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묘의 눈으로 바라본 인간세상
회사 동료인 B는 고양이를 키운다. 고양이를 키운 지 벌써 5년이 넘었다고 한다. 처음 고양이를 키우게 된 것은 갱년기에 접어든 아버지를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녀의 아버지는 갱년기 우울증이 심했다. 아마 눈에 넣어도 안 아팠을 딸 세 명이, 이제는 필요가 있을 때만 애교를 부리고 평소에는 무뚝뚝하는 바람에 갱년기가 더 심해졌을 거라고 했다. B의 아버지는 고양이를 정말 좋아해서 최고급 집과 먹이 등에 몇백만 원을 들였다. 고양이를 싫어하던 그녀의 어머니도 이제는 집에 들어오면 딸들의 이름보다 고양이를 먼저 찾는다고 한다. 그녀가 회사에서 하는 이야기의 반은 그녀의 고양이 이야기이다.
그런가 하면 D는 고양이를 무려 7마리나 키운다. 그녀가 이전에 잠깐 일을 쉴 때, 우울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마침 키운 고양이가 너무 위로가 되었다고 한다. 이에 한 마리, 한 마리 입양을 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일곱 마리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녀는 검은 옷은 입지 않고 사료값과 고양이 용품에 매달 꽤 많은 돈을 사용한다. 여행을 갈 때에는 고양이 관리사를 고용하고, 여행지에서는 고양이들의 선물을 구매한다.
사실 나는 어릴 적에 강아지를 몇 번 키워봤을 뿐, 반려동물과 긴 시간을 보낸 적은 없다. 그래서 '굳이 동물에게 저렇게까지 시간과 돈과 애정을 쏟아야 하나?'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그들은 고양이를 동물이 아니라 가족으로 인식한다. 그들에게 고양이는 막냇동생이고, 자식들이다.
영화의 줄거리는 주인공인 사토루가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더 이상 그의 반려묘인 나나를 키울 수 없게 되어, 나나를 맡아줄 만한 친구들을 찾아다니는 이야기이다. 사토루와 나나는 길고양이와 캣맘으로 만났다. 나나는 도도한 성격의 고양이었기에 사토루에게 쉽게 마음을 주지는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나나는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고, 이를 사토루가 발견하여 나나를 동물병원에 옮겨 치료를 해준다. 나나가 깨어났을 때, 사토루는 안심의 눈물을 펑펑 흘린다. 나나는 자신을 위하여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감동하여 그의 고양이가 된다. 그 정도로 고양이를 사랑하는 사토루는 어쩌다가 나나를 다른 사람에게 입양 보내려 할까?
사토루는 초등학교 친구였던 코스케와 고등학교 친구이자 첫사랑이었던 치카코와 그녀의 남편 스기 슈스케를 차례로 만난다. 이 과정에서 사토루가 왜 교통사고가 난 나나를 기를 쓰고 살리려 했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거기에는 나나가 사토루의 첫 번째 고양이 하치와 너무나도 비슷했으며, 비슷한 사연을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사토루는 초등학교 6학년 시절, 소꿉친구였던 코스케와 함께 버려진 고양이 '하치'를 줍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사토루는 하치를 입양하게 된다. 하치는 항상 가족들 간에 화목과 화해를 이끌어주던 존재였다. 그러던 와중에 사토루의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죽게 되고, 하치는 사토루에게 유일한 가족이 되었다. 판사인 이모에게 입양되어 살게 된 사토루는 이러 곳으로 이사를 다니게 되고, 하치를 다른 이에게 맡길 수밖에 없게 된다. 이때, 코스케는 자신이 하치를 맡고 싶다고 부모님에게 부탁했지만, 강압적인 코스케의 아버지는 코스케를 꾸짖으며 이를 거절한다. 결국 하치는 코스케가 아닌 다른 사람이 맡게 된다.
사토루가 코스케를 찾아갔을 당시, 코스케의 아내는 친정에 가 있는 상태였다. 코스케의 아내도 고양이를 좋아하기에 혹시나 고양이를 입양하면, 아내가 돌아올까 하는 마음에 코스케는 사토루의 제안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아내가 친정집으로 간 이유는 코스케의 아버지가 그녀에게 상처를 주었기 때문이다. 아내가 유산하였을 때, 아버지는 '그래도 아기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확인하였다.'라는 말로 아내에게 상처를 줬다. 코스케는 강압적인 아버지를 거스를 수 없어 대들지도 못하고 친정으로 떠나는 아내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사정을 알게 된 사토루는 코스케에게 나나가 아닌, 코스케와 그의 아내만의 새 고양이를 키울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그는 나나를 데리고 다음 친구에게로 간다.
