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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화정 Sep 21. 2023

'내가 해볼까?'로 시작된 이야기

어쩌다 나는 1인기업에서 프랜차이즈 CEO가 되었을까

유모차를 싣고, 초보운전 딱지를 붙이고 청담동을 갔다.

동기모임에 아이를 데리고 갔었다.

결혼을 한 동기도 1명 있었지만, 아이를 출산한 사람은 나 혼자.

미혼 친구들 사이에 나는 어떤 용기로 그 모임에 나갔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 모임에서 미안하다는 소리를 몇 번씩이나 해야 했고, 사회생활 4-5년 차 되는 친구들은 커리어 이야기에 즐거워 보였다. 그리고 그 모임 이후로 동기모임에는 나가지 않았던 것 같다.

첫 번째 용기를 내어 나갔던 모임에서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나 혼자 아줌마가 되어버린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그랬던 것 같다.


그렇게 아줌마였던 나는 동네에서도 아이 친구 엄마들과 어울리기 쉽지 않았다.

아이 엄마이지만, 아이를 위한 대화만으로는 내 속이 채워지지가 않았다. 

'이제 나는 없는 건가? 계속 이렇게 엄마로만 살아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최근 들어 신랑에게 듣는 과거의 나는 이랬다.


출장 갔다가 돌아오는 신랑에게 

"나는 하루종일 아이 돌보느라 피곤했으니, 남아있는 설거지와 쓰레기는 당신이 버려." 

새벽 3시에 퇴근하고 와도 그 일을 했다는 신랑은 요즘 내가 출장 갔다가 피곤하다고 돌아오면, 이제 출장 다녀왔으니 설거지와 쓰레기를 버려야지 하면서 뒤끝을 부린다. 그럴 때마다 과거의 나는 너무 힘들었고, 당신이 오는 시간이 나에게는 휴식이 시간인데, 그조차도 야근, 잦은 출장으로 누릴 수 없었으니, 그랬던 것 같다. 그 당시의 나는 너무 힘들었다. 이해해 달라. 이야기하면서 그때의 나는 너무 서럽기도 했지만, 지금의 나는 그때의 신랑도 참 힘들었겠구나 이해를 아주 조금은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 아이들은 조금씩 커가고, 그 사이에도 나는 아이를 케어하면서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던 것 같다. 전공이나 커리어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일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아이를 키우면서 읽어주었던 책을 조금 더 잘 읽히고 싶어서 찾았던 출판사에서 나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돈'을 버는 것보다 '출근'을 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그리고 고객을 만나 영업을 하는 일이다 보니, 건축을 전공하며 설계사무실 다닐 때는 불편해서 입지 못했던 정장을 입었다. 내가 뭔가 커리어 여성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일'을 시작하니, 마음속에서 다른 마음이 생겼다. '성공'하고 '인정'받고 싶었다. 그래서 열심히 노력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영업해서 팀장으로 승진하고, 팀원들과의 팀워크도 좋았다. 뭔가 우리는 해낼 수 있을 것 같았고, 더 높은 승진을 꿈꾸었다. 영업조직은 매출이 급여로 연결되기에 승진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조금 더 기여하고 조직을 분리해서 나가라고 하는 분이 계셨다. (물론 그분은 내가 퇴사한 후, 퇴사 한 내 이름이 회사 홈페이지에 올라갈 만큼 내 고객을 상대로 매출을 위해 엄청난 일들을 하신 분이었다. 강제 퇴사를 이후에 당하셨다.) 


승진의 비전이 없어졌기에, 더 이상 즐겁지 않았다.

출근도장만 찍으면 150만 원 정도 되는 급여가 통장에 들어오지만, 그 조차도 받고 싶지 않았다. 그냥 그분 얼굴이 보고 싶지 않았다. 12월 31일까지 출근하고 퇴사할 거다 이야기를 했고,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출근도장만 찍어도 급여가 나오는데, 이해할 수 없었겠지... 하지만 당장이라도 도망가고 싶었다. 급하게 면접을 보고 인테리어 회사를 들어갔다. 


3년의 시간을 버린 것 만 같았다. 억울하고, 분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건 잊어야 했다. 

인테리어 회사는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출근해야 하는 상황을 이해해 주셨고, 10-5시 출근을 하였다. 현장에 적용되는 도면을 그리는 거라 어렵지 않게 일할 수 있었다. 3개월을 사무실에서 출근하며 일을 했고, 3개월은 재택으로 일을 하게 되었다. 잠깐 이었지만, 백화점 매장의 도면을 그릴 수 있는 기회가 있었고, 현장에 세팅되어 들어가는 인테리어가 어떻게 설치되는지를 직접 볼 수도 있어서, 사람관계는 어려웠지만 즐거웠던 경험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일도 그만하고 싶고, 아이들을 케어하며 좋은 엄마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리고 아이들을 열심히 케어했는데, 아이가 오기 전에 아이 식사준비를 하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다. 왜 그런지도 모르게 주체할 수 없는 감정들이었고,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근처 상담센터에 전화를 했고, 도움을 요청했다. 그리고 조금 안정이 되었던 것 같다. 지금도 왜 그렇게 감정이 복받쳤을 까 생각을 해보면, 내가 가치 없는 사람으로 느껴졌던 게 아닌가 싶다.

가치 없는 사람으로 사는 게 나는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그냥 그렇게 일을 안 하는 시간을 지내며, 나를 다독였다. 

그리고 어느 날인가 아이를 데리고 엄마네 집으로 놀러 갔다.

엄마는 직업소개소 일을 오래 하셨고, 수입도 괜찮으셨다. 

통화를 하다가 "요즘 청소일이 좀 줄었어."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왜 그런지 알 것 같았다. 

엄마가 직업소개소를 운영하지만, 엄마 몰래 어플을 통해 청소서비스를 신청해서 서비스를 받기도 하고, 어플을 나름 편리하게 잘 사용했었다. 요즘 누가 전화기로 사람을 불러..라고 생각했다. 누워서 엄마한테 그 얘기를 하다가 문득... 이런 문제점들을 나는 알고 있는데, 그렇다고 오프라인 시장이 잘 안 되나? 그것도 아닌데... 어플은 또 사용하기 편리하고... 뭔가 내가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엄마사업을 조금 도울 작정으로 "내가 해볼까?"라고 이야기를 했고, 엄마 사업장으로 들어가려고 했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네가 차려서 해."였다. 둘째를 낳고, 엄마사무실을 왔다 갔다 하면서 일을 도은경험이 있기에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셨던 것 같다. 그렇게 남편명의로 2000만 원을 대출받아서 창업을 도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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