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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민 Mar 19. 2018

독립러의 시대에 대처하는 방법

[작지만 멋진 일을 만나다 ⑧ ] 독립활동가의 시대

“직업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선뜻 대답하기 힘든 나, 비정상인가요?”


조직에 속하지 않고 일하는 독립 연구자, 1인 활동가, 프리랜서, N잡러, 심지어 백수라고까지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 곁에는 이미 이런 사람들이 다양한 곳에서 갖은 풍파를 겪으며 꿋꿋이 살아가고 있다. 그것은 글을 읽는 당신의 이야기일 지도 모른다. 


이런 사람들을 모아서 고충을 들어보고, 함께 헤쳐나갈 방도를 궁리해보려는 시도가 시작되었다. 그들 스스로 일명 ‘독립러’로 명명하고, <독립활동가의 시대>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독립러들의 네트워크를 꿈꾸고 있는 우성희(이하 우), 송하진(이하 송) 님을 만났다.





‘독립활동가의 시대' 프로젝트 기획자 우성희(왼쪽), 송하진(오른쪽) 님 ⓒ이혜민


# 내가 바로 독립러입니다

1/ 두 분은 어쩌다 독립러가 되었나요?


송) 모 시민사회연구소에서 일했었어요. 우군은 옆자리 동료였구요. 그러다 제가 먼저 퇴사했어요. 다른 단체에서 다른 일을 경험해보고 싶어서 이직을 했는데, 8개월 만에 또다시 퇴사했죠. 아무래도 조직에 소속된 활동은 한계가 있다고 느꼈고 혼자 활동을 해보고 싶었거든요. 독립 연구자로 활동할 때는 서울시 마을 공동체 연구도 했었고, 청년 당사자 연구도 진행했구요. 그러다 다시 또 다른 조직에 계약직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약 2년간 이런 방황의 과정을 반복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온전히 독립러로서 우군과 함께 ‘듣는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어요.


우) 저도 송군과 같은 곳에서 일하다가 서로 다른 이유로 퇴사를 했어요. 건강 상의 문제가 있기도 했고, 진로 탐색의 기간이 30대 중반까지 이어진 느낌이랄까요?(웃음) 물론 그곳에서도 저는 굉장히 즐겁게 일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어느 순간 보람된 일을 하고 싶다는 열망이 너무 큰 나머지 자신을 쓸데없이 너무 착취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저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늘 “열심히 열심히, 우리가 잘 해야 해” 같은 분위기 속에서 자신과 서로를 착취하는 상황이 견디기 힘들었죠.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조직의 이름을 빌리지 않으면 스스로 이런 연구나 활동을 할 수 없는 걸까?” 실험해보고 싶기도 하고, 내가 하고 싶은 연구나 활동들을 좀 더 온전히 하고 싶기도 해서 ‘틈’을 만들고 싶었던 것 같아요.



2/ 그렇게 굳은 의지로 독립러가 되었는데, 독립적으로 활동하면서 힘든 부분은 없었나요?


송)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한동안 거의 N잡러 생활을 했었거든요. 어떤 조직에는 비정규직으로 이틀 정도 출근하면서, 동시에 받아서 하는 연구를 몇 가지하고. 그러다 보니 회사 다닐 때보다 바쁜 거예요. 벌이는 비슷한데 말이죠. 출퇴근 개념이 없으니 밤낮없이 일하게 되고, 내가 쉬면 누군가 대신해줄 사람이 없으니 모든 일이 멈춰버린다는 불안감도 생기고. 그러면서 이게 내가 원하던 것인가 싶기도 했어요.


우) 틈이 생기고 난 뒤, 저는 제가 하고 싶었던 대학원 공부를 이어가기도 하고, 청년 귀농귀촌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촌에 내려가서 친구들도 사귀고 나름 한동안 즐겁게 잘 지냈죠. 그와 동시에 받아서 하는 외주 일들이나 논문을 쓰기도 했는데, 온종일 벽을 보고 앉아서 컴퓨터와 책과 씨름하다 보니 입에 거미줄이 칠 정도로 하루에 한마디도 하지 않는 날들이 이어지더라고요. 혼자 하니까 마음대로 할 수 있어 좋은데, 한편으로는 의견을 나눌 사람이 없기 때문에 내가 한 일의 아웃풋에 대해서도 자신감이 없는 거예요. 이래도 괜찮은 걸까? 이 자리에 계속 맴도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반년 정도를 지내고 있었죠.



