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도호도 Sep 09. 2022

오래된 관계

제주살이 23일차 2022년 8월 23일

친구 J와 그녀의 남자 친구 Jay가 제주도로 휴가를 왔다. 마침 내가 있는 동쪽에서 여행을 한다길래 저녁 약속을 잡았다. 나와 친구 J는 초등학교, 중학교 동창이다. 친하게 지낸 건 중학교 2학년 때부터였는데 그때 나와 J, 또 다른 친구인 H까지 셋이 같은 반이었다. 우린 당시 방영하던 드라마를 따라 하며 놀았다. 일종의 가족 역할극에서 내가 딸, J가 엄마, H가 아빠 역할을 맡았다. 그리고 우리는 그 엄마 아빠 놀이를 13년 동안이나 하고 있다. 셋 다 끈질기게 같은 거 하나로 참 잘 논다.


나의 가짜 엄마 J는 우리 셋 중 가장 인내심이 강하다. 초등학교 때부터 좋아한 아이돌 가수를 아직까지 진심으로 좋아한다. 연예인을 만날 수 있는 직장에서 일하는 J는 얼마 전에 '오빠'의 실물 영접을 하였다고 한다. 저녁 밥상을 기다리는 동안 J가 인파 속에서 따낸 '오빠'의 목소리를 나에게 들려주었다. 취재진을 향해 "감사합니다."라고 형식적으로 인사하는 한 남자의 목소리가 쥐꼬리 만하게 들렸다. 오빠들에 관한 건 소머즈 귀를 가진 J는 들릴락 말락 한 "감사합니다." 소리에 매우 흥분하며 기뻐하였다.


J는 다른 오빠도 오래 좋아한다. 내가 항상 결혼은 언제 하냐고 놀릴 정도로 남자 친구인 Jay와 오래 사귀었다. 결혼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J는 진절머리를 치며 종자 개량을 위해 키 크고 눈 큰 외국인을 만나겠다고 말한다. 옆에 앉은 Jay가 듣고 상처받진 않을까 내가 다 눈치를 보았다. 하지만 오래된 커플에게는 매일 하는 농담인지 둘이 티격태격하다가 말았다. 연애니 결혼이니 생각이 없어진 나도 이렇게 죽이 잘 맞는 커플을 보면 아직까지 부러운 감정이 생기곤 한다.(하지만 내가 직접 하긴 귀찮다. 하하하)


나는 J의 끈질김 덕분에 오래 관계를 맺고 있는 친구들이 많다. 나에겐 세 그룹의 동네 친구들이 있는데 모두 10년이 훌쩍 넘은 막역한 사이이다. 그리고 거기엔 모두 J가 있다. 나는 관계를 새로 맺는 것에 대해서는 거침이 없지만 늘 그 관계를 지속하기 어려워한다. 애초에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모토로 연락이 없는 걸 최우선으로 여긴다. 게다가 나는 머릿속이 복잡할 때 정리를 하는 버릇이 있어서 그나마 남은 인간관계도 모두 끊어버릴 때가 있다. 늘 먼저 연락해주는 J가 없었으면 과연 내게 남은 친구들이 있었을까 의문이다. 나는 참 인복이 많은 사람이다.



그나저나 며칠간 세상의 온갖 걱정과 고민거리를 혼자 다 짊어진 듯이 살았는데 오랜만에 동네 친구와 만나서 시시콜콜한 옛날이야기를 하니까 너무 좋았다. 추억은 꺼내볼수록 더 빛이 나는 걸 다시금 알게 된 하루였다.



제주도에서만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인 고등어회를 Jay님^^께 얻어먹었다. (고등어는 성질이 급해서 물 밖에 나오자마자 죽어버린다.)
J가 선물이라며 준 말라비틀어진 팝콘 모양의 돌. J는 편도결석 돌이라고 하였다. 으으...!


이전 08화 가난에서 벗어난 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