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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밀밀 Sep 24. 2021

'자격 없는 엄마'를 위한 변명

[나를 키운 여자들] <플로리다 프로젝트> 속 무니와 핼리

"왜 애들을 이렇게 풀어둔대? 3류 모텔이잖아."


디즈니 월드에 신혼여행 오는 게 꿈이었다는 브라질인 신부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신랑에게 소리친다. 신혼여행 첫날밤인데, 이런 곳에서는 못 잔다고. 디즈니 월드 매직 킹덤에 있는 호텔인 줄 알고 숙소를 잘못 예약한 신랑은 난감해 한다. 그런 부부에게 팁이라도 받아볼까 한밤중 주변을 서성대는 아이들. 무니(브루클린 프린스)는 신부의 얼굴을 보며 스쿠티에게 말한다.

 

"불쌍하다. 울 것 같아. 어른들이 울려고 하면 난 바로 알아."


이곳은 디즈니 월드 건너편에 있는 라벤더색 모텔 '매직 캐슬'. 디즈니 관광객을 위해 지어진 마법의 성 같은 건물에 정작 머무는 사람은 모텔에서 장기 투숙하는 홈리스들이다.


6살 무니도 그들 중 한 명이다. 무니는 싱글맘 핼리(브리아 비나이트)와 함께 매직 캐슬 232호에 살고 있다. 무니의 친구 스쿠티는 바로 아래층에서 싱글맘 애슐리와, 무니의 새로운 절친 잰시는 매직 캐슬 맞은편 모텔 '퓨처 랜드'에서 할머니와 살아간다.




"저런 엄마라도…" 혼란스러움

 


▲ 살뜰히 챙겨줄 어른도, 돈도 없는 무니와 친구들에게는 모텔과 그 주변이 곧 놀이터다. ⓒ AUD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장소'라는 곳에서 고작 1마일 떨어진 곳. 엄마 아빠 손을 잡고 꿈에 부풀어 디즈니 월드를 찾는 아이들과 달리 살뜰히 챙겨줄 어른도, 돈도 없는 무니와 친구들에게는 모텔과 그 주변이 곧 놀이터다.


새로 모텔을 찾은 차에 침 뱉기 놀이를 하고, 전기 차단기를 내려 모텔 전기를 다 나가게 만들고, 디즈니 월드 매표소 아래 떨어진 동전을 줍거나 관광객에게 구걸해 아이스크림을 사 먹고, 버려진 콘도에 들어가 "여긴 침대, 여긴 책장" 상상하며 폐자재를 가지고 논다. 이 모든 게 아이들에게는 놀이다.


무니는 아이답지 않다. 어른들에게 욕을 하고 소리 지르고 헬리콥터를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올린다. 크게 소리치고 웃고 태연히 거짓말하고, 주눅 드는 법이 없다.  


그 딸에 그 엄마. 무니의 엄마 핼리도 엄마답지 않다. 온몸에 문신과 피어싱을 하고 아이가 있는 방에서 담배와 마리화나를 피운다. 체포된 전과도 있다. 입만 열면 욕을 하고 누군가 자존심을 건드리면 유치한 보복이라도 해야 직성이 풀린다.

 

"이 거지 같은 동네 쥐 잡듯이 뒤졌는데 아무도 안 써줘요."


가족 대상 관광업이 발달한 지역에서 핼리가 일자리를 구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 핼리에게 정부는 주 30시간 이상 일자리를 찾아야 보조금을 줄 수 있다 말한다. 


일정한 수입이 없는 핼리는 방세를 감당하는 게 버겁다. 무니를 데리고 다니며 관광객에게 향수를 팔아보고 구걸에 도둑질까지 해봐도 역부족이다. 절친 애슐리와 다툰 후로는 무니를 맡길 곳조차 없다. 결국 핼리가 선택하는 건 성매매. 무니가 욕실에서 커다란 힙합 음악을 틀어놓고 인형과 함께 목욕 놀이를 하는 동안 핼리는 방세를 번다. 핼리는 아동학대로 신고당한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핼리를 어떻게 봐야 할지 혼란스럽다. 지난 7월 말 방영된 tvN <영화로운 덕후 생활>에서 방송인 홍진경은 이 영화에 대해 "영화를 보자마자 고민이 시작되었다"며 "저런 엄마라도 애는 엄마 옆에 있어야 하는 게 맞나, 아니면 분리시켜야 하나(고민됐다)"라고 말했다.


그는 "(극중에서) 아이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과연 엄마가 맞나 고민이 된다"며 "이 엄마는 이 아이를 사랑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 핸디캡(장애)이 있어서 일을 할 수 없는 상황도 아니고, 파자마 입고 뒹굴고 있다 가장 쉬운 방법으로 돈을 벌고, 사지 멀쩡한데…"라고 분노했다.  



"이러고도 내가 부모 자격이 없다고?"

