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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밀씨 Jun 24. 2022

북유럽 도서관에 놀러갑니다

도서관이라 쓰고, 놀이터라고 읽는다

아이가 돌을 넘기고부터 도서관에 자주 데리고 다녔다. 아이가 책과 친해졌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사실 내가 도서관 가기를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이가 유아자료실에서 이런저런 알록달록한 책들을 만져보고, 펼쳐보고, 뒤뚱뒤뚱 걷는 동안, 그 옆에서 재밌어 보이는 그림책을 골라 읽었다. 그러다 아이가 어느 순간 호기심을 느끼고 내 곁에 다가오면 “너도 궁금하니?” 하며 읽어주곤 했다. 엄마가 권해서가 아닌, 아이가 스스로 원해서 시작한 책 읽기는 오히려 내가 지쳐 나가떨어질 때까지 끝나지 않았다. 나는 아이가 책에 자연스럽게 흥미를 느끼며 친해졌으면, 도서관을 언제든 가고 싶은 재미있는 놀이터라고 생각해줬으면 하고 바랐다.

10여 년을 그렇게 키운 결과, 아이에게 책 읽기의 즐거움을 깨닫게 하는 건 일단 성공한 것 같다. 하지만 도서관을 놀이터라 생각해주길 바란 건 조금 무리가 있었다. 내 주변의 지역 도서관들은 그저 책이 많은 공간일 뿐, 아이에게 놀이터 역할을 해주진 못했다. “도서관은 정말 놀이터가 될 수 없는 겁니까?”라는 내 질문에 “무슨 소리? 당연히 되고말고!”라고 대답해준 것은 북유럽의 공공도서관이었다.


아이와 떠난 북유럽 여행에서 우리 부부가 가장 즐겨 찾은 곳 중 하나는 북유럽의 다양한 공공도서관들이었다. 스칸디나비아어나 핀란드어를 읽을 줄 모르므로 도서관 방문의 목적이 책 읽기는 아니었다. 북유럽의 도서관은 넓고 깨끗하고 화장실도 개방돼 있어서 길을 걷다가 들르기 좋은 휴식처였다. 도서관에 딸린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는 따끈한 커피 한잔과 함께 점심을 해결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실내외 놀이시설이 잘 갖춰져 있었다. 규모가 조금 큰 도서관들은 대부분 야외 놀이터가 있고, 실내에도 영유아를 위한 놀이기구나 가족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보드게임, 악기실, 플레이스테이션 게임기 같은 것들이 구비돼 있어서 몇 시간이고 놀다 갈 수 있었다. 

덴마크 오르후스의 공공도서관, Dokk1의 야외 놀이터

도서관이라 쓰고 놀이터라고 읽는다

그렇다. 북유럽 도서관은 어른과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한국에선 내가 “도서관 갈까?” 하고 물으면 “나 오늘은 책 빌릴 거 없는데…”라며 주저하던 아이도 북유럽에서는 또 어떤 놀이가 도서관에 숨어 있을까 기대하며 따라오곤 했다. 물론, 북유럽은 도서관에 굳이 오지 않아도 공공놀이터 시설이 잘 갖춰져 있기 때문에 “여기 놀이터에서 그냥 놀고 싶은데 굳이 도서관까지 왜 가?”라는 말이 나오긴 했다. 숙소에서 나와 도서관을 찾아가는 동안에도 중간중간 자꾸 재미난 놀이터들이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행복한 고민이었다.



북유럽 도서관 탐방 No.1 DOKK1 - 덴마크 오르후스

덴마크 오르후스에 있는 DOKK1은 북유럽 여행에서 가장 강렬하게 인상에 남은 장소 중 하나다. 코펜하겐의 블랙 다이아몬드 도서관을 지은 슈미트 해머 라슨 건축사무소에서 설계를 맡아 2015년 개관한 곳으로, 스칸디나비아에서 가장 큰 도서관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도서관이지만, 사실 공공도서관 역할보다 훨씬 큰 의미를 지닌 시민복지시설로, 영유아부터 노년층까지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편의시설과 휴식 공간, 워크룸, 공연장, 전시회장 등을 갖추고 있다. 특히 놀이공간이 대형 키즈 카페를 압도할 만큼 이곳저곳 잘 마련돼 있어서 궂은 날에 DOKK1을 방문했던 우리 가족을 해가 질 때까지 이곳에 눌러앉아 있는데도 지루하지 않았다.

