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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gchic Sep 07. 2023

필리핀에서 영어를 공부한다는 것

필리핀에서 어학연수를 하는 것에 대한 주관적인 의견

Light ESL 코스 학생인 나는 하루에 4시간 영어로 필리핀 선생님과 1:1 수업을 받았다.

수업은 Reading, Speaking, Listening, English Pattern (문장 만들기)로 짜여 있는데, 주로 Reading수업에서는 영어 지문을 바탕으로 소리 내어 읽는 연습과 발음, 전체 글에 대한 이해 및 요약을 진행한다. Speaking은 특정 주제에 대한 내용을 토대로 자유롭게 내 의견을 표현하는 연습, Listening은 그야말로 듣기에 대한 과목으로 Dictation을 겸한다. 마지막으로 English Pattern은 영어 문장을 매끄럽게 만들 수 있는 각종 패턴들을 익히고 예문이나 대화문을 만드는 훈련을 받는다. 나는 Light코스라 4과목이지만, Intesive코스의 경우, 하루 7시간 일곱 과목을 들어야 한다.


내 경우, 수업은 모두 1:1 교습으로 진행됐다. Intensive코스는 두 과목 정도 그룹 수업이 포함돼 있다. 내가 다닌 어학원은 4주마다 레벨테스트를 치른 후, 선생님이 새로 배정되는 시스템이었고, 따라서 한 번 배정된 선생님과는 4주 간 함께 공부하게된다. 보통 학생들은 필리핀 어학연수를 두 달에서 세 달 정도 코스로 오는데 기간을 감안하면 두 번에서 세 번 정도 선생님이 바뀌게된다. 이런 시스템에서는 선생님 운이 연수의 질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나는 두 달 차에 배정된 선생님들과 스타일이 좀 안 맞아서 애를 먹었다. 뭐든 내 구미대로 할 수는 없지만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은 수업은 매니저에게 요청해 선생님을 변경했다. 학원마다 시스템은 다르게 운영된다.


필리핀 어학연수의 가장 큰 장점은 '저렴하다'는 것을 꼽을 수 있다. 다른 국가에 비해 수업료나 기숙사비도 저렴하지만, 생활비 역시 저렴하다. 다녀와서 계산해 보니 두 달을 한국에서 숨만 쉬었을 때 비용으로 숙식 해결은 물론 영어 공부까지 하고 왔다. 굉장히 남는 장사를 한 셈이다. 비용이 저렴하니 크게 걱정하거나 신경 쓰이는 것도 없었다. 다른 국가라면 홈스테이나 룸셰어 같은 것을 고민해야 할 텐데 필리핀은 기숙사도 잘 마련돼 있어 착한 학생모드로 수업 열심히 듣고, 밥 잘 챙겨 먹고, 통금 시간만 잘 챙기면 되었다.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다. 


두 번째 장점은 휴일이나 주말에 다양한 해양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다는 것. 바다가 아름다운 섬나라 필리핀에 오래 머물면서 날씨가 가장 화창하고 파도가 잔잔한 날을 골라 스쿠버 다이빙이나 호핑 투어 같은 것들을 즐길 수 있다. 3박 4일 여행 일정으로 방문했다면 날씨나 바다 상황이 안 좋아도 예약된 일정을 울며 겨자 먹기로 따라야 했을 텐데 그럴 필요가 없어서 너무 좋았다. 내가 머물었던 6월~8월은 필리핀 우기에 해당하는 기간이라 비가 많이 내렸지만, 좋은 날을 골라 바다에 쾌적하게 입수할 수 있었다. 나는 두 달을 머물며 주말을 이용해 오픈워터에 이어, 어드밴스 다이빙 자격증을 취득했고, 세부 근처 섬에서 펀다이빙도 실컷 즐겼다.


