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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힌 계절

by 홍주빛
어떤 기다림은, 너무 오래되어
기대했다는 사실조차 잊히고 맙니다.
『잊힌 계절』은 창작 이후의 침묵,
그 한 계절에 대한 조용한 기록입니다.

잊힌 계절

글 / 홍주빛


수많은 날을
턱을 괴고
한 올 한 올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그날이 오면
하늘을 날 듯 기뻐 뛰고
넓은 바다 위
파도 따라 출렁이게 되리라
믿었습니다.


간절한 기도는
손끝에서 피어나
한 글자, 또 한 글자
실이 되어
고운 옷감처럼 짜였습니다.


서툰 손길은
몇 번이고 미끄러졌고
매듭은 자주 엉켰지만
끝내 분홍빛 편지 한 장 되어
하늘에 띄웠습니다.


“잘 받았다”—
답을 바란 것은 아니었지만
구름 너머 당신께
닿았는지,
긴 밤을 하얗게 지새웠습니다.


이윽고
잊힌 계절처럼
그리움도, 설렘도
기대했다는 사실조차
조금씩 잊혀가는 시간 속에
조용히 옅어졌습니다.


그러나
모든 계절이 그러하듯
다시 올 수 있다면
그날의 뜨거움도
다시 내 안에서
번져가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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