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딩, 그 너머 - 시니어로 가는 길
(SWE: Software Engineer. "스위"라고 발음한다.)
최근 멘토링을 통해 알게 된 주니어 엔지니어 한 명과 캐주얼한 커피챗을 했다. 그는 3년 차로 팀 내 주니어들 중 가장 코딩을 잘하는 유능한 인재였다. 그런데 그는 최근 팀을 지휘하는 테크 리드(Tech Lead)와의 간극에 대해 솔직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코딩은 자신 있어요. 누구보다 부지런하고 빠르다고 자부합니다. 하지만 테크 리드가 되려면 코딩 이외의 다른 것들도 필요한 것 같은데, 도대체 그걸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막막해요."
그는 이제 정치를 배워야 하는 거냐며 멋쩍은 농담을 건넸다. 그 자리에서 시원한 답을 줄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전부를 쏟아내기에 이십 분 남짓의 커피챗은 너무나 짧았다. 그 질문은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고, 제대로 정리해 두지 않는다면 다음에 같은 질문을 받았을 때 또다시 공허한 위로로 대화를 마무리하게 될 것 같았다. 그에게, 그리고 비슷한 고민을 하는 이들에게 조금 더 도움이 되는 답변을 남기고 싶어 이 글을 시작했다.
필자가 직접 경험해 온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의 세계관은 대략 다음과 같다.
1. 엔지니어링 스킬 (Engineering Skills)
코딩: 코드 작성, 코드 리뷰 등.
비코딩(Non-coding): 아키텍처 디자인, 문서화, 플래닝, 프로세스, 메트릭 설계 및 분석 등.
2. 비엔지니어링 스킬 (Non-engineering Skills)
인재관리: 매니지먼트, 코칭 및 멘토링 등.
기획 및 전략: 조직 내 조율 및 설득, 프로젝트 기획, 로드맵 수립 등.
비즈니스 및 소통: 파트너십 개발 및 관리, 디벨로퍼 릴레이션 등.
이렇게 전체적인 구조도를 펼쳐 놓고 보면, 코딩은 엔지니어링이라는 거대한 기계를 움직이는 핵심 부품이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래더(Ladder)가 가진 매력 중 하나는, 이 중 어느 영역에 시간을 쓰든 확실한 결과와 임팩트만 만들어낸다면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는 점이다. 팀의 구성과 상황은 늘 유동적이기 때문에, 테크 리드나 엔지니어링 매니저에게 코딩 이상의 업무가 주어지는 상황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때로는 필수적이다.
결국 "스위는 코딩이지"라는 말은 절반의 진실일 뿐, 전체를 대변하지는 못한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 펼쳐질 환경에서는 더욱 그럴 것이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의 업무 영역은 연차가 쌓이고 영향력이 커짐에 따라 단순히 코드 작성에 머물지 않게 된다. 엔지니어링 팀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동료들을 이끄는 리더들을 보면, 다음과 같은 스킬 셋이 다각도로 발달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1. 비코딩 스킬 (Non-coding Skills)
비코딩 업무란 코드 작성을 제외한 모든 엔지니어링 행위를 뜻한다. 구글에서 '시니어' 타이틀을 달기 위해서는 최소한 한 가지 이상의 비코딩 스킬 영역에서 전문가 수준의 역량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자주 거론되는 비코딩 스킬로는 시스템의 복잡도를 낮추는 아키텍처 디자인, 우선순위를 정해 한정된 자원을 배분하는 플래닝, 고품질 문서화로 협업 효율을 높이는 테크니컬 라이팅, 그리고 메트릭 설계 및 분석을 통한 성과 증명 등이 있다.
이들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하는 일이 단순 '프로그래밍'이 아닌 '엔지니어링'이기 때문이다. 단순한 코드 작성과 실행이 아닌, 시간과 규모의 축 위에서 지속 가능한 서비스와 프로덕트를 만드는 것. 비코딩 업무를 소홀히 한 대가는 기술 부채(Technical Debt)로 돌아와 팀의 속도를 서서히 잠식한다.
2. 비엔지니어링 스킬 (Non-engineering Skills)
비엔지니어링 업무는 기술 밖의 영역, 주로 프로젝트의 '정당성(Why)'을 증명하는 일이다. 잘 짜인 로드맵으로 리더십을 설득하고, 자원과 헤드카운트를 확보하며, 다른 팀과의 정치적 조율을 통해 협업을 이끌어내는 과정이다.
이는 기술적 해결책을 찾는 것을 넘어, 해결해야 할 가치 있는 문제를 정의하고 이를 풀기 위한 사람들을 모으는 행위다. 불확실성이 높지만, 이 모호함을 돌파할 때 엔지니어는 기술 이상의 가치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대체 불가능한 힘을 갖게 된다.