독립활동가의 시대 프로젝트 커버 ⓒ독립활동가의 시대



3/ 비슷한 어려움을 서로 다른 상황에서 겪던 두 분이 만나 ‘작당’이 시작된 거군요.


우) 작년 9월이었어요. 송군은 다시 회사를 다니다가 퇴사를 한 상황이었고, 저도 독립러로 생활하면서 여러 어려움과 답답함이 한창 쌓이던 시점이었죠. 처음에는 연구 공모사업을 같이 해보자는 생각으로 만나서 얘길 해봤는데, 서로의 처지가 너무 비슷한 거예요. 명함이 있을 때와 없이 일한다는 것이 다르더라는 것을 느끼고 있던 참이었거든요.

예를 들면, 우리는 무슨 일을 하냐고 했을 때 왜 한 문장으로 말하기 어려울까? 우리는 이렇게 주체적으로 일하고 있는데 왜 알바 취급을 당하거나, 백수 소리를 들어야 할까? 최소 수입은 보장도 안 되고, 전문성을 인정받기도 힘들까? … 근데 이렇게 나와서 보니 우리 같은 사람이 많더라는 거죠. 우리와 같은 고민을 가진 사람들과 같이 울타리를 만들어보자. 그런 생각으로 ‘독립활동가의 시대’가 시작된 거예요.

우리와 같이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을 한 번 묶어보고, 만나보고, 왜 그런 욕구가 있는지, 이런 사람들은 왜 발생했고, 뭐가 힘들고, 뭐를 같이 했으면 좋겠는지 발견해보자는 취지였어요.


4/ 그렇다면 그 전에 궁금한 것이, ‘독립활동가’는 과연 누구인가 하는 것인데요. 프리랜서, 1인 사업가, N잡러, 백수…도 독립활동가인가요? 그 정의는 뭔가요?


우)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페이스북과 빠띠에 ‘독립활동가의 시대’ 페이지를  열고 나서 많은 분들이 가입을 해주셨는데 “저도 독립활동가인가요?” 같은 질문을 많이들 하시더라구요. 그걸 보고 ‘독립활동가’란 무엇일까 저희도 많이 생각하게 되었어요. 우선, 독립활동가는 조직에 속하지 않고서도 자기 연구나 활동을 하는 모든 사람인 것 같아요. 또한 조직에 속했다 하더라도 자기만의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이기도 해요. 예를 들어 대학교 석박사 분들이 있겠죠. 그 사람도 분명 자신만의 관심사나 분야를 가지고 연구하는 사람이기도 하잖아요. 어떤 조직에서 전혀 다른 일하고 있으면서도, 그것과 별도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나 활동을 벌이고 있다면 그런 사람도 독립활동가이구요.


5/ 나를 ‘독립활동가’라고 이름 붙이고 정의하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우) 제가 이런 얘기를 하면 주변에서 “너 그냥 프리랜서 아니야?”라고 얘기를 해요. 근데 프리랜서나 아르바이트는 그 사람의 직업을 얘기하는 게 아니고 ‘일하는 형태’를 얘기하는 거잖아요. 너는 직업이 뭐냐고 물어봤을 때 ‘직장인’이야라고 말하는 거랑 다르지 않거든요. 그리고 그것은 나를 노동력으로서만 설명을 하는 거거든요. 그게 아니라, 독립000 –예를 들면 ‘독립예술가’ ‘독립연구자’ 등으로 소개했을 때 전문성을 좀 더 인정받을 수 있는 거죠. 그렇지 않으면 나를 그냥 시간당 인력으로만 생각하는 인식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이름들을 스스로 지어놓고 다니지 않으면, 나 스스로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는 걸 많이 느껴요.


송) 자신의 명함에 스스로를 뭐라고 쓸지 고민하는 게 필요해요. 명함이라는 게 우리가 사람을 항상 신뢰관계에서만 만날 수는 없기 때문에 필요한 거잖아요. 스스로를 정의하고 선언하지 않으면 그것대로 인정해주지 않는 경우가 많은 거죠. 저도 명함 없이 다니고 나를 설명할 게 없었던 시절에는 더 소극적이고 쭈뼛쭈뼛했던 것 같아요. 그게 독립활동가일 수도 있고 다른 이름이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데, 중요한 건 자기가 자기 스스로의 정체성을 선언해야 한다는 거죠.



