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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디 Sep 14. 2023

요즘의 즐거운 생활

맨발걷기, 그것은 매직... 


두 신발을 나란히 양손에 걸어 뒷짐지고 바람을 맞으며 한가롭게 걷는 맨발 산책...

동네 공원의 지압 로드에서라면 그런 적용은 어려울 것이다! 


우리 동네 공원의 지압 로드, 일명 고난의 길은 그 길을 만들었을 작업자분들의 세심함과 어떤 집요함이 돋보인다. 1단계엔 뭉툭하고 동그랗고 맨들맨들한 돌들을 깔아 놓으셨고, 마지막 단계엔 거의 돌칼과 같은 뾰족한 돌을 세로로 세워서 만들어놓으셨다. 내가 최근 경험한 어떤 것보다 충격적인 하이 레벨이다. 

나는 거기서 오랜만에 정말 크고 본능적인 고함을 내질렀다. 그럴 때 느낀다. 나는 애니멀이다. 그래, 인간도 동물이지 않은가? 다행인건, 우리 댄스동아리 회원들과 같이 그 길을 걸었는데 그렇게 울먹이며 웃으며 비명을 지르는 이가 나 하나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평일 낮이었어서 다행이었다 후후)


동네 공원의 지압 코스에서 맨발걷기를 제대로 하고 있다면 응가 마려운 말처럼 '히히힝...' 소리를 내며 내 몸 어딘가에서 흘러나왔다는 사실이 몹시도 민망한 신음과 비명 사이의 음성을 흘려댈 것이니.  절대 나긋나긋하게 땅을 디디지 못할 것이다. 나같은 경우는 '흐흐흥...', '으아아아아악', '으힉!' 등 참으려해도 단전에서부터 비명이 솟구친다. 그렇게 눈물도 쬐끔 흘려가며 맨발걷기를 끝내면 발에서 후끈후끈 열이 올라온다. 그리고 신발을 다시 신고 걸으면 뭔가가 달라진 느낌이 든다. 발이 에너지를 뿜는 느낌...(이러니까 약파는 것 같지만)

"뭐 돈주고 결제하라, 이거 사라 저거 사라고 하면 그건 사기지. 그런데 맨발걷기는 맨발로만 걸으면 되어!"

맨발걷기 매직을 전수해준 동네 친한 언니의 말이다. 무릎을 탁쳤다. 나를 위한 운동이구나 이거. 

다른 도구나 기구, 전용 운동복이나 운동화, 심지어 양말도 필요치 않다. 준비물은 맨발, 오로지 나의 맨발 하나. 그게 좋았다. 헬스장에 가도 기구는 많이 사용하지 않고 플랭크나 스쿼트, 복근운동, 스트레칭 등 맨손 체조를 좋아한다. 어디서든 사람만 없으면 헤드폰을 끼고 춤을 추고, 안무를 구상하는 나는 운동에 있어선 미니멀리스트다. (생활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다...후_) 언제 어디서든 가볍게 시작할 수 있는 이 운동을 사랑하게 되었다.


이번주부터 동네 문화회관에서 무료 도예 강좌를 듣기 시작했다. 10분 정도 시간이 남아 바로 옆 초등학교로 향했다. 잠시 짬이나면 이젠 맨발걷기할 좋은 곳을 찾아본다. 학교 운동장에는 아직 공을 차는 학생들이 있고 할머니들이 삼삼오오 짝을 이뤄서 걷고 계신다. 해가 뉘엿뉘엿 지는 시간, 시골의 작은 학교는 얼마나 평화롭고 아름다운지. 그러나 아쉽게 운동장은 인조잔디! 다행히 운동장 옆 놀이터가 자갈모래인게 눈에 띄어 얼른 맨발로 거길 걸었다. 고난의 길보다 훨씬 편한 코스. 자갈이 보드랍게 느껴진다. (처음부터 초하이레벨을 체험하면 그 아래 단계가 편해지는 매직 ^^) 그렇게 걷고 있자니 한 명, 두 명 참여자가 늘어난다. 어느새 할머니 세분, 나, 아주머니 한 분이 줄을 지어 맨발걷기 레일을 만들었다. 자박, 자바박, 자바바박. 각자 다른 걸음걸이로 앞사람이 걸어간 땅을 밟고, 또 그 다음 사람이 밟는다. 선선한 늦여름-초가을 날씨에 어울리는 운동. 모두 함께할 수 있는 운동. 오로지 맨발이면 되는 운동.


아이들이 모두 하교한 초등학교는, 조금 쓸쓸할지라도 그만큼 고요한 아름다움이 있다. 다른 날은 짝꿍과 손을 잡고 맨발로 동네 학교 운동장을 산책한다. 저 멀리 노고단이 보이고, 해는 질 준비를 하며 하늘에 붉은 기운을 퍼트린다. 아름드리 나무가 울창하게 품어주는 운동장을 걷자니, 발이 아픈 것도 잠시 이 세상에 너그러운 마음을 품게 된다. 이번 학교는 모래 운동장이라 더욱 earthing되는 기분이다. 얼씽(earthing)은 발이 대지와 연결되며 몸에 있는 정전기가 빠져나가며, 동시에 대지와 연결되는 느낌이라고 하는데. 나는 그냥 발 전체가 땅에 딛어지는 기분이 좋다. 발바닥 전체를 고르게 다 눌러주는, 최고급 발마사지를 받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내 몸 무게로 누르니 더욱 그렇다) 


몸은 자연 바람을 맞고, 발은 땅과 만나고. 손은 짝꿍을 잡고. 

나는 이 루틴이 너무나 사치스럽다는 생각을 하며 걷는다. 



 

나 홀로 천은사 맨발걷기


혼자 걷는 길


맨발걷기하다가 만난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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