과거에는 이러한 비엔지니어링 역량의 확장이 리더로서 성장하기 위한 "추가적인" 선택지였을지도 모른다. 그런 것 없이 코딩만 장인처럼 잘해도 대우받던 시절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2026년 현재, 코딩 이상의 스킬 셋을 만들어가는 것은 선택을 넘어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가 그토록 자부하던 코딩의 영역을 AI가 놀라운 속도로 대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에게 모든 AI 관련 글들은 리스크 가득한 주식과 같다. 어렵게 써 내려간 글이 6개월 뒤에 휴지 조각이 될지, 신통한 예측이 될지 정말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변화의 파도가 너무나 거대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구글 내에서, 그리고 실리콘밸리의 많은 엔지니어들이 공감하는 한 가지는, 2026년 이후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은 지금과 많이 다를 것이라는 점이다. 나 역시 이 의견에 깊이 동의한다.
"코딩은 거의 끝났다. 하지만 엔지니어링은 그 어느 때보다 살아있다."
(Coding is pretty much dead, but the engineering is very much not.)
— Martin Casado (a16z)
2026년, CS 전공자들이 일자리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는 이유도 바로 이 차이 때문일 것이다. 코딩과 엔지니어링은 다르지만, 학교에서는 현장의 진짜 엔지니어링을 가르치기 어렵기 때문이다. (현업과 교육 현장의 차이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아직도 한 발을 학교에 딛고 있는 한 사람으로 그 현실적인 상황을 충분히 이해한다.)
코드는 문맥이 명확하고 검증이 가능하기에 AI 에이전트들이 활약하기 가장 좋은 영역이다. 그렇다면 비코딩 스킬은 안전할까? 꼭 그렇지는 않다. 테크니컬 라이팅, 프로세스 관리 및 설계 등도 AI가 빠르게 침범하고 있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는, 비코딩 영역의 결과물은 단순 생성을 넘어 사람 간의 합의와 책임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정답이 없는 모호한 문제, 결과에 대한 "책임자"가 필요한 업무. 이는 AI가 독자적으로 수행하기 가장 어려운 영역이자, 우리 인간 엔지니어의 존재 이유가 된다.
비엔지니어링 스킬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이는 코드 주변의, 혹은 코드와 동떨어진 '세상만사'의 복잡한 맥락 속에 존재한다. 시니어 엔지니어의 역할은 이제 챗봇의 코드를 복사해 붙이는 것을 넘어, AI가 최적의 결과를 내도록 비즈니스 로직과 프로젝트 정보를 설계하는 '콘텍스트 엔지니어링(Context Engineering)'과 '어젠틱 시스템 디자인(Agentic System Design)'으로 확장되고 있다.
10년 전에는 주니어 시절 3~4년 정도 코딩에만 몰두하며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었다. 하지만 이제 커리어의 출발선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마치 모든 엔지니어의 시작점이 '강제 승진'된 시니어 레벨로 바뀐 느낌이다.
이러한 2026년의 현실에서 취업의 확률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본인이 이러한 코딩, 비코딩, 비엔지니어링 스킬들을 다양하게 골고루 갖추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제대로 된 엔지니어링 팀에서 일해보지 않고서 이 다양한 스킬들을 배우기는 결코 쉽지 않다. 이 닭과 달걀의 문제가 바로 현재 취업 시장에서 가장 골치 아픈 부분이다.
여유가 있는 회사들이야 여전히 주니어들에게 시간을 주고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어떻게든 만들어 주겠지만, 대부분의 회사들은 이미 주니어 레벨에서부터 AI-네이티브인 엔지니어들을 선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좀 편하게 살자고 만들어 낸 AI가 결국 구직 전선에 뛰어든 주니어 엔지니어들에게 새로운 스킬 셋을 배울 수밖에 없도록 밀어내고 있는 것이다.
내 맘속에 작은 소용돌이를 남겼던 그 짧은 커피챗. 아직도 정리가 더 필요하겠지만, 필자가 조언을 구하는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핵심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서 진정한 성장을 원한다면 "코딩 그 이상"을 바라보았으면 한다는 것이다.
첫째, 코딩 너머의 영역에 관심을 가져보자. "코딩이 아니니까 내 일이 아니야"라로 벽을 쌓기보다, 유연한 마음가짐으로 다양한 영역에 뛰어들어 기회를 찾아보면 어떨까. 그 경험들이 쌓여 당신을 대체 불가능한 존재로 만들어 줄 것이다.
둘째, AI를 진정한 파트너로. 새로운 스킬을 익히는 과정은 쉽지 않고, 예전만큼의 여유 시간도 주어지지 않는다. 다행히 우리에겐 AI라는 강력한 조력자가 있다. AI 도구들을 학습과 개발에 적극적으로 활용해 복리 효과(Compounding Effect)를 누렸으면 한다. 모든 업무의 시작과 끝에 AI를 두고, 진정한 'AI 네이티브 엔지니어'를 목표로 삼는다면 위기는 기회가 될 것이다.
엔지니어링의 본질은 결국 문제 해결과 가치 창출이다. 근사하게 작성된 코드가 실제 사용자가 누릴 수 있는 가치로 연결될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코딩 이외의 수많은 스킬들이 바로 그 연결을 가능하게 만든다.
당신이 그 연결을 만들어내는 엔지니어가 되기를, 그래서 다가올 10년을 당신의 것으로 만들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