영어를 사용하는데 친숙해지는 것도 큰 장점이다. 하루에 적어도 4시간씩 영어를 사용해서 수업에 참여해야 하고, 영어권 국가는 아니지만 다양한 아시아 국적의 학생들과 의사소통도 해야 하니 영어를 생각보다 많이 사용하게 된다. 마치 매일 헬스장에 나가서 운동을 하는 것 같이 영어 연습을 하게 되니 영어로 뭔가를 이야기하고 표현하는데 두려움이 많이 사라지고 익숙해진다. 또, 개인차가 있겠지만 1:1 수업이니 미리 준비를 하지 않거나 숙제를 하지 않으면 수업시간이 너무 어색해지기 때문에 예습과 복습을 철저히 하게 된다. 먹고 자는 건 모두 학원에서 해결되니 생각보다 공부에 집중하기 편했다.


단점도 물론 존재한다. 가장 큰 단점은 필리핀은 영어권 국가가 아니라는 점이다.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공교육도 영어로 이수한다고 하지만 필리핀 역시 자체 모국어와 지방어가 존재하는 국가이다. 그러므로 필리피노들끼리 사용해 굳혀진 영어 표현도 존재하고 그들만의 악센트도 있다. 그래서인지 학원에서 '미국인처럼' 발음하는 걸 알려주는데, 그게 도움이 될 때도 있지만 너무 부수적인 것에 집중해 전체 수업의 맥락을 헤칠 때도 있었다. 사실 미국에 두 달간 머물며 근처 교회의 ESL 수업을 들었을 때, 원어민 선생님들은 오히려 발음이나 악센트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접근해 보라고 권했었다. 뉴욕에 사는 구독자 630만 한국인 요리 유튜버 망치 아줌마의 사례를 보여주며 아시안 악센트가 있더라도 커뮤니케이션에는 문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했었는데, 필리핀 어학원에서는 미국인처럼 연기하는 방법을 알려주는데 의외로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문제는 필리핀 선생님들도 어떤 발음인지 왜 그런지, 어디까지가 허용범위인지 모르는 상황이 종종 있다는 것이다. 같은 단어의 발음도 선생님마다 다 다르고, 어떤 선생님은 패스해 주지만 어떤 분은 교정이 필요하다고 여길 때도 있고.. 이러다 보니 학생 입장에서는 뭐가 맞는지 혼란스러울 때가 있었다. 아마 영어를 가르치지만 영어권 국가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인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유튜브를 참고하거나 다른 자료를 통해 어떻게 하면 되는지 찾아봤다. 뭐 선생님도 사람이니 이해할 수 있는 문제인 것 같긴 한데, 빈번해지면 좀 피곤하다.


아프거나 다치면 해결하기가 어렵다는 것도 단점이다. 생각보다 필리핀에서는 아프기 쉽다. 일단 기후가 다르고 먹는 물도 다르고, 외부 환경에서 위생 수준도 당연히 다르다. 또, 모기가 많다. 의외로 모기를 통해 전염되는 질병들을 겪는 일이 흔하다. 최대한 아프지 않기 위해 손소독제를 쓰고 자주 씻고 마스크도 착용해 봐도 건강상의 이슈는 언제든 생길 수 있다. 당연히 크고 작은 병원들이 있지만 접근성이 떨어지기도 하고 굉장히 느리다. 약국에 가더라도 한국에서 살 수 있는 수준의 성분이 포함된 약을 구매하기 어렵다. 세부에 머물면서 의외로 몸이 아파서 치료를 받기 위해 일정보다 일찍 귀국하는 학생들을 많이 만났다. 상비약을 생각한 양의 두 배 정도는 더 챙겨서 가는 것을 권장한다. 나도 연수 막바지에 감기에 걸렸는데, 한국에서 넉넉하게 챙긴다고 챙겼던 감기몸살약을 모두 다 소진했다. 툭하면 병원에 가는 우리 한국인들에게 필리핀 약은 너무 약하다. 감기약, 소염진통제, 모기약, 해열제, 상처 연고는 많이 많이 챙길수록 좋다.


