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성문 앞에서
한 달 전, 독감으로 이불속에 파묻혀 있었다.
우리 집에서 5분 거리에 사시는 엄마에게 안부 전화를 드렸다. 연로하신 부모님께 바이러스를 퍼뜨릴 수는 없었다.
"나는 잘 지내는데, 이 양반이 입맛이 없다고 뭘 통 못 드시네. 자꾸 입이 마른다고 사이다만 찾으시고."
“사이다 드시면 갈증이 더 심해져요. 그리고 입맛 없으셔도 그냥 좀 드셔야지, 일 년 내내 입맛 좋은 사람이 어디 있어요.”
걱정과 짜증으로 버무려진 말을 툭 내뱉고는 목덜미를 주물렀다.
두어 주 만에 찾아뵌 아버지는 예전의 모습이 아니셨다. 볼과 눈 밑이 움푹 꺼지고, 우렁차던 목소리는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작아져 있었다.
가방을 던져두고 황급히 동네 의원을 찾았다. 아버지께서 십 년 넘게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으시던 병원이었다.
몇 가지 검사를 마친 의사가 모니터를 살펴보더니 얼굴이 어두워졌다. 앞머리가 흘러내려 눈을 찔렀지만 개의치 않고 키보드를 두드렸다.
“진료 의뢰서 드릴 테니 아버지를 당장 큰 병원에 모시고 가세요. 췌장 전문의가 있는 상급종합병원이어야 합니다. 지금 바로 움직이셔야 합니다."
집 근처 3차 병원에 전화를 돌렸다. 하나같이 몇 주 뒤로나 예약할 수 있고, 당일 접수는 이미 마감되었다고 했다. 내일부터는 긴 연휴가 시작되는데.
전화기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예약은 꽉 찼지만, 교수님께 여쭤볼게요."
한 간호사의 상냥한 마음에 기대어 호흡을 가다듬었다.
하지만 잠시 뒤, 무거운 어조로 오늘은 더 이상 환자를 받을 수 없다고 전하며 말을 이었다.
“혹시라도 환자분 의식이 흐려지거나 쇼크가 오면 바로 응급실로 방문하셔야 해요.”
순간, 머릿속에 사이렌 소리가 어지럽게 울렸다.
'안돼!'
전화를 끊자마자 대학병원으로 차를 몰았다.
강변북로에 들어서자, 황금연휴를 앞두고 일찍이 여행을 떠나는 차량들로 가득했다. 열린 차창으로 그들의 여유와 설렘이 등나무 향처럼 은은하게 풍겼다.
“조금 있으면 막히는 구간 지나갈 거예요. 나들이 간다고 생각하세요. 구름이 참 예쁘네.”
하늘을 보는 척 능청을 떨며 백미러로 아버지를 살펴보았다.
"아직 멀었니? 어디 잠깐 세울 수 없을까? 화장실을 참기 힘들구나."
아버지는 몸을 비트시면서도 목을 붙잡고 음료를 찾으셨다.
나 역시 산을 오르는 것처럼 갈증이 찾아왔다.
응급실 대기실로 아버지를 모셨다. 간호사가 문진한 뒤, 진료 의뢰서를 응급실 안으로 전달했다.
“교수님께서 외래로 접수하라고 하십니다.”
저 문 안에 의사 선생님이 있는데.
초대장을 지녔지만, 피앙세의 파티장 입구에서 제지당한 아가씨가 이런 기분일까.
외래 접수처로 가니, 예약 가능일은 두 달 뒤였다.
밖으로 나오니 희고 높은 병원 건물들이 내 주변을 성채같이 가로막고 있었다. 건물 사이로 드러난 좁고 푸른 하늘을 올려보았다.
어디로 가야 하지. 어떻게 해야 하지.
갈피를 잡을 수 없어 건물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손에 쥔 진료 의뢰서 위로 눈물이 번졌다.
휠체어에 앉힌 아버지의 고개가 점점 옆으로 기울고 있었다.
전화기를 꺼냈다.
도와주세요, 아버지가 많이 아프세요.
병원으로 모셔야 하는데, 받아주는 곳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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