다음 친구는 바로 사토루의 첫사랑인 치카코 부부이다. 고등학교 시절 사토루는 방학 때 하치를 보러 가기 위해, 치카코의 찻잎 농장에서 일하며 돈을 모은다. 하치를 보러 가기 며칠 전, 사토루는 하치가 교통사고로 죽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사토루는 부모님을 교통사고로 잃고, 남아있던 유일한 가족 하치마저 교통사고로 잃게 된 것이다. 좌절에 빠져 모든 것을 포기하려는 사토루에게 치카코는 반드시 일을 끝 마치고 제대로 하치에게 인사를 하러 가라고 조언한다. 사토루는 치카코의 응원에 힘 입어, 하치를 보고 오게 된다. 사토루는 치카코에게서 매력을 느낀다. 이런 사토루와 치카코의 관계를 지켜보던 스기는 당황한다. 그는 사토루의 같은 반 친구이며 치카코의 소꿉친구이다. 스기는 이 일을 계기로, 그동안 알지 못했던 치카코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는 용기를 내어 치카코에게 고백한다. 그렇게 치카코와 스기는 연인이 되고, 사토루는 두 명을 축복해준다.
사토루가 치카코 커플에 이어,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은 바로 그의 이모이다. 이모는 사토루의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죽은 이후, 사토루를 입양하여 그를 키웠다. 이모는 판사로 일하기 때문에 많은 전근을 다녔었다. 그러던 그녀가 갑자기 판사직을 그만두고, 한 곳에 정착하여 살기로 결심한다. 그 이유는 자신이 입양한 사토루의 간병을 위해서다. 사토루는 불치병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입원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여 있었고, 그렇게 될 경우 자신 대신 나나를 돌봐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 이유 때문에 나나를 입양해 줄 사람들을 찾아 나선 것이다.
나나는 사토루의 이모를 싫어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사토루의 입원 소식을 알게 된 이후로 나나는 이모의 집을 나와 길고양이 생활을 다시 시작한다. 나나는 사토루가 병원 밖으로 산책을 나올 때마다 항상 그를 보러 간다. 그리고 사토루와 나나는 사토루의 죽음을 준비한다.
이 영화는 아리가와 히로의 소설인 『고양이 여행 리포트』를 영화화한 것이다. 이 소설의 화자는 고양이 '나나'이다. 어라?! 고양이가 화자가 되어 사람을 관찰하는 이야기라고? 나쓰메 소세끼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형식과 완전히 똑같다. 마치 작가는 그것을 염두에 두고 소설을 쓴 것처럼, 맨 앞부분에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일부분을 인용한다.
나는 고양이다. 이름은 아직 없다,라고 말씀하신 훌륭한 고양이가 이 나라에 있었다고 한다. 그 고양이가 얼마나 훌륭했는지는 모르지만, 이름이 있다는 점 하나만은 내가 그 고양이를 이겼다고 본다. 물론 그 이름이 마음에 드는지 여부는 별개 문제다. 내 이름은 성별과 너무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고양이 여행 리포트』中 6페이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고양이와는 다르게 『고양이 여행 리포트』의 주인공 나나는 사람들을 단순히 관찰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나나는 진정 사토루를 친구로 여긴다. 그와 감정을 공유하고, 그의 죽음을 진심으로 슬퍼한다. 나쓰메 소세끼가 인간 삶의 어리석음을 고양이라는 완전히 다른 존재의 눈으로 관찰하여 그려냈다면, 아리가와 히로는 고양이는 인간과 다른 존재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 같다. 마치 고양이가 입양되는 것처럼 사토루가 입양된 것. 그리고 사토루가 하치는 자신의 유일한 가족이라고 우는 장면들에서, 고양이와 인간은 다를 바 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고양이는 인간들의 관계를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존재로 그려진다. <고양이 여행 리포트>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고양이를 통하여 화해와 화목을 갖게 된다. 사토루의 가족은 싸움이 일어날 때마다 하치라는 고양이를 통해 화해를 했고, 사토루는 하치를 통해 가족을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 사토루의 소꿉친구 코스케는 아버지에게 저항하는 의미로, 아내와 새로운 고양이를 키우게 되고 마침내 화해를 이룬다. 첫사랑인 치카코와 그의 남편 스기는 사토루와 하치 덕분에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사랑을 이루게 된다. 항상 떠돌아다니던 이모는 나나 덕분에 한 곳에 정착하여 살 수 있게 된다. 이처럼 <고양이 여행 리포트>에서 감독은 명확하게 '고양이는 사람 그 이상이나 그 이하의 존재가 아닌 동등한 존재'라고 밝히고 있다.
누군가는 고양이나 강아지 같은 반려동물들은 인간의 슬픔과 외로움을 달래주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진정으로 반려동물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동물들은 가족이다. 그들의 관계는 일방적으로 인간이 그들을 '택한 것'이 아니다. 마치 나나가 사토루와의 관계를 선택한 것처럼, 반려동물과 주인은 연이 닿아 '만나게 된 것'이다.
나는 그렇지 않았지만,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훔치는 사람들이 많았다. 만약 나나가 고양이가 아닌 사람이었다면 나는 어땠을까? 내가 병에 걸려, 내 동생을 누군가에게 맡기려고 떠나는 여행이었다면? 나 또한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인물에 공감되고 슬픔을 느꼈을 것이다. 아마도, 영화관에서 연신 뺨에 흐르는 눈물을 훔치던 사람들은 반려동물을 키우거나 그러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들에게는 <고양이 여행 리포트>가 단순한 고양이가 아닌, 가족과의 이별을 그려낸 영화일 테니 말이다.
예고편 보기
https://kakaotv.daum.net/v/3971081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