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당신이 만드는 이야기
돌이켜보면, 아버지가 급성 당뇨로 입원하기 전 병원을 찾아 헤매던 시간은 지금에 비하면 야트막한 언덕을 오르는 정도였다. 아버지의 췌장암 진단 이후, 수직으로 치솟은 암벽을 맨손으로 등반하는 심정이다.
부모님께 아버지 병에 관해 사실대로 말씀드려야 할까.
며칠 뒤면 조직 검사를 한 의사가 직접 설명할 것이다. 하지만 의사의 입을 통해 듣는 것보다, 나를 통해 먼저 듣는 편이 낫지 않을까. 어제 만난 의사 선생님도 그런 판단 끝에 내게 먼저 알렸는지도 모른다.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딸!”
나를 부르는 엄마 목소리가 향긋하면서도 쌉싸름한 봄나물 같았다. 반가움과 근심, 고마움과 미안함, 희망과 두려움이 어우러져 있었다. 엄마의 목소리에 부모님을 찾아뵐 용기가 저 뒤로 물러나 버렸다.
“엄마, 지금은 다녀올 데가 있어서.... 저녁에 찾아뵐게요.”
서점으로 가서 전날 밤 검색해 둔 췌장암에 관한 서적 두 권을 집어 들었다. 인터넷상 정보를 무분별하게 살펴보기보다는 전문가들이 쓴 책이 도움 될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책을 사서 집에 들어오니, 정작 책을 펼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소파에 누워서 점심 식사도 건너뛰고 췌장암 관련 영상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손목이 시큰거려서 시계를 보니 저녁 시간이었다.
남편과 아이를 앞세우고 부모님 댁으로 향했다.
부모님과 함께 식사를 했다. 아버지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시간이다.
아이 입에 음식이 들어가는 것을 빤히 지켜보던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음식 먹는 입 예쁜 걸 봐라.”
“이 서방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도 똑같은 말씀 하신 거 기억나세요? 음식 먹는 입도 예쁘네, 라고요.”
곁에서 이야기를 듣던 남편이 어린아이처럼 해사한 웃음을 지었다.
나는 지난 20여 년간 아버지가 당신의 삶을 써 내려가는 모습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이었다.
치매에 걸린 노모를 모시며 어머니를 위해 꽃게 살을 바르고 포도 껍질을 벗기셨으며, 어머니께서 마지막 숨을 거두는 날까지 그 손을 놓지 않으셨다.
동생들에 대한 마음은 부모의 마음과 다를 바 없었다. 형이 포기한 학업을 이어받아 지금은 금 주걱으로 밥을 푸는 동생들에게도 작은 밭의 산물을 종류별로 꼼꼼히 챙겨 보내셨다. 먼저 간 동생이 남긴 식구들을 위해서는 당신이 마련했던 시골집을 기꺼이 내어주셨다.
또한 아버지의 통장은 화수분이었다. 많지 않은 월급으로도 당신의 삶을 윤택하게 가꾸시고, 어려운 친지와 이웃들에게 늘 넉넉히 베푸셨다.
아버지가 보여주신 수많은 장면은 전래동화 속 미덕이 현재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깨우쳐 주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아버지께서는 혈당 조절을 위해 산책을 나가셨다.
남편과 아이를 먼저 집으로 돌려보낸 뒤, 엄마를 불렀다.
“엄마, 엄마한테는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
엄마가 눈을 피하셨다. 바닥을 향한 시선은 내게 아무런 말도 듣고 싶지 않음을 강하게 말하고 있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엄마가 먼저 말씀을 꺼냈다.
“수술하신다면서, 낭종 떼어 내는. 잘될 거야.”
“아니, 그냥 낭종 아니래.”
“그럼....?”
차마 입 밖으로 ‘암’이라는 단어를 꺼낼 수 없었다.
그 말이 던질 충격으로부터 엄마에게 완충장치가 되어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할 거란 예감이 들었다.
아까보다 긴 침묵이 흘렀다.
침묵 속에 엄마의 슬픔이 배어 나왔다.
이번에도 엄마가 먼저 말씀하셨다.
“암이니?”
아니라고 말할 수도, 그렇다고 쉽게 내뱉을 수 없었다.
“의사 선생님이 나보고 남아있으라고 한 뒤 첫마디가 ‘다행입니다.’였어요. 당뇨 덕에 초기에 발견할 수 있었다고. 췌장암이 대개 손 쓰기 어려울 때 발견되거든. 엄마가 늘 말씀하시던 대로 살 사람은 어떻게든 사는 법인가 봐요.”
무너져 내릴까 봐 우려했던 것과 달리 엄마가 담담하게 말씀하셨다.
“진료실에서 나오는 네 표정을 보고 이미 알고 있었다."
내가 대꾸할 말을 찾기 위해 애쓰는 동안, 엄마가 말씀을 이으셨다.
"나는 잘될 거라고 믿어.”
나는 잘될 거라고 믿어.
엄마가 힘을 주어 쌓아 올리는 단어들이 고집 센 아이가 세운 돌탑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아버지께는 낭종 떼는 수술 한다고 말씀드렸으니, 다른 말은 하지 말자.”
엄마의 부탁에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는 예전에 5년 넘게 호스피스 봉사활동을 하시며, 환자 당사자가 본인의 질병과 몸 상태에 관해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시던 분이셨다.
엄마와 내가 이야기 나누는 내내 아버지가 밖을 오가는 모습이 창밖으로 얼핏 얼핏 스쳤다. 석양의 붉은 기가 아버지를 어깨를 누르고 있었다.
얼룩얼룩한 눈시울을 감추기 위해 엄마에게 모자를 빌렸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여전히 문밖에서 서성이시는 아버지께 인사드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편두통이 심해지는 것을 느꼈다.
“엄마, 왜 이렇게 늦게 왔어요?”
품으로 달려드는 아이를 꼭 끌어안은 채 남편과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진통제를 찾기 위해 약통을 열자, 남편도 진통제를 향해 손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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