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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없는 거북이 Jul 02. 2021

마지막 변론

1

"피고는 마지막 변론을 해주세요."

피고 K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재판장님, 제가 감히 자리에서 일어나서 여러분께 저의  지막 변론을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재판장님 이의 있습니다. 피고는 재판장님과 배심원단을 오 도하기 위한 무대를 꾸미려고 하고 있습니다.”

검사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피고의 마지막 변론입니다. 마지막 변론만큼은 피고가 원하 는 대로 하세요.”

판사는 검사를 바라보지 않은  말했다.

검사는 자리에 쉽게 앉지 못했다.

“검사는 계속 그렇게 서 있을 건가요?”

판사가 검사를 바라보았다. 검사는 판사의 시선을 놓지 않으 며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감사합니다. 재판장님. 그럼 제가 이제부터 감히 저의 마지 막 변론을 늘어놓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이렇게 제가 일어서서 변론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재판장님께 감사의 말씀을 올 립니다. 만일 재판장님이 제가 자리에서 일어날 것을 허락하시 지 않았다면 저는 감히 저의 마지막 변론을 솔직하게 재판장님 과 배심원단께 들려드릴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재판장 님께서 허락해주셨기 때문에 저는 한결 시원하고 솔직하게 저 의 심경을 여러분께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검사가 K의 말을 가로채며 이의를 말하기 위해 일어섰다. 하 지만 판사는 검사에게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그리고 K에게 계 속하라는 의미의 손짓을 던졌다.

검사님께도 감사합니다. 검사님이  신성한 재판에서 증명하려고  저의 유죄의 증거들로 인해 저는  자신을 다시 한번 되돌아볼  있었습니다. 그리고  덕에 저는 자신 있게   마지막 변론을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 감사해야 할 것은 저의 변호사 S일 것입니다. S는 몇 달째 저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저보다 저를 더 많이 걱정하고 변 호해줬습니다. 저는 S의 변호를 통해 제가 알고 있던 제가 아 니라 새로운 저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변호사 S는 K의 손을 힘껏 잡았다. K는 S의 손을 힘껏 잡고 놓으며 다시 변론을 이어갔다.

“저의 마지막 변론은 어쩌면 저의 유죄와 무죄를 판단하는데 아무런 소용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제 변론은 저의 유 죄를 인정하기 위함도, 무죄를 주장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번 재판을 통해 제가 깨달은 바를 여러분께 솔직히 말하고 싶어 저는 감히 이렇게 일어서서 마지막 변론을 하려 합니다.

검사님은 제가 무죄라고 하고, 제 변호사는 제가 무죄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저는 누구길래 왜 제가 아닌 사람들이 저의 죄를 묻게 된 것일까요. 저는 단지 한 사람입니다. 저는 제 삶을 사랑한 한 사람입니다. 어쩌면 제가 제 삶을 사랑한 게 죄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제가 제 삶을 사랑한 게 죄가 되는 것도 웃긴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 제가 어떻게 제 삶을 사랑했길래 저의 사랑이 문제가 되는 것일까요.

존경하는 재판장님 그리고 배심원단 여러분. 저는 저만의 세계에 살고 있었습니다. 변호사 S가 이제껏 저를 위해 변호했던 것처럼 저는 결코 누군가를 죽인 적이 없습니다. 저는 내가 아 닌 타인을 무서워하기 때문에 아무도 죽일 수 없습니다. 저는 제가 타인을 무서워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타인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저만의 세계에 살게 된 연유도 제가 타인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입니 다. 제가 타인에 대한 무지는 타인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으로 이어지며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는 타인을 어떻게 해칠 수 있겠 습니까. 두려우니깐 타인을 해침으로써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 고 검사님은 말씀하셨지요. 하지만 그건 저의 생각에 있지 안습니다. 저는 타인을 두려워하는 만큼 타인에게 관심이 없습니 다. 제가 타인을 두려워하는 만큼 타인도 저를 두려워하길 바 랍니다. 서로서로 두려워하고 그러한 두려움으로 각자의 세계 가 위협받지 않는 최선의 길은 서로에게 무관심 한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타인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서 무관심해지는 것을 택했습니다.

저의 무관심을 검사님은 무시라고 하셨지요. 제가 타인을 무 시한다고 말씀하셨고 그렇기 때문에 제가 Y를 죽였다고 주장 하시는 것이지요. 더는 저의 변론을 이어가기 전에 먼저 세상 을 떠난 가여운 Y를 위해 저는 기도를 하고 싶습니다.”

