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나는 식탁에서 사람을 읽기 시작했다

by 올라소피

미국에서 세계 각국의 낯선 음식과 식재료들을 접하며, 어느 순간부터 나는 맛보다 먼저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떠올리게 되었다.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 사이에서 음식은 생각보다 많은 말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고향을 떠나온 이에게 건네는 조용한 위로였고, 처음 만난 문화가 내미는 가장 다정한 인사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말들은 종종 낯설다는 이유만으로 충분히 이해되기도 전에 흘려보내지곤 했다.


그래서 나는 음식이 대신 전해온 마음들을 기록하고, 그 의미를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지인의 소개로 우연히 미국에서 첫 직장을 얻게 된 곳은 직원 수 100명이 넘는 인터내셔널 마트였다. 처음부터 거창한 보직이 주어진 것은 아니었다. “인터뷰 한번 볼래요?”라는 가벼운 제안에서 시작된 일이었지만, 막상 발을 들인 그곳은 마트라기보다 작은 지구 같았다.


처음 듣는 언어와 익숙하지 않은 향신료 냄새가 뒤섞인 또 하나의 세계. 그 속에서 나는 늘 한 박자 늦게 도착한 사람처럼 서 있었다.


영어와 스페인어가 뒤섞인 공간에서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함께 일하고 있었고, 그만큼 소통의 어려움도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그때마다 나는 보이지 않는 벽 앞에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상품 바잉과 인보이스를 배우는 동안 나는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받는 오해 어린 시선과 은근한 경계를 견뎌야 했고, 어디에나 존재하는 텃새 또한 지나야 할 과정이었다.


특히 관계를 중시하는 히스패닉 문화 속에서 이미 형성된 유대감은 쉽게 넘기 어려운 벽처럼 느껴졌다. 언어가 자유롭지 않았던 나는 깊은 대화를 시작하는 일조차 망설였고, 그 경계 앞에서 먼저 다가서기를 주저했다.

처음 한 달은 점심도 거의 혼자 먹었고, 사무실에서도 꼭 필요한 말만 건넸다. 돌이켜 보면 그 시간은 타인뿐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벽을 세우고 있던 시기였다.


전환점은 뜻밖에도 식탁에서 찾아왔다. 향신료 섹션 업무를 가르쳐 주던 히스패닉 직원 K와의 갈등이 며칠째 이어지던 어느 날, 아프가니스탄계 동료가 준비해 온 중동식 피자를 앞에 두고 우리는 마주 앉았다.


혀를 자극하는 매운맛에 한바탕 웃음을 터뜨린 뒤, 우리는 처음으로 긴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서로의 업무 방식이 달랐고, 그 차이가 오해를 만들고 있었다는 사실을 차분히 이해하게 된 순간이었다.


그때 문득 스쳐 간 생각이 있었다. 어쩌면 그들의 눈에 나는 차갑고 쉽게 섞이지 않으려는 사람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는 것.


그 일을 계기로 나는 방향을 조금 바꾸기 시작했다. 타문화를 이해하지 않은 채 내 일만 잘하면 된다고 믿었던 생각이 얼마나 좁았는지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마음이 열리자 행동도 달라졌다. 쉬는 날이면 자처해서 시장조사를 다녔고, 두 달 가까이 모은 기록을 PPT로 정리해 직원들 앞에서 발표했다. 예상과 달리 회의실의 반응은 뜨거웠다. 가장 오래 근무한 직원이 창사 이래 이렇게 적극적이고 활발한 회의는 처음이라고 웃으며 말했을 때, 나는 비로소 이 공동체 안에 조금씩 스며들고 있음을 느꼈다.

각 섹션 매니저와 아이디어 회의

그날 이후 동료들의 시선은 달라졌다. 나는 더 이상 ‘그냥 중년의 한국 아줌마’가 아니라 ‘일머리가 있는 동료’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일의 영역은 자연스럽게 넓어졌고, 출근길이 기다려졌다. 무엇보다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일이 점점 흥미로워졌다.


어쩌면 이때부터였을 것이다. 한동안 잠들어 있던 내 안의 호기심이 다시 깨어나고, 식탁 위에서 건네지는 작은 이야기들에 귀 기울이게 된 순간이.


돌아보면 그 변화의 시작에는 언제나 음식이 있었다. 낯선 맛 앞에서 경계가 풀리고, 같은 식탁에 앉는 순간 대화가 시작되었다. 인터내셔널 마트라는 작은 세계 속에서 나는 음식이 단순한 먹거리를 넘어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또 하나의 언어가 될 수 있음을 배웠다.


이 글은 그곳에서 만난 음식과 사람들, 그리고 편견이 이해로 바뀌어 가던 순간들에 대한 기록이다. 낯선 식재료와 음식 문화 속에서 발견한 관계와 소통의 장면들을 통해,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는 방식이 얼마나 다정하게 시작될 수 있는지를 전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