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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도호도 Oct 01. 2022

중독은 새로운 중독으로 치료해야 한다

제주살이 42일차 2022년 9월 11일

어제 컵라면, 전, 좀 짜게 담근 무생채에 아이스크림까지 퍼 먹고 잤더니 아침에 두통이 있었다. 술은 이제 입에도 안 대는데 음식으로 숙취를 경험할 줄은 몰랐다. 침대에 누워 자괴감에 몸부림쳤다. 그래… 난 프로 과식러에 당 중독이 맞았어. 내가 중독자라는 게 너무 창피하지만 인정하기로 하였다. 오늘부터 빠르게 흡수되는 단당류가 주는 긴급한 위로를 끊기로 하였다. 언젠가 삶이 힘들 때 다시 빠질 수 있지만... 그렇다면 더더욱, 잠시라도 끊어야 했다. 안 그럼 죽어!


찌뿌둥한 몸을 겨우 일으켜 작업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청소를 시작하였다.



예전엔 청소하는 내가 싫었다.  엄청 깔끔 떠는 성격이라 집안에서 청소를 나서서 하곤 하였다. 학업과 살림을 병행했다고 해도 족하다. 아래는 나의 살림  풀이를 담은 시를   적어보았다.



오늘의 살림 루틴


빨래하고 널고 개고

어질러진 물건 정리

청소기 돌려 돌려

걸레 빨아 바닥 닦아


냉장고 털어 밥상 차리고

다 먹은 건 바로 설거지

유통기한 확인하고

선입선출 확실하게


제일 싫은 욕실 청소

곰팡이야 다 죽어라

락스 뿌리고 잠시 대기

솔로 빡빡 문대 버려


뭐라고? 문이 고장 났어?

공구 꺼내 뚝딱뚝딱

도배 페인트 전선작업

수납장까지 다 만들어


해도 해도 티가 안 나

안 하면 바로 티나

나도 살림 그만할래

(누구야! 누가 닭뼈 음쓰에 버렸어!)

에휴… 남이 하면 성에  



한창 청소&살림에 집착할  가족들은 어지르기만 하고 나만 청소하는  너무 싫었다. 싸우기도 엄청 싸웠다. 나중엔 해결책  하나로 숙박업소처럼 이러저러한 주의사항을 써서 집안에 붙여놓기도 하였다.(욕실 사용  물기 제거해 주세요~, 행주는 빨아서 꼭 널어놓으세요~, 세탁기는 이렇게 쓰세요~) 이건 조금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가족들이 내가 원하는 수준으로 청소에 동참을 하고 나서도 나는 ‘청소하기 싫은데 자꾸만 청소를 하는 행동을 멈출  없었다


하기 싫으면  하면 되지, 나는  자꾸 청소를 할까. 청소업을 해야 하나? 나름 진지하게 고민도 해봤다. 그러다  나오고, 가족들과 떨어져 살 때 내가 전처럼 청소를 하지 않는다는  알았다. 나는 청소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청소로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이었다. 내가 집에서 청소를 그렇게나 했던 이유는, 집에만 있으면 스트레스가 쌓여서 그랬던 것이었다.


뒤돌아 생각해보니, 나는 ‘모든 것이 정돈된 깔끔한 상태’에 대한 강박이 있었던 것 같다. 얼마나 강박이 있었냐면 술 먹고 집에 돌아와서 변기에 토하다가 변기에 물때가 보이면 토 다하고 욕실 청소를 하는 식이었다. 이러한 강박은 다행히 미니멀리즘을 알게 된 이후에 점점 옅어지고 있다. 깔끔한 상태에 대한 강박을 물건 자체를 줄이는 미니멀리즘 강박으로 교체한 것이다.



거기서 힌트를 얻었다. 아하, 중독은 새로운 중독으로 덮는 거구나! 오늘 나의 머리를 욱신거리게   중독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나에겐 정말  난제이다. 잠시 끊어  (여기서 끊는다는  자연적으로 생각이  나는 상태를 말한다.) 있는데 그땐 정말 건강하게 살려고 노력했던 때였다. 그래서... 나는 다시 건강하게 살기로 하였다. 나는 ‘건강중독자가  거다! 오늘은  중독을 끊기 위한 첫걸음으로 몸을 움직이는 청소와 빨래를 하였다.


전처럼 “어지르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네!” 성질을 부리지 았다. 내가  흘려 움직인 만큼 정리되고 깨끗해지는 상황을 즐겼다. 어쨌든 청소 스킬도 내가  힘으로 얻은 생존 능력  하나이고 나는  능력 덕분에 어딜 가나    있게 되었으니... 좋은  좋은 거지!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였다.


청소를 즐기면서 하니 어느 순간, '~ 이제 힘들어서 그만할래~'가 되었다. 개운하게 찬물 샤워를 하고 노트북 앞에 앉아 브런치에 올릴 글들을 썼다. 초집중 상태로 글을 쓰니 문장이 줄줄 써졌다. 평소엔 하루 1 쓰기도 버거웠는데 3개나 썼다. 아싸! 세이브 원고가 생겼다. 역시 좋은  좋은 거다.


땀 흘려 청소한 뒤 맞이하는 평화. 역시 사람은 몸을 움직여야 한다. 적당히.
오후의 월정리 바닷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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