고충토로 수다회에 참여했던 나무영 님이 디자인한 독립러 명함 ⓒ이혜민


# 혼자이면서 함께 하고 싶은


6/ ‘독립활동가의 시대’ 프로젝트를 통해 독립활동가들의 울타리를 만들고 싶다고 하셨는데, 어떤 것들을 기대했었나요?


우) 서로의 이익을 보호해줄 수도 있을 거라는 점이 가장 기대됐었죠. 우리가 각자 1인의 포트폴리오와 명함으로 활동하는 것보다, 함께 그룹을 지어서 포트폴리오를 같이 모으고 활동하면 일을 받거나 진행하는 데도 수월하지 않을까. 사업자등록증이나 단체등록증 같은 걸 같이 내서, 공동의 명함을 쓴다든지. 또, 계약서를 쓸 때도, 혼자 사인하게 두지 말고 함께 검토해주면 좋겠다든가. 월례 포럼 같은 걸 열어서 서로의 활동을 공유하고, 외부 사람도 초청하고 그러면 좋겠다. 이런 기대와 계획이 있었죠.


송) 처음에는 그런 강한 네트워크를 상상했지만, 일단 프로젝트가 시작되고 나서는 다른 것보다 과연 어떤 사람들이 여기에 관심을 보일까 하는 궁금증이 가장 컸어요. 실제로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있을까? 우리가 ‘독립러’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어떤 분야에 어떻게 존재하고 있을까? 그래서 일단 정말로 사람들이 모이면 앞으로의 방향과 뭘 해볼지 얘기해보기로 했죠.


7/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실제로 어떤 일들을 시도해보셨나요?


우) 우선은 다양한 분야의 독립활동가들을 세 차례 인터뷰하고 ‘독립활동가의 시대’ 페이스북 페이지와 미트쉐어 빠띠에 공유했구요. 두 번째는 오프라인 자리를 두 번 마련했는데요, 하나는 고충토로 수다회 같은 거예요. 어떤 어려움을 서로 겪고 있는지에 대해서 얘기하는 자리였죠. 또 하나는 ‘이그나이트’라는 이름으로 독립활동가들이 모여서 서로 무슨 활동을 하고 있는지 공유하는 모임을 가졌어요. 아까 말씀드린 월례포럼의 트라이얼 버전이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독립활동가 첫 번째 인터뷰이 곽승희 님 콘텐츠 ⓒ독립활동가의 시대



8/ 인터뷰를 했던 세 분의 독립활동가는 어떤 분들이었나요?


우) 첫 번째 인터뷰이는 <월간 퇴사>라는 잡지도 만들고, 팟캐스트도 하고, 다양한 활동을 하는 곽승희 님이었어요. 승희 님은 인터뷰 이후 ‘독립활동가의 시대’ 프로젝트 행사를 함께 준비하고 기록을 맡아주시기도 했죠. 두 번째 인터뷰이는 장애 여성 당사자로서 직접 장애학을 연구하는 독립연구자 소동 님이에요. 기존 대학에서는 장애학이 거의 사회복지 관점이나 의료적 관점만 있어서 독립적으로 연구를 해보려 하고 계세요. 세 번째 분은 직접 무대를 기획하는 독립 연주자 로망클라 님이에요. 음대나 미대를 졸업하고 시향 같은 곳에 들어가 정규직 연주자가 되지 않으면, 사회에서는 “음대 졸업해서 레슨하면서 살고 있어”라는 식으로 표현이 되곤 하는데, 실제로 그 분이 하고 있는 일은 훨씬 다양하고 가치 있거든요. 저희가 처음 독립활동가의 시대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모을 때 연주자가 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었는데, 그분 덕분에 생각지 못한 곳에도 독립활동가가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하게 됐죠.


7/ 고충토로 수다회와 이그나이트 등 오프라인 네트워킹 행사에는 어떤 사람들이 얼마나 왔나요?

