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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3. 자기중심을 갖는 일의 아이러니

갈등은 자기중심적 상황 인식에서 시작된다

by 홍주현

남편의 건강이 회복되어 직장에 복귀하려던 즈음, 동서가 사업을 시작했다. 남편에게 전망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스트레스 없이 일할 수 있다는 장점에 그를 돕기로 했다. 수년이 흐른 몇 달 전, 어머니가 은근히 동서 안부를 물으면서 혹시라도 동서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되면 장례식장을 당신과 내가 지켜야하지 않겠냐고 조심스레 지나가듯 언질 했다. 어리둥절했다.


집으로 돌아오니, 그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대체 무슨 말이지? 혹시 옛날처럼 손님 거들며 일이라도 하자는 얘긴가? 어머니 연세에 그런 일을 할 수는 없을 테고 결국 나보고 일하라는 건가? 생각은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내가 왜? 남편 상사의 장례식장이니까? 그러니 내가 뭐라도 해야 한다는 건가?


그날부터 나는 서운함과 억울함에 휩싸였다. 어머니는 어쩌면 당신 입장만 생각할까? 당신은 아들을 위하는 마음이겠지만, 당신의 그런 태도가 아내인 내게는 당신 아들을 미덥지 않은 남편처럼 여기게 된다는 걸, 당신 아들을 엄마와 아내가 써포트해야만 하는 무능한 남자로 만든다는 걸 왜 모르냐고! 어머니가 내 남편을 무시하는 것 같은 생각까지 들면서 화났다.


괴로웠다. 평소 진지한 의도 없이 가볍게 얘기하고 뒤끝 없는 어머니 성격을 생각하면, 내가 거절해도 그러려니 할 것이란 걸 알면서도, 좀처럼 마음이 편해지지 않았다. 나는 당신 아들의 아내이지 엄마가 아니다. 따라서 내 마음이 당신 마음과 같을 수는 없다. 그런데, 내가 얘기하지 않아도 어머니가 그런 내 입장을 알아서 헤아려주기를 바라는 건 무리다. 괴로움은 이제 어머니에게 어떻게 얘기할지에 대한 스트레스로 바뀌었다.


그러던 중 친정에 가게 됐고, 엄마에게 얘기했다. “그럴 수 있어. 옛날 사람이다 보니, 장례식장이 혹시 썰렁할까봐 그러는 걸 거야. 나이가 있다보니 좀 과도한 생각이지만, 같은 세대에 같은 입장이라 그런지 엄마는 어떤 마음인지 알 거 같네.” 엇, 그래? 그런가? 의외의 반응에 갸우뚱한 채 남편에게 얘기하니, 그동안 잠자코만 있던 그가 입을 열었다. “엄마는 그냥 제수씨가 가여워서 뭐 도와줄 수 있는 게 없을까 싶어서 한 말이야. 당신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어. 지금 엄마 관심은 제수씨한테 있는 거라고.”


동서는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엄마를 여의고, 최근에는 아버지마저 큰 수술을 거듭 받아 거의 탈진 상태였다. 어머니는 그런 며느리가 무척 안쓰러웠던 것이다. 그 얘기를 듣자마자 나는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났고, 어머니에게 가졌던 서운함도 사라졌다. 나는 며느리에게 요구만하는 옛날 시어머니가 아니라 며느리를 아끼는 좋은 시어머니를 둔 사람이 되었고, 또한 여전히 어머니에게 사랑받고 신뢰받는 며느리라는 자존감을 회복했다. 무엇보다 다시 내 생활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최근에 있었던 이 일로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대부분 오해는 자아과잉, 즉 자기중심적인 상황 인식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을! 상대방이 내게 하는 말과 행동이 반드시 나를 겨냥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불만은 내 태도의 문제를 그에게 투사한 것일 수도 있다는 사실도. 어머니가 당신 아들의 아내 입장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불만은, 누가봐도 애처로운 상황의 며느리를 지켜봐야 하는 어머니 입장을 나 역시 헤아리지 못하는 모습이었던 것이다.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으로 타인을 판단해버리면, 오해로 인해 원망이 생기기 쉽다. 그로 인해 자신을 지지하고 아껴주는 사람과의 관계를 스스로 해치고, 온전히 자기 삶을 살아가기도 어렵다. 늘 그 사람을 의식하게 되고, 의식하지 않더라도 그 경험과 태도가 이후 새로운 관계나 상황에서도 재현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중심을 잃지 않는 단단한 삶은 아이러니하게도 자기를 내려놓고 상대방 입장을 헤아리며 이해할 줄 아는 태도에서 비롯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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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에서는 네 편의 영화를 통해 이 아이러니를 풀어내면서 자기중심적 태도로 인한 오해가 이해로 전환될 때 삶이 어떻게 변화되는지를 이야기한다. 자기 삶을 단단히 살아가는 힘은 타인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즉 메타인지력을 갖추는 훈련 속에서 자라난다. 타인과의 갈등이나 삶의 무게에 잠길 때, 내 시선이 어디에 머물러 있는지 돌아보는 연습. 그것이 결국 ‘개인’으로서 삶을 자유롭게 경험하는 방법인 것이다.



‘자기중심에서 상대를 이해하는 삶’이라는 새로운 시선과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그래제본소] 영화로운 개인 - 예스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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