가 뒷받침돼 CD 0.214를 달성했다. 이를 토대로 한계 주행 시 전기 파워트레인을 제어하는 로직에 대한 롤링랩 연구·개발 과정이 집중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 밖에도 RN22e는 기존의 RM 프로젝트를 통해 꾸준히 다듬어온 고성능 기술, 전기 투어링카 레이스인 ETCR에 참가하며 쌓은 고성능 전기 레이스카의 노하우, 그리고 E-GMP 기반의 첫 전용 전기차인 아이오닉 5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얻은 경험과 기술의 장점을 모두 아우른다. 이는 단순히 고성능 전기 모터와 대용량 배터리를 적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개발 초기부터 고성능 전기차를 염두에 둔 과정을 거쳤음을 뜻한다. 여기에는 전동화 시대에도 N브랜드가 추구하는 ‘운전의 즐거움’과 이를 위한 3대 요소 ‘코너링 악동(Corner Rascal)’, ‘레이스 트랙 주행 능력(Race Track Capability)’, ‘일상 속 스포츠카(Everyday Sports Car)’를 변함없이 제공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N브랜드 최초의 사륜구동 방식을 갖춘 RN22e는 앞뒤에 하나씩 장착된 전기 모터를 활용해 지금까지의 내연기관차와는 다른 고성능 전기차만의 짜릿한 코너링 성능을 보여준다. 전기 모터의 최고출력은 앞 160kW, 뒤 270kW로, 총 430kW(약 580마력)이며, 최대토크는 740Nm(약 75.5kgf·m)다.
RN22e에는 그동안 WRC 랠리카를 통해 쌓아온 고성능 사륜구동차의 앞뒤 구동력 배분 기술에 대한 노하우와 더불어, E-GMP 기반의 전기차 특화 기술 중 하나인 전륜 감속기 디스커넥터 기술이 적용된다. 이는 주행 상황에 따라 전륜 모터의 연결을 해제해 사륜구동 방식과 후륜구동 방식을 빠르게 전환하는 기술로, 전력 소비 효율을 높여줄 뿐 아니라 언제든 뒤를 미끄러트릴 수 있는 드리프트도 구사할 수 있도록 도와줘 운전이 한층 짜릿해진다.
RN22e에는 앞뒤 구동력 분배뿐만 아니라 주요 구동축인 뒷바퀴의 구동력을 좌우로 분배하는 선행 기술도 적용됐다. 후륜 전기 모터에 부착된 트윈 클러치를 붙였다 떼면서 좌우 뒷바퀴에 구동력을 분배하는 토크벡터링(e-TVTC) 기술이다. e-TVTC는 좌우 뒷바퀴 중 한쪽에만 구동력을 전부 보낼 수 있으며, 코너링 시 좌우 앞바퀴에 구동력을 적절히 분배해 코너 탈출을 도와주는 내연기관 N 모델의 e-LSD와 같은 효과를 더욱 극적으로 구현한다. 이로써 무거운 무게 탓에 차가 코너 바깥으로 나아가려는 언더스티어 성향이 심한 전기차의 체질적 한계를 극복하고, 주행 성능을 한층 역동적으로 만들 수 있다. 아울러 뒷바퀴의 트윈 클러치를 해제하면 관성 주행을 통해 효율성이 높아지는 효과도 생긴다. RN22e의 e-TVTC는 향후 다양한 주행환경에서의 소프트웨어 개발을 지속하면서 완성도가 더욱 높아질 예정이다.
무거운 앞뒤 전기 모터와 배터리를 낮게 배치해 무게 중심을 낮추고 앞뒤 중량을 이상적으로 배분한 E-GMP의 구조 역시 태생적으로 무거운 전기차의 한계를 극복하고 RN22e의 코너링 성능 향상에 힘을 보태는 요소다. 아울러 WRC에서 영감을 얻은 IDA(기능 통합형 드라이브 액슬, 차축과 휠 허브 베어링을 통합한 부품)를 적용해 경량화와 더불어 횡강성과 코너링 성능을 높였다. 이 밖에도 코너링 성능의 향상을 위해 차체 강성을 강화하는 데 효과적인 롤케이지와 별도의 리어 파티션 패널을 적용하고, 3D 프린팅 알루미늄 부품과 같은 신소재를 활용해 경량화 효과를 구현했다.
RN22e가 롤링랩 역할을 수행하며 얻은 장점 중 하나는 냉각 및 공력 성능이다. 자동차는 주행 중 차체 주위로 흐르는 공기에 의해 주행 안정성과 연비 효율, 소음 측면에서 많은 영향을 받는다. 내연기관에서 발생하는 열을 적절히 제어하는 것도 중요하다. 차의 성능을 한계까지 사용하는 고성능차의 경우엔 더욱 그렇다. 전기차도 마찬가지로 주행풍을 유리하게 다듬고 공기와 냉각수를 이용해 배터리의 열을 관리해야 한다. RN22e는 그간 모터스포츠를 통해 쌓아온 노하우를 바탕으로 모터 및 배터리 냉각 설계 등을 계승하고 있다. RN22e 이전에 벨로스터 N ETCR 레이스카와 RM20e를 거치면서 전동화 고성능에 필요한 연구·개발을 지속해 온 것이다. 앞으로도 RN22e는 모터스포츠를 통해 공력 성능 데이터 등을 계속해서 업데이트할 예정이다.