송) 간담회에 열두 분 정도, 이그나이트에 열여덟 분 정도가 오셨어요. 먼저 열었던 고충토로 수다회에도 각자 사연들이 모두 다른 다양한 독립러들이 모였어요. 길게는 3~4년 정도 독립활동가로 살아오신 분들도 있고, 이제 막 퇴사를 했는데 이런 자리에서 얘기를 하다 보면 자기가 뭘 해야 될지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오셨다는 분도 있었어요.


우) 이그나이트에서는 그냥 참가만 하는 사람과 자기가 하는 활동들을 앞에 나와서 소개할 사람을 나눠서 받았어요. 저희는 처음에 대체 누가 발표를 하겠다고 나설까 걱정했었는데, 의외로 발표 하겠다는 사람이 많아서 조금 놀랐어요. 우리가 이런 자리를 만든 것도 혼자서 일하면 자기 작업물을 남한테 알릴 수 있는 기회도 제한되어 있고 그런 통로가 많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는데, 실제로 그런 기회를 원하셨던 분들이 생각보다 많이 있었던 거죠.


송) 발표하셨던 분 중에 인상적이었던 분은, 본인을 ‘상상력 크리에이터’라고 소개하신 분이었어요. 원래 흔히 볼 수 없는 직업인데, 자기 스스로 선언을 한 거죠. 이것이 나의 직업이고 나는 그걸 잘 하는 사람이라고 정의를 내리고 활동한다는 것이, 우리가 독립활동가의 시대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와 맞닿아서 공감이 됐던 것 같아요.


고충토로 수다회 현장 모습 ⓒ독립활동가의 시대(사진:날자)


8/ 그 시간을 통해서 독립러들의 어떤 의지와 욕구를 확인했나요?


우) 고충토로 수다회에 참여했던 한 분이 “저는____을 하고 있는 독립러:____입니다” 라는 빈칸이 있는 명함을 디자인해서 올려주신 거예요. 그걸 저희가 출력해서 이그나이트에 가져가 나눠드리기도 했죠. 이렇게 독립러가 독립러로서 자기 자신의 존재감, 정체성을 인식하고 표현하려 한다는 의지를 느꼈어요.


송) 독립활동가라고 했을 때 언뜻 들으면, ‘이 사람은 혼자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독립활동가라고 해서 고립되고 싶은 사람은 아니거든요. 연결에 대한, 소통에 대한 욕구가 있죠. 그 자리들을 통해서 많은 독립러들이 그런 욕구에 목말라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저조차도 항상 불안한 마음과 함께 살아가고 있거든요. 내가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 있을까? 지금 부딪히고 있는 문제들을 내가 잘 헤쳐나갈 수 있을까? 이런 의심들과 생각들을 항상 하면서 살아가는데, 이번에 이런 자리를 통해 힘을 많이 얻었던 것 같아요. 다양한 독립러들이 모여있는 자리에 앉아있으니, ‘아 정말 이런 세상이 왔구나’ 하는 안심도 되고 기대도 되었죠. 서로 힘을 주는 자리가 필요했기 때문에, 뭔가에 이끌리듯 우리도 이런 자리를 만들었던 것 같고, 그분들도 오셔서 서로 위안을 얻어간 것 같아서 다행이었던 것 같아요.



<독립러's 이그나이트> 참관기 콘텐츠 ⓒ독립활동가의 시대(사진:우성희,송하진/제작:곽승희)


# 독립활동가의 시대를 위해


9/ 그날의 만남이 또 다른 만남이나 일로 연결될 여지가 있을까요?


우) 물론 모임이 끝나고 다시 돌아와서 혼자 앉아서 일하고 있다 보면, 현실은 그대로인 것 같고, 곧바로 바뀌진 않아요. 그 고민들은 다시 이어지고 있죠. (웃음) 근데 일단 이 사람들의 존재를 알게 됐으니 그것만으로도 큰 수확인 것 같아요. 적어도 제가 만약 UX 디자인 쪽에 물어볼 일이 생기면 그 분야에 아는 사람이 없었는데, 이제 그 모임을 통해 알게 된 UX 디자이너 분께 물어볼 수도 있잖아요.


