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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글을 쓸 수 있을까

책 4권 내고 글쓰기를 멈추다

by 은희망

2020년 첫 에세이북 발간을 시작으로

2024년 1월까지 총 4권의 에세이북을 펴냈다.

그 뒤로 지금까지 나는 글쓰기를 멈췄다.


수필 작가 또는 에세이 작가라고 칭하는 사람은

자기 삶의 경험을 토대(소재)로 글을 쓴다.

나 또한 내가 경험하고, 느끼고, 생각한 것을

기록하며 활발히 글을 쓰던 시절이 있었다.

생활 속에서 수시로 문장이 떠올라

글로 쓰지 않으면 아니했다.


하지만 요즘에는 문장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내 삶을 풀어내 설명하고, 해석하고,

의미를 발견하는 일을 주저하고 있다.

완전히 감을 잃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어떻게 소재를 찾아 글을 쓰는지 잊어버렸다.

나는 왜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됐을까?


그동안 펴낸 4권의 책들이 빛을 발하지는 못했다.

개인적인 성취감에 그치는 정도였다.

첫 번째 책은 지방의 한 이름 있는 출판사와

함께하게 된 덕분에 아직까지 인터넷에

2쇄가 팔리고 있다.


그 뒤 만들어낸 3권은 고향의 문화재단에서 받은

지원금으로 작은 독립출판사에 의뢰해 제작됐다.

시중에 나와있는 베스트셀러 에세이도서들의

표지와 디자인, 필체들을 참고하여 최대한

독자들이 관심 가질만한 결과물을 만들고자 했지만

결과물은 항상 아쉬움이 남았다.


그리고 나의 게으름 탓으로 항상 시간에 쫓겨

겨우 만들어지고는 했다.

창작부터 책이 나오기까지의 모든 과정들에

관여하며 연속적으로 힘들게 책을 만들어내니

한마디로 '질려'버렸다.


'내가 이 고생을 왜 사서 한다고 했을까' 하며 속으로

울며 괴로움에 발버둥 치는 나나들이 많았다.

그 고통을 겪으며 세상에 나온 책은

출판사의 도움 없이 나 스스로 홍보해야 했고,

팔기보다는 남들에게 대가 없이 나눠주기 바빴다.


책은 남이 찾아주고, 팔려야 만들 맛이 나는데

그냥 자기만족에 불과한 결과물 같다는

현실자각을 하게 됐다.


그러다 가끔 서점에 가면 가판대 위에 올라와 있는

베스트셀러 에세이북들을 보며

부러움과 함께 자괴감을 느끼고는 했다.


'아 내 책은 이렇게 될 수 없는 것인가.

내 글에 뭔가 부족한 건가.

나는 운이 없는 건가'


별별 생각이 다 들며 스스로 열등감과 함께

주눅이 들어갔다.


'그래, 유명해지려고 글을 쓰는 건 아니잖아?

그냥 글쓰기 자체를 좋아해야지'


글쓰는 사람으로서 이런 마음가짐이 건강한 건데

에세이 작가로 유명해지는 꿈을

어렸을 때부터 꿔 온 나는

못내 아쉬운 마음이 큰가 보다.

그만큼 내가 노력했는지도 미지수다.


사실 나의 글쓰기를 막는 진짜 고민은

나에 대해 얼마나 오픈(open)할 것인지,

그 경계를 정하지 못함에 있다.

예전에는 나의 경험과 생각들을 필터 없이

모두 적었고, 전체 공개를 해왔다.

내 경험을 쓰다 보니 싫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

불쾌했던 경험도 작성하게 된다.

글쓰기란 스트레스 해소와

감정 배출의 역할도 하니까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글을 보지 않았으면 하는 사람도

나의 삶을 언제든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것 때문에 불편한 일들이 몇 번 있었다.

그 뒤로 내 글은 누군가에게 위로와 공감,

힘이 되는 것보다는 단순한 감정 쓰레기통,

일기 수준인 것 같다는 판단이 들어

하나 둘 비공개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내 삶에 대해서 쓰고자 하는 의지는 분명 있는데

아직까지도 나에 대해 얼마나 오픈할 것인지

그 경계와 범위를 정하지 못했다.

나를 드러내는 게 이제는 좀 어색하고 불편하다.

삶의 많은 것들이 비공개처리 되고 있다.

경험을 통한 보수화가 되었다고 해야 하나.


'그럼 가상의 이야기인 소설이나 극본을 써야 하나?'

하는 고민도 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야기조차 내 이야기를 기반으로

만들어질 것만 같아 두렵다.

제일 좋은 건 내가 일하는 분야,

전문지식에 관한 글을 쓰는 걸 텐데

아직 나의 커리어가 그 정도로 발전하지 못했다.

뭔가를 열심히 배우고 있지도 않은 백수이기도 하다.


앞으로 쓰고 싶은 나의 이야기가 있다면

내 삶의 한 획을 그은 결혼과 출산 과정의 경험이다.

이 주제를 어떻게 문장으로 풀어갈지에 대해서는

내 경험이 어느 정도 숙성이 돼야 할 것 같다.


다시 즐겁게 꾸준히 글을 쓰고 싶다.

남에게 상처 주는 글이 아닌,

삶의 영감과 힘이 되어 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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