 


▲ 핼리도 자신이 엄마 자격이 없다는 걸 안다. ⓒ AUD

 

나도 비슷한 고민을 했다. 모텔 마당에서는 차로 사람을 치는 싸움이 일어나고, 소아성애자가 나타나기도 한다. 제대로 된 교육도, 보호도 없이 아이들은 방치된다. 심지어 빈 집에 아이들이 불을 지르는 사고가 일어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가 자라도 되는 걸까. 핼리를 찾아온 낯선 남자가 갑자기 화장실 문을 열었을 때, 목욕 커튼 뒤로 잔뜩 얼어버린 무니의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하지만 같은 방송에서 평론가 이동진이 말한 것처럼 핼리는 무니와, 무니는 핼리와 있을 때 가장 행복해 보인다. 다른 사람에게는 한없이 사납고 거친 핼리지만 무니에게는 쉽게 화를 내지 않는다. 어른이라는 이유로 아이를 훈계하려 들지도 않는다.


션 베이커 감독의 말처럼 두 사람은 모녀라기보다는 자매 같다. 무니가 사고를 쳐도 핼리는 너무나 당당하고 당연하게 아이 편을 들고, 패스트푸드 가게에서 아이와 트림 대결을 벌인다. 심지어 성매매를 위한 사진을 찍는 과정도 모녀에게는 '수영복 셀카 찍기' 놀이가 된다. 무책임하고 철없는 엄마. 핼리도 자신이 엄마 자격이 없다는 걸 안다.


영화 후반부, 아동 보호국 직원들이 다시 찾아오기 전 핼리와 무니는 마지막을 예감한 듯 비를 흠뻑 맞으며 논다. 그 장면을 보는데 더욱 혼란스러웠다. 우리 집 아이도 6살인데, 나는 저렇게 아이와 순수한 얼굴로 놀아본 적 있나.


나는 핼리보다 책임감도 있고 철도 들었고 아이에게 정기적으로 장난감도 사주고 홍콩에 있는 디즈니 랜드도 다녀온 적 있지만 아이의 눈높이에서 무니처럼 아이와 진심으로 신나게 놀아본 적은 없다. 그제야 무니가 왜 엄마를 좋아하는지 알 것만 같았다.


이 장면에서 알게 된 게 하나 더 있다. 아무리 센 척해 보지만 핼리도 아직 너무나 어리다는 것. 영화 초반, 친구 애슐리와 한껏 차려 입고 밤마실을 나가 춤을 추는 핼리는 들떠 보인다. 한창 연애하고 놀고 싶을 나이. 핼리는 그 어디서도 경제적, 정서적 지원을 받지 못한다. 영화 속 모텔 매니저 바비(윌렘 대포)가 아버지 같은 역할을 해주기는 하지만 핼리와 무니의 삶을 구원해 줄 수는 없다.


정부는 어떤가. 자립 능력이 없는 모녀를 방치했다 엄마가 아이와 함께 살아가기 위한 최후의 선택을 내리자 그제야 개입해 아이와 엄마를 떼어 놓으려 한다. 아동 보호국 직원으로부터 무니가 도망가자 핼리는 분노하며 소리친다.

 

"애가 도망치게 놔둬? 이러고도 내가 부모 자격이 없다고?"



디즈니 월드를 향해 달리는 아이들 

 


▲ 영화에는 보석 같은 장면이 많다. ⓒ AUD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좋은 환경을 제공할 의무가 있다. 아이들은 좋은 환경에서 자라날 권리가 있다. 움직일 수 없는 진실이다.


홍진경의 분노가 아이를 향한 안타까움에서 비롯됐다는 걸 잘 안다. 그러나 그 분노가 핼리만을 향하는 건 부당하다. 어떤 빈곤은 개인의 힘만으로는 벗어나기 힘들다. 핼리가 아이를 방임 학대한 것은 맞지만 핼리 역시 제대로 사랑받고 사랑하는 법, 노력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어른이 돼 버린 걸지도 모른다. 핼리와 무니에게는 훨씬 더 일찍 도움의 손길이 필요했다.


션 베이커 감독은 "빈곤의 악순환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잘 알고 있다"며 "제도가 바뀌지 않으면 희망적인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삶이 불평등하고 정의롭지 않다는 사실을 영화에 담으려 한다고.


영화에는 보석 같은 장면이 많다. 푸드뱅크에서 받은 빵에 잼을 발라 먹으며, 무니는 잰시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면서 말한다.

 

"내가 왜 이 나무를 제일 좋아하는지 알아? 쓰러졌는데도 계속 자라서."


영화 마지막, 무니는 처음으로 아이처럼 엉엉 소리 내어 운다. 잰시가 무니의 손을 잡고 디즈니 월드를 향해 힘차게 달릴 때 알 수 있었다. 쓰러진 나무라고 해서 자라지 못하는 건 아니라는 걸. 그 해 여름, 누군가에게는 잠시도 머무르기 싫은 모텔촌에서도 아이들은 자신만의 힘으로 또 한 뼘 자랐다는 걸.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나를 키운 여자들>

취업하고 결혼하고 엄마가 되면 자연스럽게 어른이 되는 줄 알았습니다. 여전히 어떻게 사는 게 맞는 걸까 어지러울 때, 소파에 벌러덩 드러누워 영화를 보고 드라마를 보면 뿌옇던 세상이 조금은 선명해졌습니다. 나를 키운 여자들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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