송) 계속해서 교류하고 소통하는 일은 필요할 것 같아요. 일단은 서로의 새로운 소식이나 공유하고 싶은 일이 있었을 때, 저희한테 알려주시면 ‘독립활동가의 시대’ 페이지에 올려드리는 식으로 페이스북 페이지를 거점으로 연결을 해나가려고 해요. 그리고 다음 모임은 어떤 형태로 누가 모일지는 아직 모르지만, 3월 말 쯤에 마련해보기로 했죠. 그 모임까지는 우리가 주관해보고, 그 자리를 통해서 또 계속 해보자는 필요가 생기면 또 다른 방식으로 이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10/ 이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다른 식으로 발전시키거나 이어 나갈 생각도 있으신가요?


송) 저는 사실 독립활동가들을 위한 잡지를 만들어보고 싶긴 해요. 프로젝트 과정 중에 인터뷰하는 게 제일 좋았거든요. 제가 원래 알던 사람이든 아니든 독립 활동가, 독립 연구자로서는 이런 고민을 하고 있었구나 하는 개인적 공감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공감 될 얘기라는 것도 느꼈구요. 그런 하나하나의 이야기들이 지금 시대에 필요한 얘기들인 것 같아요. 만약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 또 새로운 이야기가 나올 것 같고. 그래서 인터뷰하는 일을 지속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11/ 독립활동가들이 안정적으로 활동하기 위해 우리 사회에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요?


우) 고충토로 수다회를 열고 난 뒤 승희 님과 후기를 쓰면서 이런 얘길 했어요. 하고 싶은 게 많고 배운 게 다양한 우리가 설 수 있는 직업적인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점점 독립러로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많아질 거라는 것이죠. 그렇기에 청년실업을 이야기하기 전에, 독립러를 위한 사회적 토양을 마련해야 한다구요.

그런 의미에서 모든 일들에서 소속, 직함을 물어보는 일이 사라졌으면 좋겠어요. 일례로, 미트쉐어 프로젝트를 정산할 때조차 식비든 뭐든 소속이나 직함을 다 쓰게 되어 있어서 난감했거든요. 우리 프로젝트 취지가 그런 게 없는 시대를 사는 사람들을 찾자는 거였는데, 인터뷰를 하거나 회의비 지급을 할 때마다 “ 본명이 어떻게 되시고, 소속, 직함을 뭐라고 써야 할까요?” 라고 물어야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생겼죠. 또 이건 좀 더 확인이 필요하긴 하지만, 제가 듣는 연구소 ‘대표’라고 할 때와 그 전에 그냥 ‘프리랜서’라고 했을 때의 대우도 다르다는 걸 느껴요. 스스로가 ‘독립000’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도 소속이나 직함이 없어도 그 사람의 전문성을 인정해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줬으면 좋겠어요.


송) 저는 독립연구자들을 위한 연구 펀드가 있으면 좋겠어요. 청년허브, 서울연구원 등에 비슷한 게 있긴 한데 그건 사실 시민들 전체를 대상으로 열려있는 사업이거든요. 그것 외에는 본인의 학계를 통하지 않고서는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이 거의 없어요. 그래서 어떤 형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독립연구자들을 위한 펀드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구요. 학문적으로 정립된 연구가 아니더라도 현장에서 당사자들의 이야기들을 연구하는 연구자들을 지원해주는 시스템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 저희들끼리는 기본소득 정책만 이루어져도 독립활동가들이 훨씬 많아질 거고, 먹고 사는 데 훨씬 나아질 거라는 얘기를 많이 했거든요. 근데 기본소득까지 가기가 어렵다면, 독립연구자나 생활연구자들에게도 예술가 지원을 하듯이 연구펀드나 지원들이 있다면, 조금 더 연구에 집중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이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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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멋진 일을 만나다]는 서울시NPO지원센터의 2017시민공익활동지원사업 ‘미트쉐어’에 선정된 프로젝트 기획자들과의 인터뷰를 연재하는 칼럼입니다. 미트쉐어는 긍정적 사회변화를 만드는 ‘작지만 멋진 일’을 응원하고 지원합니다. meetshare.kr


인터뷰어 이혜민은 출판사 겸 기획사 ‘900km’의 에디터이자, 대표입니다. 누군가의 작은 이야기들을 수집하고, 우리 삶의 대안적인 방향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긴 결혼행진>을 쓰고 펴냈습니다. facebook.com/900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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