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2021), 놓치기 쉬운 진짜 이야기
영화에서 제목은 종종 작품의 첫 인상과 해석의 방향을 규정한다. 어떤 영화들은 제목만으로 관객을 특정한 독해로 유도하고, 그 결과 영화가 끝난 뒤에도 감독의 의도를 빗겨가게 만들기도 한다.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라는 제목 역시 그런 경우에 가깝다. 제목이 먼저 ‘사랑’이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순간, 관객은 이 작품을 불편한 연애담이나 비틀린 로맨스로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이 작품을 끝까지 보고 남는 감정은, 그 틀만으로는 이 작품을 설명하기에 분명히 부족하다.
이야기는 한 커플의 시작과 함께 출발한다. 연애 초반의 풋풋함과 이어지는 갈등과 권태는 지극히 현실적이지만, 그 온도는 다소 평이하다. 익숙한 로맨스의 범주에 머무르는 듯 보이지만, 여자 주인공 율리에가 서른 살을 앞두고 있다는 설정부터 이 작품의 중심은 관계에서 인물 그 자체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악셀과의 관계에서 불안과 변덕을 보이던 율리에는, 이별 이후 에이빈드와의 관계에서도 거의 같은 모습을 반복한다.
흔한 로맨스라면 이 지점을 감정의 실패나 잘못된 선택으로 정리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 반복을 통해, 문제가 특정한 연애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율리에는 늘 같은 지점에서 흔들리고, 늘 같은 방식으로 확신을 잃는다. 이 순간부터 영화는 ‘연애 이야기’의 외피를 벗고, 한 인물의 시간을 관찰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율리에는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가는 인물이다. 우리는 흔히 성인이 되면 자연스럽게 성숙해질 것이라 믿지만, 실제의 삶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의대를 다니다가 심리학으로, 다시 사진으로 방향을 바꾸는 진로의 변화, 글을 쓰다가 서점에서 일하는 선택들은 그녀가 아직 자신의 중심을 찾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연애뿐 아니라 삶의 비전과 정체성 전반에서, 그녀는 계속해서 망설이고 수정한다.
중요한 점은, 그녀의 변덕이 특정 인물에게만 향하는 ‘악의’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율리에는 몸과 환경만 성인일 뿐, 아직 완성되지 않은 어른에 가깝다. 그 결과 스스로도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는 선택과 흔들림을 반복하고, 그 과정에서 타인에게 상처를 준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 모습을 도덕적으로 단죄하지 않는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은 통과하는 성장통의 한 장면처럼, 담담하게 바라본다.
전 연인 악셀의 병을 알게 되는 사건과 예기치 못한 임신은 율리에를 다시 흔든다. 영화는 그녀의 마지막 선택을 또렷이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시간이 흐른 뒤의 모습으로, 그녀의 위치가 조금 달라졌음을 암시한다.
해답에 도달했다기보다, 자신의 삶을 이전보다 조금 더 책임지기 시작했다는 신호에 가깝다.
하이라이트였던 세상의 모든 사람이 멈춘 듯한 순간, 율리에가 에이빈드를 향해 달려가는 장면은 이 작품의 정서를 압축한다.
그 장면에서 세상의 중심은 분명 율리에 자신이다. 그녀가 느끼는 해방감은 사랑의 도취라기보다, 혼란 속에서도 스스로 선택했다는 데서 오는 성취감에 가깝다.
이후의 선택들이 밝기만 하지는 않다는 사실 역시, 영화는 숨기지 않는다. 다만 그것이 세상의 중심인 ‘자신의 선택’이라는 점에서, 그녀는 조금씩 자신의 삶에 가까워진다.
이 작품의 원제에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지 않는다. 원제인 'The Worst Person in the World'는 ‘세상에서 가장 최악의 인간’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 작품이 말하는 ‘최악’은 연애에서의 율리에가 아니라, 미성숙한 어른이 성장의 문턱에서 겪게 되는 흔들림과 시행착오에 가깝다.
우리 모두는 어떤 순간, 율리에처럼 누군가에게 최악의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 그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 선택들이 미숙하고 흔들리고 때로는 비겁해 보일지라도, 그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 작품이 보여주는 것은 바로 그 지점이다.
그래서 이 작품을 끝까지 보고도, 여전히 불편한 연애담이나 기분 나쁜 로맨스로만 남겨둔다면,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이 작품을 가장 좁은 틀에 가두는 해석일 것이다.
제목만을 근거로 이 작품을 재단하는 것, 그 오독이야말로 이 작품 앞에서 우리가 저지를 수 있는 진짜 ‘최악’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