인터넷 속도가 매우 느리고 연결이 불안정한 것도 필리핀 어학연수를 어렵게 만드는 것 중에 하나다. 필리핀에서는 와이파이뿐만 아니라 5G, LTE도 정말 잘 연결이 안 된다. 단기 체류면 여행에 집중하자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장기 체류일 경우 꽤나 불편하다. 일단, 커뮤니케이션이 잘 안 된다. 한국에 있는 가족에게 연락하기가 어려워 걱정시키기 십상이다. 나는 결국 내 로드심에 국제전화 상품을 추가로 결제했다. 회의를 하거나 인터뷰를 봐야 하는 상황이 생겼을 때도 곤란하다. 연수 기간 중 두 군데 정도 필리핀에서 면접을 봤었는데, 비디오콜이 너무 연결이 안 돼서 힘들었다. 인프라가 열약하니 인터뷰에 집중하기도 어려웠고, 결과도 좋지 않았다. 재택근무를 하는 친구가 내가 머무는 동안 세부에서 워케이션을 하면 어떨지 물어봤는데 인터넷 환경이 좋지 않다고 만류했다. 인터넷은 물론 어떨 때는 전기도 나간다. 세부에서 가장 좋다는 막탄 뉴타운도 전기가 나간다. 일하면서 공부하기에는 아직 어려운 부분이 크다.


위 내용을 종합해 봤을 때, 개인적으로 필리핀 어학연수는 이런 사람에게 추천한다. (직장인 혹은 30대 기준)

1. 영어 공부를 막 시작한 사람: 기초부터 공부하기는 제격이다. Happy나 Like를 모르는 학생이 입학해서 꽤 잘하게 되는 경우도 많이 봤다.

2. 영어를 공부해 왔으나 아웃풋이 부족한 사람: 나와 같은 경우인데, 영어 사용에 두려움을 없애고 친숙해지기는 좋다.

3. 쉬는 동안 무력감을 느끼는 사람: 이것도 나와 같은 경우인데, 일단 짜인 코스에 맞춰 생활하는 게 무력감과 우울감을 극복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 일조량이 많은 나라에서 햇빛을 쬐면서 다양한 국적의 사람을 만나는 것이 참 좋았다.

4. 장기 휴가를 알차게 보내고 싶은 사람: 저렴한 가격으로 영어 공부도 하면서 숙식도 해결하고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어서 알차다. 특히 방과 후, 수영은 너무 힐링이었다.


이런 사람에게는 비추천한다.

1. 학업이나 해외 취업을 목표로 영어의 유창성을 높이고 싶은 사람: 영미권으로 가는 것을 고려해 보라고 얘기하고 싶다.

2. 일하면서 공부하는 사람: 어학원이나 기숙사의 네트워크 환경을 잘 체크해 보길. 극 성수기 시즌에는 학생 수가 증가해 와이파이에 접속조차 안될 수도 있다.

3. 건강상의 문제가 있는 사람: 만성 질환이 있는 경우 철저히 대비해서 오거나 객관적으로 연수가 가능한 상황인지를 점검해 보길 바란다. 


모든 내용은 지극히 나의 주관적인 의견이므로 참고만 하길. 같은 필리핀이라도 지역이나 어학원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아차차, 바기오 같은 지역은 바다가 없다. 대신 날씨가 서늘해서 더위에 취약한 사람은 바기오를 선호한다고 한다. 나에게 다시 필리핀 어학연수를 가겠냐고 묻는다면, 한 달 정도 긴 휴가를 낼 수 있다면 고려해 볼 것 같다. 공부와 휴식을 적절히 조합한 알차게 휴가를 보낸 좋은 경험이었고 너무 사랑스러운 다른 나라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던 계기였다. 영어 실력은.... 늘었을 거라고 믿어야지.



학원 졸업식. 내 친구 아야미상과
올랑고섬 에메랄드 빛 바다 빛깔
날루수안에서 만난 바다 거북이
필리핀 약국에서 사 먹은 콧물약. 에잉 효가 없어
필리핀 만병통치약 깔라만시. 몸이 아프면 자꾸 필리핀 선생님이 깔라만시차를 마시라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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