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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명라 Sep 16. 2020

딸의 대학교 합격증을 숨긴 아버지

 딸년 대학교 보냈다고 엄마는 아버지에게 두고두고 시달렸습니다.   

광주에 있는 조선대학교에 약학대학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큰언니는 담임선생님과 진학상담을 했답니다.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너의 실력으로는 충분히 합격을 할 수 있다는 대답을 들었고, 언니는 자신감을 가지고 약대에 진학하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를 했습니다.


이윽고 언니는 엄마가 그렇게 기다렸던 조선대학교 약학대학 입학시험을 무사히 치렀습니다.


"어떠냐? 시험은 잘 봤냐?"하고 묻는 엄마께 큰언니는 아주 자신 있게 "잘 봤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시절에는 지금과는 달리 우편으로 합격증이 배달되어 오게 되어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합격증이 오지 않았답니다.


엄마는 큰언니에게 "시험을 잘 봤다고 큰소리를 치더니 떨어졌나 보다"라고 언니를 의심을 했고, 큰언니는 나름 최선을 다해서 시험도 잘 치렀는데 엄마에게서 그런 소리를 듣고 보니 내심 억울했던가 봅니다. 문득 생각이 나는 것은 어쩌면 아버지가 합격증을 받았을지도 모른다고 큰언니의 생각을 엄마에게 이야기했고, 엄마도 큰언니의 의심에 공감을 했답니다.


우체국에서 우리 집으로 오는 길에 아버지가 근무하는 농협이 위치하고 있었던 탓에 어쩌면 우체부가 우리 집으로 합격증을 배달하는 대신에 농협에 근무하는 아버지에게 전달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을 했던 것이지요.


그때 우리 집은 적산가옥이었습니다. 일제시대 때 농협에 근무하는 직원들의 사택으로 제공되었다가 해방이 되면서 아버지가 구입을 한 집이었습니다. 우리 집은 지붕이나 외양은 한옥이었지만, 집안 내부 구조는 일반적인 한옥과 많은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 시절 일반적인 한옥은 화장실이 외부에 있어서 본채와 거리를 두고 있었다면 우리 집은 화장실이 내부 복도와 연결이 되어 있어서 신발을 신지 않고 화장실을 이용하고는 했습니다.


그래서 엄마와 큰언니는 아버지가 화장실을 갈 기회만을 엿보았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화장실에서 큰 볼 일을 볼 때 아버지의 옷을 뒤져보기로 합의를 본 것이었지요. 그렇게 기회를 엿보고 있을 때 아버지가 화장실에서 큰 볼일을 볼 예정인지 휴지를 챙기더랍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엄마와 큰언니는 아버지의 양복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는데 아무리 뒤져도 원하는 합격증이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버지의 지갑을 뒤져보았는데, 세상에나 합격증이 담겼던 봉투는 없고 합격증만 아버지의 지갑에 남아 있더랍니다.


엄마는 그 합격증을 아버지 몰래 빼냈고, 큰언니의 대학교 입학금을 여기저기서 빚을 내어 서둘러 장만을 했다고 합니다.

적산가옥으로 유리창이 많았던 독특한 구조의 우리 집


1960년 그때 당시 조선대학교 약학대학 입학금은 10만원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쌀 한 가마니 값이 2,500원이었다고 하니, 무려 쌀 40 가마니 값의 엄청난 금액이었습니다.


엄마는 서둘러서 빚을 내어 장만한 큰언니의 대학 등록금을 전대에 넣어서 허리에 차고 광주에 있는 조선대학교에 달려가서 직접 납부를 했습니다.


큰언니는 너무도 비싼 대학 등록금 때문에 어쩌면 대학교를 졸업을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열심히 공부를 해서 장학금을 타기도 했다고 합니다. 공부만 죽어라고 열심히 했더니 성적이 오르더라고, 공부가 세상에서 제일 쉬웠다고도 했습니다.


물론 그때부터 엄마는 큰언니의 대학 진학과 관련하여 돈 한 푼 주지도 않는 아버지와 할머니(시어머니), 손 위 시누이들로부터 '어려운 형편에 딸년 대학교에 보낸다.'라고 엄청난 구박을 받아야 했습니다.


2020년 5월, 큰언니는 이 이야기를 저에게 들려주면서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래도 아버지가 큰언니의 합격증을 차마 없애버리지 못하고 지갑 속에 숨겨 둔 것이 얼마나 다행이냐고, 만약 합격증을 찢어버리기라도 해서 합격증을 끝내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큰언니는 아예 대학교에 입학을 하지 못했을 것이 아니냐고, 엄마와 큰언니는 그렇게 마음의 위안을 삼기도 했었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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