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니 남편 침대가 비어있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기, 안녕? 오늘도 일찍 나갔어요?”
“응. 새벽에.”
“근데 바깥이에요? 차 소리가 들리네.”
“어, 담배 한 대 피우느라고.”
남편이 당황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렇구나. 잘 지내다가 밤에 봐요!”
담배를 태우고 있다는 남편의 말을 듣는 순간 흠칫 놀랐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척 전화를 끊었다. 남편을 만나고 13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가 담배를 피운 적은 연애 때 한 번, 결혼 후 한 번이 다였다. 아주 힘든 시기를 지날 때였다.
인터넷 창을 열어 경제 섹션을 살펴보았다. 그가 왜 밤새 핸드폰을 들여다보다가 새벽에 나갔는지 알겠다. 나도 힘이 쭉 빠졌다.
‘힘내요.’ 그에게 메시지를 전송했다.
한참 뒤 그가 답변을 보내왔다.
‘그런 말 하지 마. 예민한 시기에 신경 쓰여.’
뭐라고? 그가 보낸 메시지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어보았다. 읽을 때마다 그의 메시지가 날카로운 칼이 되어 내 마음을 쓱쓱 베었다. 나는 그에게 뭐지?
이튿날은 주말이었다. 다른 때 같으면 아침에 아이에게 밥을 차려주고 일하러 나갔을 사람이, 점심때가 되도록 소파에 누워있었다. 오며 가며 곁눈질로 살펴보니 하염없이 멍한 시선으로 창밖을 응시하며 한숨을 푹푹 쉬었다. 평상시 그의 모습이 아니다. 나도 모르게 손발이 움직이더니 라볶이와 샐러드를 만들어 그의 앞에 펼쳐놓았다.
“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잖아. 음, 우리 자기 최고!”
입 주변에 빨간 국물을 묻히며 라볶이를 먹더니 나를 향해 엄지를 척 들어 보이는 남편의 해맑은 모습에 기가 막혔다. 어제의 당신과 오늘의 당신은 왜 이리 다른 거지?
“최고는 무슨, 나한테 그런 메시지나 보내지 말든지.”
“무슨 메시지? 아참, 자기 신촌 다녀온다고 했지? 내가 데려다줄까요?”
못 이기는 척 차에 올라탔다. 아무 말 없는 채로 목적지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려서 걷고 있는데 나를 부르는 남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니 차와 인도 사이에 내 모자가 떨어져 있었다. 차를 세워둔 곳으로 달려가며 남편에게 어서 출발하라고 손짓했다. 하지만 남편은 그대로 멈춰 서 있었다. 신호가 바뀌어 차들이 달려오면 모자를 주우려는 내가 위험할 수 있어서이겠구나 싶었다. 모자를 주우러 달려가는 시간이 여름철 엿가락처럼 쭉 늘어나며, 차를 향해 뛰는 내 모습이 슬로 모션으로 재생되는 것 같았다. 뒤집힌 채 바람에 흔들리는 모자 속에는 나를 보호해 주려는 남편의 마음이 가득 담겨 출렁이고 있었다. 사이드미러에 아내에게 힘든 모습 보이고 싶지 않은, 표현에 서툰 어린 남자의 얼굴이 비쳤다.
모자를 집어 들고 인도에 올라서니 직진 신호를 받은 차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가 운전하는 차가 출발했다. 두 팔을 머리 위로 올려 크게 하트를 만들고 싶었지만, 질색할 그의 표정을 떠올리며 그냥 점점 멀어지는 그를 향해 손을 크게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