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족〉 (2018),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익숙해진 세계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는 늘 인물의 표정과 관계의 따뜻한 온도로 이야기를 밀어붙인다. <어느 가족> 역시 그 연장선에 놓인 작품이다.
이 영화는 서사를 과시하지 않고, 설명을 절제한 채 배우들의 얼굴과 침묵을 통해 감정을 축적한다. 그 결과 관객은 이야기의 윤곽을 따라가기보다,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정서의 흐름 속으로 자연스럽게 끌려 들어간다.
연기의 완성도는 이 작품의 가장 분명한 미덕이다. 아역인 조 카이리와, 사사키 미유마저 ‘연기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만큼 장면에 스며든다. 특히 아이들의 표정과 시선은 장면의 공기를 바꾸는 힘을 지닌다.
여기에 안도 사쿠라가 취조 장면에서 보여주는, 감정을 쏟아내기보다 삼켜내는 연기는 이 영화의 정서를 단번에 대표한다. 눈물은 과장되지 않고, 그래서 더 오래 남는다. 전반적으로 배우들의 연기는 자연스럽고, 그 덕분에 이야기의 흐름 역시 무리 없이 이어진다.
문제는 이 영화가 무엇을 위해 이 이야기들을 선택했는가라는 지점에서 발생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오랫동안 아이와 가족을 주요한 소재로 다뤄 왔다. 그것은 그의 장점이자, 동시에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이기도 하다.
<어느 가족>은 그 익숙한 궤도 위에서 출발하지만, 이번에는 메시지를 위해 소재를 사용하는 방식이 아니라, 오히려 그 소재를 유지하기 위해 메시지가 배치된 듯한 인상을 남긴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하다. 피로 이어지지 않은 관계도 충분히 가족이 될 수 있으며, 사회는 그 관계를 쉽게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 이 주제 자체도 크게 낯설지는 않다.
다만 이 작품은 그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해 치정살인과 사체유기 같은 극단적인 사건들을 비교적 태연하게 끌어온다. 서사가 억지스럽게 붕괴되지는 않는다. 배우들의 연기와 감독의 연출이 그것을 충분히 지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야기의 선택들이 끝내 한 방향을 향해 정렬되어 있다는 느낌, 다시 말해 결론을 향해 세계가 배치된 듯한 인상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영화가 끝난 뒤 남는 질문은 ‘왜’라는 물음이다. 왜 이렇게까지 가족이라는 개념에 집착하는가. 왜 이 관계를 설득하기 위해 이 정도의 사건들이 필요했는가. 이 물음은 영화의 감동을 곧바로 부정하지는 않지만, 그 감동의 성격을 한 번 더 의심하게 만든다.
이 작품에서 사회 구조는 비판의 중심이라기보다, 특정한 관계를 성립시키기 위한 조건처럼 기능한다. 구조를 바꾸려는 요구도, 그 구조가 만들어내는 폭력에 대한 질문도 상대적으로 옅다.
결국 ‘피가 섞이지 않은 가족’이라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불합리한 사회’가 호출된 듯 보이는 순간들이 존재한다.
물론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에게 <어느 가족>은 충분히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다. 절제된 연출과 배우들의 설득력 있는 연기는 여전히 그의 장기다. 다만 그의 영화를 오래 지켜봐 온 관객에게 이 작품은 다른 질문을 남긴다.
이 작품은 여전히 인물들을 관찰하고 있는가, 아니면 이미 정해진 결론을 향해 인물들을 배치하고 있는가.
<어느 가족>은 완성도가 낮은 영화는 아니다. 장면 단위로 보면 여전히 섬세하고, 감정의 결도 정교하다. 다만 그 섬세함이 향하는 방향이 과연 어디였는지에 대해서는 쉽게 단정하기 어렵다.
이 작품은 가족의 형태를 옹호하는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그 옹호를 위해 세계를 다소 단순화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가 늘 그래왔듯, 인물들은 살아 있고 장면들은 아름답고, 관계는 따뜻하다. 그러나 그 따뜻함이 이번에는 전제에 가깝게 놓여 있다는 인상 역시 지워지지 않는다.
영화는 끝까지 인물들을 관찰하는 듯 보이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이미 정해진 결론을 향해 그들을 정렬시키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결국 <어느 가족>은 잘 만든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이면서, 동시에 너무 익숙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이기도 하다.
그는 여전히 섬세하고 따뜻하며 설득력 있는 장면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그가 반복해 온 세계와 시선은 이번에도 거의 같은 자리에서 다시 한 번 재현된다.
그 반복이 안정감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더 이상 질문을 갱신하지 않는 태도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영화는 그의 장점이 가장 정제된 형태로 드러난 순간이자, 동시에 그 장점이 언제부터인가 한계로 굳어지고 있음을 드러내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