특히 RN22e의 냉각 설계는 레이스 트랙에서의 한계 주행을 거듭해도 쉽게 지치지 않는 내구성을 목표로 개발됐다. 전기차는 배터리의 상태에 따라 발휘할 수 있는 퍼포먼스의 수준이 달라지는데, RN22e에 적용된 배터리 프리 컨디셔닝(Pre-conditioning) 기능은 트랙 진입 전후로 배터리 상태를 최적화해 언제든 최대치의 성능을 끌어낸다. 이를테면 트랙 진입 전에 퍼포먼스를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배터리의 온도를 최적의 온도로 높이고, 트랙 주행을 마친 뒤 배터리 온도를 낮춰 E-GMP의 800V 고전압 시스템을 이용해 빠른 충전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그 결과, RN22e는 단 18분 만에 77.4kWh 배터리를 10%에서 80%까지 충전한다. 아울러 더욱 효율적인 배터리 열 관리를 위해 전기 모터 및 배터리의 독립 냉각 방식을 적용하고, 전면 흡기구를 넓혀 냉각 성능을 높였다.
레이스 트랙에서 꾸준한 성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집중한 부분 중 하나는 RN22e의 제동 성능이다. 일반적으로 전기차는 무거운 배터리 때문에 내연기관차보다 중량이 늘어나고, 이에 따라 관성도 커진다. 가령 코너 진입 직전 속도를 빠르게 낮출 때 차가 무거우면 그만큼 운동 에너지도 커지기 때문에 브레이크 시스템이 받는 부하가 늘어나고, 그러면 이상적인 레코드 라인으로 달리기 어려워지는 것뿐 아니라 제동 성능이 떨어지는 페이드 현상이 일찍 찾아올 수 있다. 이를 방지하고자 RN22e에는 N 모델에 사용해온 고성능 마찰재 패드와 4 피스톤 모노블록 캘리퍼, 400mm 하이브리드 디스크를 적용했다. 또한, 전기 모터의 회생제동 기능을 활용해 더욱 빠르고 공격적으로 코너를 공략할 수 있도록 고성능 전기차에 최적화된 기술도 개발 중이다.
1. RN22e는 운전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고성능차의 사운드를 전기차에 알맞게 구현했다 2. RN22e는 일상과 트랙을 오가는 다양한 주행 환경에서 최적의 성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개발됐다
RN22e에는 레이스 트랙에서의 역동적인 성능뿐만 아니라 평범한 일상도 즐겁고 짜릿하게 만들어줄 기술이 다양하게 담겨 있다. 대표적인 부분이 바로 사운드다. 사운드는 고성능차가 운전자의 오감을 자극하는 감성적인 영역이지만, 엔진음과 배기음이 없는 전기차의 경우에는 고성능의 감성을 제공하기가 쉽지 않다. 이에 운전의 순수한 즐거움을 추구하는 N브랜드는 RN22e에 N 사운드 플러스 기능을 적용해 운전자의 취향과 분위기에 따라 색다른 운전의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했다. 현재 RN22e에는 고성능 내연기관차의 감성을 담은 사운드를 구현했으며, N e-시프트 기능을 통해 고성능차의 사운드와 어울리는 변속 감각을 진동으로 전달한다. N 사운드 플러스는 다양한 운전자들의 입맛에 맞출 수 있도록 완성될 예정이며, 양산 모델에서 새로운 운전 경험을 선사할 계획이다.
e-TVTC와 더불어 RN22e를 통해 개발 중인 또 다른 선행 기술은 차고 조절 장치다. 럭셔리 자동차의 아늑한 승차감을 만들어주는 에어 서스펜션의 개념을 고성능 스포츠카에 접목한 개념의 기술로, 일상의 편안함과 트랙에서의 역동적인 주행을 감안해 개발 중이다. 가령 일상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경사로와 과속방지턱 등을 지날 때 하부 손상을 방지하기 위해 차체를 들어 올리고, 트랙에서는 무게 중심을 낮추고 공력 성능에 도움을 주기 위해 차체를 낮추는 식이다. 높이만 조절하는 게 아니라 서스펜션이 압축되고 늘어나는 특성까지 조절해 다양한 주행 환경에 알맞은 성능을 제공할 수 있도록 개발되고 있다.
이렇듯 RN22e에 적용된 다양한 신기술은 도로 위를 실제로 달리며 검증하고 여러 번의 담금질을 거쳐 2023년에 출시될 고성능 전동화 N 모델에 반영될 예정이다. 물론 지금까지 그래왔듯 이 같은 과정을 거쳐 개발한 주행 성능, 내구성, 안전성 등의 여러 신기술은 일반 양산 모델까지 적용될 가능성도 폭넓게 열려 있다. 롤링랩을 통해 연구·개발하는 모든 기술이 양산까지 반드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미래 전기차 시대에도 짜릿한 운전의 즐거움이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건 사실이다. N브랜드는 그 누구보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며, 운전의 즐거움을 이어 나가기 위한 노력과 열정을 결코 내려놓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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