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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 가난뱅이 Jun 12. 2019

고양이와 함께 산다는 것

레이와의 하루

인스타 @ray171010



우리 집 레이는 한국 길고양이 종인 코숏이다.
수컷이고 이제 1년 8개월이다.



퇴근을 하고 아파트 비밀번호를 누르면 안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문을 열면 레이가 문 앞에서 내 다리와 손에 얼굴을 비빈다. 신발에 비비기 전에 얼른 신발을 신발장에 넣는다.
(우리 집 현관에는 신발이 없다. 비가 와서 신발이 젖었을 경우엔 현관 밖에서 신발을 벗고, 맨발로 현관을 딛기도 한다. 우리 집 현관은 언제나 깨끗하다. 레이가 뒹굴 수 있도록)
내가 현관에 들어오면 현관에서 한 번 뒹굴고, 스크래쳐로 달려가 기쁨의 세리머니를 한다. (스크래쳐 뜯기)
다시 내 손에 얼굴을 비비고, 궁디팡팡을 해달라고 엉덩이를 내민다. 한참 동안 궁디팡팡을 해주고 옷을 갈아입으러 옷 방으로 들어간다.
옷방에 따라 들어온 레이는 또 궁디팡팡을 해달라고 한다.
대충 해주고 옷을 갈아입으면 소리를 내서 나를 부른다. 내 얼굴에 자기 얼굴을 비빈다.



늘 놔두는 건사료 외에 퇴근 후 저녁으로 통조림을 준다.
우리도 저녁을 먹는다.
레이는 우리가 저녁을 먹을 동안엔 방해하지 않는다.
자기 저녁을 먹은 후 혼자 베란다에서 밖을 구경한다.



식사 후 거실에서 책을 보면 자기를 보라고 엄청 방해한다. 우리 둘 사이를 번갈아 다니면서 책 위에 앉아 자기만 보라고 한다. 궁디팡팡을 해주거나, 다른 책을 본다.
레이와 함께 책을 보려면 두 권을 봐야 한다.
한 권은 레이가 깔고 앉기 때문이다.


또다시 책에 빠지면 이제는 냥~ 소리를 내서 주의를 끈다.
그래도 무시하면 아주 약 오르다는 듯이 길게 냐~~~~앙 거린다.


레이는 졸릴 때 잠투정을 많이 한다.
책상 위로 스크래쳐를 올려주면 잠을 잔다.


하루에 몇 분씩 장난감으로 놀아주고,
눈이 마주치면 잡으러 달려가는 우리만의 잡기 놀이를 자주 한다.


요즘은 털뿜뿜 기간이라 하루 한 번 빗질을 해준다.
턱 밑에 턱드름이 생겨 따뜻한 물수건으로 턱 밑을 닦아준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예쁘다고 말하고, 뽀뽀를 하고, 쓰다듬는다.


레이는 털이 정말 부드럽다.
실크보다 더 부드럽다.
레이 이마에, 목에 코를 박고 뽀뽀를 하면 따뜻한 냄새가 난다. 햇빛 냄새 같은...
뽀뽀 후 코와 입에 털이 뭍기도 한다.


밤에 자려고 누우면
레이는 우리가 보이는 자리의 스크래쳐에 앉아 우리를 가만히 보다가 자고 싶으면 이불 위로 올라온다. 우리가 눕자마자 오는 날도 있고, 좀 있다가 오기도 한다.
잘 때는 그의 다리 사이에서 잔다.
자다가 새벽에 갑자기 내 얼굴 쪽으로 오면서 아주 작게 엥~ 한다.
나는 자다가 레이를 쓰다듬어 준다.
쓰다듬다가 잠이 들면 다시 작게 냥~ 하면서 나를 깨운다.
충분히 쓰다듬어 주면 그의 다리 사이에 가서 자거나,
내 겨드랑이에 코를 박고 나를 끌어안은 포즈로 잔다.
내 몸에 팔다리를 다 올리고서.


아침에 기상 벨이 울리면 자다가 와서 아는 척을 한다.
우리가 늦게 일어나는 날이면 밥을 먹고 물을 먹고 다시 와서 자거나 밖에서 혼자 조용히 논다.


내가 씻으러 화장실에 들어가면
화장실 앞에서 계속 기다린다.



​가끔 혼자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우리가 있는 곳에 같이 있고 졸졸 따라다닌다.


종종 놀아달라고 손과 팔을 물기도 한다.
가끔은 너무 세게 물어서 상처가 나기도 한다.
서로 레이에게 뽀뽀하느라 우리 사이의 뽀뽀가 줄어들고
취미생활에 집중하려면 방해를 하고
털이 많이 빠져 매일매일 청소기를 돌려야 하고
예전보다 부지런히 치워야 하지만
그래도 미워할 수 없는 우리 고양이.




레이가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땐 어떤 기적이 일어나서 레이가 하는 말을 1분만이라도 알아들었으면 좋겠다는 소원이 있었다. 이제 레이가 온 지 1년이 넘게 지나자 우리는 레이의 말을 거의 알아듣는다.


냥~ , 에용~, 냐~옹 등 아주 다양한 소리를 다양한 크기로 내는데 이젠 무슨 말인지 알겠다. 그리고 자주 다양한 목소리로 엄마~라고 한다. (믿기지 않겠지만 정말입니다.)



바람처럼 살고 싶은 생에
온전히 나에게 모든 걸 의지하는 레이가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고양이랑 함께 산다는 건
아주 말랑말랑하고 보들보들하고 따뜻한 생명체가 옆에 있다는 것이다.



우리 집에는
호기심이 많고, 기분이 자주 변하고, 예민하고,
귀찮을 정도로 놀아달라고 보채고, 잠투정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만져달라고 다가오고, 궁디팡팡 해달라고 하고, 안락의자에 앉아 있으면 꾹꾹이를 해주고, 다리가 저릴 때까지 내 다리 위에 앉아 푹 잠드는 고양이가 있다.


























 PS.  아직도 고양이가 없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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