K 눈을 감고 고개를 숙여 묵념의 자세를 표했다. 검사는 판사를 바라보았고 판사는 검사가 이의를 표하려는 것을 제지 했다.

“피고, 이어서 변론하세요” 판사가 K에게 변론의 진행을 요 구했다. 검사는 판사에게 고개를 숙여 예의를 표했다.

“죄송합니다. 재판장님. 저의 이런 갑작스러운 행동으로 당 황하셨을 배심원단 여러분들께서 사죄의 말을 올립니다. 하지 만 제가 감히 Y의 이름을 꺼내는데 어찌 가여운 그를 위해 짧 은 기도를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Y를 잘 알지 못합니 다. 그런데도 짧은 생을 그렇게 마감한 Y를 생각하면 저는 가 슴이 찢어질 거 같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이 자리에 서 있는 이유가 제가 Y를 살해했기 때문이라는 이 부조리한 상황 으로 인해 Y에게 저는 더욱 미안함을 느낍니다. 저는 결코 Y를 해치지 않았지만, 저로 인해 Y가 계속, 이 공간에서 불리고 있 으니 저는 Y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검사님. 검사님은 제가 타인이라는 존재 자체를 무시한다고 하셨죠? 검사님께서는 제가 자신을 선택받은 고귀한 존재라고 여기고 있기에 제가 타인을 향하는 모든 행위를 언제나 절대적  행동이라고 믿고 있기에 그렇기 때문에 제가 미천한 Y 였다고 주장하시고 계시죠?”

“그렇습니다” 검사는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아... 가여운 검사님. 어찌 저를 그런 파렴치한 존재로 만 드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검사님께서 저를 그러한 존재로 규정 하셨고 제 변호사는 제가 그런 존재가 아님을 열심히 증명하려 고 했습니다. 검사님과 저의 변호사가 정말로 힘들었을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실체적 증거가 존재하지 않는 저라는 존재의 성격을 규정하는데 얼마나 힘드셨을지 저는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결코 저도 저를 어떤 존재라고 규정하기 힘들기 때문 입니다. 제가 아닌데 저를 나쁘다고 규정하는 것과 제가 아닌 데 제가 나쁘지 않다고 반박하는 것 모두 다 제가 하는 일이었 어도 힘든 일이었을 텐데 그걸 두 분이 하셨으니 얼마나 힘들 겠습니까.

그렇다면 검사님 그리고 나의 변호사님. 제가 감히 한가지 질문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이미 저희 변호사는 저에게 이 질 문을 수없이 많이 들어 싫증이 날지 모르겠지만 저를 위해 수 고하신 검사님과 변호사를 위해 다시 한번 이 자리에서 두 분 께 묻고 싶습니다. 당신들은 과연 저에 대해서 얼마나 아십니 까. 제가 Y를 죽였는지는 저에게 더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만일 검사님이 저에 대해서 모든 걸 완벽하게 알고 계셔서 검사 님이 저에 대해서 저보다 더 많이 알고 저에 관해서 규정하실 수 있다면 어쩌면 저는 검사님의 논리대로 타인을 무시하는 파 렴치이며 그렇기 때문에 존재의 가치가 없는 Y를 죽였을 수 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저는 Y를 죽이지도 않았으 며 그럴 이유도 없는 무고한 존재가 됩니다. 그리고 그걸 증명 해내는 것은 저를 고소하여 이 자리로 불러낸 검사님의 역할입 니다. 이 자리는 재판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검사님이 증명 해야 합니다. 하지만 검사님이 증명할 것은 더하기 빼기와 같은 수식이 아닙니다. 검사님은 저라는 존재에 대해서 증명하셔 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검사님께 이렇게 물을 수밖에 없습니다. 질문의 내용이 다소 무례하게 들릴 수도 있다면 그 점에 대해서는 제가 검사님께 죄송함을 느낍니다. 하지만 저는 검사님께 묻고 싶습니다. 검사님은 저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그리고 검사님이 알고 있는 제가 제가 맞습니까? 혹 시 검사님이 알고 싶었던 제가 아닙니까?

이 질문의 답을 검사님께 듣기 전에 제가 검사님께 한가지 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이건 거짓으로 꾸며낸 이야기 가 아닙니다. 하늘에 맹세코 저는 진실만을 말할 테고 이 이야 기를 듣고 난 후의 검사님의 저에 대한 의견이 그 전과 같은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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