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통대 국문학과 졸업

by 쓰는 사람 효주

2년간의 학업을 무사히 완료했다. 급작스럽게 시작한 공부였는데 나름의 성과는 있었다. 어떤 기대도 결과도 바라지 않고 순수하게 배우고 익히는 '공부'에 열중하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잃어버린 배움에 대한 열정과 어딘가에 소속된 안정감 같은 게 나에게 필요했다. 앞만 보고 달려왔던 사십 대의 끝자락에 조금은 외롭고 지쳐있는 나에게 필요한 건 새로운 도전과 기회였을 테다. 그렇게 시작한 방통대 국문과 공부. 나에게 남은 건 역시나 추억이다.


오랜만에 앉아 본 강의실. 시험을 마주하는 긴장감과 성적이 나왔을 때의 짜릿함 같은 것. 온전히 나를 위해 시간을 쓰고 나를 위해 애써보는 경험 같은 것.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고 공부의 참 맛을 즐겨봤던 것. 시험장소에 데려다주는 남편과 나눴던 소소한 농담과 공부하는 엄마를 이상하게 혹은 낯설게 바라보는 아들들의 눈빛. 홀로 버스를 타고 당도한 지역학습관의 어색한 공기. 타블릿 피시로 치르는 전자시험의 신기함. 함께 공부하는 학우들의 뒷모습. 5시간 가까이 시험 치르는 나를 기다려준 남편과 둘째. 마지막 시험날 빛났던 하늘과 구름. 그리고 삶의 마지막 순간을 마주했던 나.


나에게 다시 못 올 시간들을 생각한다. 지난 6월 14일 기말고사를 치르는 강의실에서 '이 순간이 나에게 다시없을 시간이구나'했다.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고 긴장한 듯 떨고 있는 학우의 어깨와 시험감독관들의 선량한 눈빛. 타블릿 피시 화면 위로 유유히 흐르는 시간. 밝게 빛났던 강의실의 햇살. 두 손을 모으고 입술에 놓았다. 마치 이제 곧 죽을 사람처럼 나의 마지막 시험을 마주했다. 언제도 나는 그런 수많은 마지막을 마주했을 테다. 마지막인지도 모른 채 흘러 보낸 시간들이 순식간에 다가와 그날의 마지막을 함께 해 주는 것 같았다. 매 순간이 마지막이었을 텐데. 지금 한 자 한 자 써 내려가는 이 시간마저도 다시없을 나의 마지막들이 아닌가.

///



방통대 국문과 공부는 쉬운가 어려운가?를 묻는다면 결코 쉽지만은 않다고 말해주고 싶다. 어떤 공부든 그렇겠지만 어찌 쉽기만 하겠는가. 모든 운동이 약간의 땀과 고통을 동반하듯이 공부 역시 그렇다. 요행을 바라는 마음으로는 좋은 학점을 딸 순 없다. 시간을 써야 하고 머리를 굴려야 하고 외워지지 않은 문장에 밑줄을 긋고 여러 번 되뇌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시험범위 전체 내용을 적어도 한 번은 완독 해야 하고 부족한 부분은 세네 번 반복해서 읽고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정리된 지식이 쌓이면 그때 기출문제를 푼다. 기출문제 역시 여러 번 반복해서 풀어보면 더 효과적이다. 총점수에서 20점이 걸려있는 강의 듣기엔 약간의 요령을 피우기도 했다. 멍하니 앉아 화면 속 강의를 듣는 일이 쉽지 않았다. 졸음이 쏟아지거나 멍해지기 일쑤. 해서 속도를 배속으로 올려놓고 듣는 날이 많았다. 물론 몇몇 명강의를 펼쳐주시는 교수님의 강의는 재밌게 보았지만 말이다.


매 학기가 끝나면 이상하게도 번아웃 증상이 찾아왔다. 그만큼 학기 중에 열과 성의를 다했다는 증거로 삼고 싶다. 다행히 마지막 학기가 끝나고 나서는 홀가분함이 컸다. 번아웃은 오지 않았고 나는 새로운 배움을 찾는 중이다. 다만 마지막 학기 때가 가장 힘들었다. 열정은 가라앉았고 의욕은 사그라들었다. 에너지가 고갈된 기분이랄까. 나란 인간이 가진 한계였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다행히 그것이 엔딩이었기에 극복할 수 있었다. 사십의 끝자락에 시작한 도전을 오십에 마무리했다. 그동안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었고 나는 반백살이 되었다. 새삼 살아온 인생이 길이 보였다. 남아 있는 길은 지금만큼 길지 않음을 동시에 깨닫는다.


그거 배워서 뭐 할 건데? 란 질문에 이제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배우면서 나는 살았다. 그 배움을 사는 데 썼다. 나의 마흔여덟과 오십의 반을. 그래서 잘 살 수 있었다. 그 배움으로 나에게 남은 건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