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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K Feb 12. 2023

좋은 콘텐츠와 분량

종종 한 줄로 요약 가능한 이야기를 길게 늘려 쓰느라 고생한 글을 읽곤 한다. 반대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고 아이디어도 많은데 그걸 짧게 압축하느라 고생한 글도 본다. 어느 쪽이 됐든 쓰는 사람도 힘들고 읽는 사람도 피곤한 일이다.


짧은 이야기를 길게 늘려 쓴 글은 일단 지루하다. 없어도 되는 말이 많고 장황하다.  글에 집중이 안 되니 읽다가 자꾸만 딴 생각을 하게 된다. 긴 이야기를 짧게 압축한 글은 모호하다. 생략이 많으니 뭔가 공허하고, 논문에서나 쓰이는 학술적 단어와 추상어가 난무한다.   


분량이 좋은 글을 망치는 거다.


글에 분량이 정해져 있는 거, 구시대의 산물 아닌가? 글이 종이에 담겨 널리 읽혔을 때, 그땐 분량이 중요했지. 지면은 한정되어 있고 담아야 할 글은 많았으니까.


그런데 지면이 한계가 없어진 지금 왜 아직도 지면의 한계에 갇혀 있는거야. 여전히 많은 사람이 200자 원고지 몇 장, A4 용지 몇 장 같은 말로 분량을 정한다. (원고지는 진짜 그만 좀 했으면. 이건 뭐 잠실에서 홍대까지 거리는 80리 길이라고 하는 거랑 뭐가 달라)


그런 말도 한다. 글이 너무 길면 요즘 사람들이 안 보네 너무 짧으면 깊이가 없네. 사람들이 안 읽는 이유는 길거나 짧아서가 아니라 재미가 없어서다.


디지털 시대에서 글쓰기는 지면으로부터 자유롭다. 그렇기 때문에 분량과 형식으로부터 자유롭다. 길고 짧은 게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쓰는가가 중요하다.


글뿐 만이 아니다. 음악도, 영화도 마찬가지다. 영화고 음악이고 자기 디바이스로 자기가 보고 싶을 때 보고 싶은 만큼 보는 세상에서 노래가 3~4분이어야 하는 이유는 뭐람? 영화가 두세 시간 언저리여야 하는 이유는 또 뭐고?


익숙치 않고 대중적이지 않으면 사람들이 찾지 않으니까? 그건 너무 안일한 생각이라구. 그 익숙함이 크리에이티브를 죽인다. 우리 주변에 익숙한 것들 대부분은 등장 당시 파격적이었던 것들이다.


만약 내가 사장이라면 직원이 ‘너무 파격적이지 않나요?’라는 말을 할 때마다 벌금을 매길 거다. 그 벌금을 모아 파격적인 일을 하는 사람에게 피자를 사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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