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 척하던 저녁, 치과 예약 앱을 켰다

치매는 뇌만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다

by 전의혁

오늘도 “나중에”라는 말을 쉽게 꺼낸 날이 있다.


저녁 설거지를 끝내고 싱크대 옆 물기를 닦는다.
휴대폰 화면을 위로 올리다 멈추고 치과 예약 앱을 조용히 연다.
입안이 조금 뻐근한데도 나는 늘 “내일”로 넘긴다.


그건 무심해서가 아니라, 작은 신호를 큰일로 만들고 싶지 않은 마음에 가깝다.
나도 그랬고, 특히 가족의 기억이 흔들리는 이야기를 들을 때 더 그랬다.
혹시 당신도 “뇌는 뇌고, 몸은 몸”이라고 나누어 생각하는 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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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오늘은 그 경계가 조금 흔들린다.
일부 치매는 중추신경계 안에만 머무르지 않을 수 있다.
심지어 시작이 ‘뇌’가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다.
200편이 넘는 연구를 체계적으로 검토한 연구(체계적 문헌고찰)에 따르면, 전체 치매 사례의 최대 3분의 1이 뇌 밖 질환(말초 질환)과 연관돼 있었다.
전 세계적으로 거의 1,900만 건의 치매 사례에 해당하는 규모다.


어떤 치매는 뇌에서 시작되지 않을 수도 있다.


중국 중산대학교 연구진이 주도한 글로벌 리뷰는 전 세계 자료를 활용해 최대 16개의 ‘원인 후보’를 확인했다.
치매 위험 증가와 가장 강하게 상관관계를 보인 상위 5개 말초 질환은 잇몸질환, 만성 간질환, 난청, 시력 상실, 제2형 당뇨병이었다.
나는 그 목록을 읽다, 아까 켰던 치과 앱을 다시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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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몸, 간, 귀, 눈, 혈당이 기억을 흔든다.


반대로 상관관계가 더 약하게 관찰된 범주도 있었다.
예를 들어 골관절염, 신장 질환, 심혈관 질환, 만성 폐쇄성 폐질환 등이 그랬다.
다발성 경화증과 염증성 장질환처럼 면역 매개 염증성 질환도 함께 언급됐다.


흥미로운 대목은 또 있다.
메타분석을 포함한 자료를 종합해 보면, 처음엔 26개의 흔한 말초 질환이 치매 위험과 연관돼 왔다.
그런데 이번 체계적 문헌고찰에서는 그중 10개는 치매 위험과의 유의한 연관성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는 고혈압, 비만, 고콜레스테롤, 우울증, 갑상선 질환 등이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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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번 리뷰가 인과관계를 입증한 것은 아니다.
말초 질환과 치매가 ‘함께 자주 나타난다’는 뜻이지, 한쪽이 원인이라고 단정할 단계는 아니다.
다만 저자들은 “말초 질환의 선제적 예방을 통해 치매 발생을 완화할 잠재력”을 시사한다고 말한다.

초기 연구에서는 보청기가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될 수 있고, 간경변 치료가 인지 저하를 피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신호도 있었다.
당뇨병 또는 인슐린 문제를 위한 일부 약물이 예기치 않게 뇌에 영향을 미쳐, 인지 건강을 높일 잠재력을 보였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뇌는 신체의 다른 부분으로부터 보호되는 ‘상아탑’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뇌는 말초 장기와 결정적인 방식으로 연결돼 있다.
뇌-장 축, 뇌-뼈 축, 뇌-면역 축, 그리고 간·심장·신장·피부·지방·림프·근육과의 연결을 고려하면, 뇌를 ‘뇌만의 문제’로 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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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이 관점이 더 단단해진다면, 왜 많은 치매 치료가 임상시험에서 실패해 왔는지도 다른 각도로 보일 수 있다.
인지 저하가 뇌에서 시작된다는 가정이 약물 연구자들을 잘못된 표적에 묶어두었을 가능성이다.
2022년 캐나다 토론토대학교 신경과학자 도널드 위버는 알츠하이머병을 본질적으로 면역학적 장애로 규정하는 새로운 이론에 주목한다고 썼고, 또 다른 과학자들은 치매를 대사 문제로 보기도 한다.


뇌는 몸의 나머지와 따로 떨어진 섬이 아니다(No brain is an island).


그래서 오늘 나는 치과 예약 앱을 닫기 전에 가능한 날짜를 한 번만 훑어본다.
뇌를 지키는 일이 거창한 결심만은 아닐 수 있어서다.
약이나 치료를 새로 시작하거나 바꾸고 싶어질 때는, 내 몸의 상황을 함께 놓고 의료진이나 약사와 상의하면 마음이 조금 더 확실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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