로비 한쪽에 마련된 역할놀이공간


다양한 놀이기구들이 놓인 놀이방
푹신한 소파에 앉아 항구를 내려다보며 독서를 즐기는 덴마크 사람. 그 옆에도 깨알같이 장난감이 놓여 있다.



북유럽 도서관 탐방 No.2 말뫼시립도서관 – 스웨덴 말뫼

말뫼시립도서관은 여행을 오기 전에도 몇 번 정보를 접해봤을 정도로 북유럽 도서관 중 유명한 곳이다. 덴마크 건축가 헨닝 라슨이 설계한 이 도서관 안에 들어서면 탄성이 저절로 새어나온다. 서가 3층 높이로 만들어진 벽면의 통유리창으로 빛이 쏟아져나오는 아름다운 풍경 때문이다. 말뫼시립도서관은 국제도서관협회연맹(IFLA)에서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 12곳’ 중 하나로 꼽혔다고 한다. 아름답기도 아름답지만, 이곳 또한 야외 놀이터와 실내 놀이시설, 휴게시설이 쾌적해서 오래 머물다 갈 수 있었다. 특히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중학생에 이르는 청소년 시설이 유난히 잘 꾸며져 있었다. 학원이나 거리를 배회하지 않고, 스마트폰만 붙잡지 않고, 친구들과 그림도 그리고, 게임도 하며 놀 수 있는 공간이 도서관이라니 얼마나 좋은가. 그러다 가끔 내키면 재밌는 책도 한 권 빌려가고 말이다. 

말뫼 시립도서관의 아름다운 서가


아기들이 바닥을 기어다니며 놀 수 있는 어린이자료실
악기실에서는 여러 가지 악기를 연주해볼 수 있다.
엄빠들도 쉬어가는 야외놀이터.



북유럽 도서관 탐방 No.3 오디도서관 – 핀란드 헬싱키

2018년 헬싱키 중심부에 개관한 오디도서관은 핀란드 건축계 최고의 자부심으로 우뚝 선 미래형 도서관이다. 개관하자마자 국제도서관협회연맹이 선정한 ‘2019년 올해의 도서관’에 등극했다. 오디도서관은 수천 가지의 시민 아이디어들을 모아 도서관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갖가지 시설이 갖춰진 내부 시설을 둘러보다 보면 '과연' 하고 고개가 끄덕여진다. 미래형 도서관을 지향한 만큼 책이 중심이 되기보다는 휴식이나 놀이, 다양한 디지털 학습에 맞춰진 곳이었다. 목재를 사용하고 곡선미를 강조한 디자인, 빛을 끌어들이는 통유리창으로 된 인테리어가 환상적이다.

핀란드 오디 도서관의 편안한 한때


비가 오는 날, 엄마들은 유모차를 끌고 도서관으로 온다.

북유럽의 공공도서관을 둘러보며 이상적인 공공도서관이란 어떤 것인가 생각해보게 된다. 누구나 편하게 와서 쉬고, 먹고, 놀면서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고 지식을 공유할 수 있는 곳. 마치 몽상가의 꿈 같은 이야기가 북유럽에서는 일상으로 펼쳐진다. 그런데 얼마전 개관한 세종시립도서관과 놀이터가 말뫼시립도서관과 닮아서 매우 반가웠다. 멀어서 자주 갈 순 없어도 우리도 바뀌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흐뭇하다. 그러니 북유럽의 공공도서관이 우리 동네에 없다고 속상해하진 않기로. 우리의 겉모습은 아직 조금 부족할지언정, 내면은 이미 변하고 있으니까. 책과 도서관을 사랑하는 마음이 언제라도 우리를 구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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