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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gchic Aug 04. 2023

나의 일본 친구들

아따마가 이이와 아따마가 이따이 사이에서

나의 입학 동기는 62세 양산 갈비탕집 사장님과 나를 제외하고는 신기하게도 모두 일본인이었는데, 그중 한 명이 리사였고 우리는 룸메이트가 되었다. 같은 날 도착한 인연으로 일본인 동기들은 함께 어울려 다니는 친구가 되었는다. 특히 리사는 도쿄에서 여행 가이드로 일했던 경력이 있는 친구로 영어를 잘하고, 덕분에 영어가 서툰 다른 일본인 친구들 사이에서 든든한 통역가가 되어주기도 한다. 아주 고마운 일이다.


한국 아이돌과 화장품, 옷에 관심이 아주 많다. 20대인 그녀는 귀엽고, 패기가 넘치고, 친구를 만들고 관계를 만드는 것을 즐긴다. 매일 저녁 '호소뇽짱!'이라고 부르며 그날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해 준다. '리사'라는 이름이 과일 '배'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해서 나는 그녀에게 고바시 망고짱 이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필리핀의 넘버원 과일은 단연코 망고니까. 첫 레벨테스트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은 그녀는 어려운 수업을 7시간이나 받아야 하는 탓에 매일 밤 파김치가 되어 방에 들어오는데 샤워도 안 하고 침대에 누워 있는 그녀를 쳐다보면 '아이노우. 아이노우. 왓 아이 해브투 두 라잇나우. 벗 플리즈 기브 망고짱 텐미닛. 혼소뇽짱!'이라는 귀여운 멘트를 날린다. 하지만 보통은 침대 밖으로 발만 빼놓은 채 곯아떨어지기 일쑤. 10년 전에는 나도 갖고 있었던 천진난만함과 개구쟁이 같은 면모를 그녀를 통해 볼 수 있어 매시간이 귀하고 즐겁다.


귀여움이 사람으로 태어났나 싶은 아야미는 오사카에 살면서 어린이집 선생님으로 일했었다고 한다. 특유의 쾌활하고 귀여운 모습은 보는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든다. 작은 일에도 얼굴 근육을 아끼지 않고 아주 크게 웃는 타입이다. 씩씩하고 대담한 면모가 드러내지 않은 반전을 지니고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아야미는 1인실에 혼자 묶고 있는데, 지난주 전기세와 수도세가 120페소(한화 3,000원) 밖에 나오지 않았다. (우리 방은 1200페소) 특히 수도 사용량이 0L로 찍혀있어 우리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는데, '샤워를 하지 않은 것을 들키고 말았습니다.'라는 멘트를 날려 비가 올 때마다 친구들은 아야미에게 프리 샤워를 권하는 농담을 던지고 있다. '아야미. 유캔 프리샤워 투데이. 세이브 유어 머니 모어.'라고 얘기할 때마다 그녀는 매력적인 덧니를 보여주며 웃는다.


씩씩함과 강단이 돋보이는 카요코는 미야자키 출신으로 오사카에서 간호사로 일했다고 한다. 코로나 대응 센터에서 일하면서 온갖 일들을 많이 겪어서인지 그녀는 웬만해선 쫄지 않는다. 그리고 알려주는 한국어를 찰떡같이 소화해 낸다. 일본어로 00상을 한국어로 어떻게 말하냐고 물어봐서 ‘씨’를 붙이면 된다고 알려주니 62세 양산 고깃집 사장님에게 ‘이 씨, 밥 먹었어요?’라고 해서 너무 웃겼다.(고깃집 사장님 일본 이름은 ’이상‘이다.) 귀엽기도 하고 ’이상‘과 ’이 씨‘ 사이의 그 미묘한 차이를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몰라서 그냥 두었더니 가끔씩 ’이 씨, 귀 괜찮아요?’, ‘이 씨, 배불러요?’라는 멘트를 종종 날려서 나를 즐겁게 한다.(이상은 수영하다 귀에 물이 들어가서 병원에 갔다 왔다.) 매일 밤늦게까지 학원 자습실에 머물면서 영어를 공부하는데, 너무 무리를 한 탓인지 그녀의 눈은 졸음으로 매일매일 작아지고 있는 중이다.


우리는 같이 아침, 점심, 저녁을 먹고 주말마다 시간을 함께 보낸다. 서로의 언어를 가르쳐주기도, 따라 하기도 하면서 함께 생활하는 시간이 신기하면서도 재밌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는 조르바와 말이 통하지 않는 러시아 사람이 서로 춤을 추고 몸짓을 보여주며 소통하는 장면이 있다. 나와 일본 친구들이 함께 시간을 보내는 모습도 그 장면과 별반 다르지 않다. 조금 시간이 걸리고 때로는 통역기를 사용해야 하기도 하지만, 대화하고 싶은 마음만 있다면 우리는 같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요즘은 우리는 백수라는 농담을 던지면서 노는데(일본어로는 니또), 이 장난이 큰 위로가 된다. 시간은 많은 니또지만 돈은 없는 백수라네.

얘네들이 한국에 놀러 오면 정말 좋을 것 같다. 전주나 경주 같은 한국의 올드시티를 보여주고 한복도 입게 해 줘야지. 맛있는 것도 잔뜩 사줘야지. 우리 집에서 잠도 재워주고 같이 영화도 봐야지. 그때까지 일본어도 조금 공부해서 재밌는 이야기도 많이 해봐야지. 모두가 니또일 때, 또 만나면 정말 좋겠다.


필리핀에 온 지 7주 차. 이제 딱 한주 남았다.

세부에서 만난 친구들과 헤어지는 날 나는 엄청 크게 울어버릴지도 모른다. 마지막은 겪고 또 겪어도 힘들다.




IT Park 야시장에서 맥주 털어먹기. 뒷테이블 모르는 사람들이다.
남편이 방문해서 함께 못간날 셋이 보낸 사진
날 합성해줬다.ㅋㅋㅋㅋ 넘 웃겨
열공하는 망고즈. 아야미 공부하라구!
아야미가 빌려간 돈을 갚는 방법. 귀여운 딸기 비닐팩과 편지!
카요코가 준 과자. 삭심 아니고 상심이지만 삭심이 더 귀엽다. 오네짱와 상심 나이데스!
리사의 귀여운 빵선물!! 받은게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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