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살이 41일차 2022년 9월 10일
얼마 전에 들은 이야기. 사람의 감정을 극심한 우울&슬픔(0)~하늘을 날아갈 것 같은 기쁨(100)까지 있다고 할 때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은 평소에 기분이 50이다. 조증인 사람들은 갑자기 100까지 치솟는 경향이 센 편이고, 우울증인 사람들은 0으로 가는 경향이 센 편이다. 그러면 조울증은 0에서 100까지 왔다 갔다 하는 거라고 생각되겠지만 사실 50에서 100까지 왔다 갔다 하는 편이 많다고 하였다. 100까지 쉽게 올라가서 50만 되어도 우울하고 슬프다고 느끼는 것이다.
이 말을 듣고 내 작은 눈이 순간적으로 엄청 커졌다.(유레카!) 그래서 내가 우울했었구나. 객관적으로 따지고 보면 우울할 일도 없는데 스스로 구덩이를 파고 들어가는 내 꼴이 우스웠다. 그동안 얼마나 재미있게 살았으면 100인 상태가 많았을까. 이제는 체력이 받쳐주지 않고 그에 맞게 욕심도 없어져서 50 정도가 된 것인데... 그런데 나는 살면서 이런 적이 처음이라 계속 당황하고 방황하고 있었다. 사춘기가 10대 때 안 오고 20대 후반에 와서 참 살기 팍팍하다.
그래도 배에 기름칠은 할 수 있었다. 퇴근할 무렵, 사장님께서 추석 맞이 전을 한가득 싸주셨기 때문이다. 반찬통에 가지런히 담긴 전들이 오늘 하루를 조금은 특별하게 만들어 주었다. 나는 이제 나의 체력에 한계를 느껴 요리를 안 하기로 결심하였지만(본격적으로 일한 지 고작 1년이 조금 넘었는데 앉으나 서나 무릎이 시리다.) 여전히 음식이 주는 이 따뜻한 느낌은 너무 좋다.
기분이 조금 좋아져서 일까, 식욕이 조금 돌아왔다. 이왕 먹는 거 제대로 먹고 싶어서 컵라면에 김치까지, 상을 차렸다. 후루룩 후루룩 냠냠 쩝쩝. 맛있게 먹는 사이, 과식 증상이 다시 도졌다. 2~3일은 두고두고 먹겠다고 생각한 전 한 통을 다 비워냈다.(이거 저녁도 아니고 야식인데...!) 그리고 홀린 듯이 편의점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사 왔다. 나에게 프랑스인의 피가 흐르는지, 배가 찢어지는 한이 있어도 후식은 먹어야 했다. 아이스크림 중독자인 나는 영화를 보면서 아이스크림을 두 통이나 퍼 먹었다. 영화도 별 재미가 없었고 아이스크림도 도통 무슨 맛인지 알 수가 없었다.
뭐든 적당히 즐기다 끝내는 법을 모르는 나는 나 자신을 해치기를 참 잘한다. 이런 걸 중독이라고 하는 거겠지? 조울증으로 시작해서 중독으로 마무리 짓는 오늘의 일기가 참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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