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있습니다!
'라라랜드'를 정말 재밌게 본 기억이 있어서 같은 감독의 '위플래쉬'도 한 번 봐야겠다 생각은 하고 있었다. 마침 넷플릭스에 '위플래쉬'가 있어 가벼운 마음으로 시청했고, 영화가 끝날 때까지 영화의 모든 장면에 전율을 느꼈다.
이 영화의 장점을 다 나열하면 한 개의 글로는 끝날 것 같지 않으니 대표적인 장점들만 설명하겠다.
1. 최고의 연출
연출이 좋다는 영화들을 꽤 봤지만 이 영화만큼 날 몰입시키진 못했다. 주인공인 앤드류가 단순히 드럼을 연습하는 씬도 드럼에 피와 땀을 섞어 그의 열정을 강조하는 장면으로 연출했다. 플레쳐가 앤드류의 드럼 옆에 얼굴을 갖다 대며 "빠르게!"를 외치는 장면은 없던 PTSD를 불러일으킬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재즈와 드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장시간의 최종 연주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던 것 또한 연출의 힘이 컸다. 연출의 역할이 관객들을 영화 속 상황에 몰입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면 위플래쉬는 최상의 연출을 선보인 것이다.
2. 클리셰 없는 시원한 전개
클리셰로 범벅이 된 전형적인 한국 영화도 내 취향이긴 하나, 내 예상을 완전히 벗어나는 영화를 만날 때 '더 재밌다'고 느껴진다. 이 영화는 클리셰를 완전히 비껴간 영화였다. 교통사고가 났음에도 끝까지 연주를 완수하려 했던 앤드류를 플레쳐는 감싸 주지도, 기회를 주지도 않았다. 그에게 돌아온 건 '끝났다'는 으름장뿐이었다. 재즈클럽에서 재회한 앤드류에게 기회를 준 플레쳐는 그의 연주자로서의 재능을 높게 친 것이 아니다. 단지 자신을 학교에서 물러나게 한 앤드류를 모두가 보는 앞에서 망신 주고 싶었을 뿐이다. 앤드류가 결국 성공한 연주자가 되어 황금빛 미래를 펼쳐가는 것도, 플레쳐가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고 한 단계 발전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최종 공연이 영화의 끝이다. 열린 결말을 좋아하지 않는 나지만 이 영화만큼은 결말에 최고점을 주고 싶었다. 예상과 모든 부분에서 빗나가는 전개가 내 인생과 같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가장 현실적인 결말이었다. 내 인생은 최고의 기대를 향하지도, 최악의 우려를 향하지도 않는다. 그저 조금씩 기대한 쪽으로, 일부는 걱정한 곳으로 향한다. 그렇기에 그들의 미래를 점치지 않은 결말이 더 설득력 있었다.
난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그 영화의 결말에 대한 사람들의 의견이나 관련 정보를 찾아보곤 한다. 그러다 '위플래쉬' 감독의 인터뷰를 보게 됐는데, 결말 이후 플레쳐는 그의 길을 확신하여 영원한 승리자가 되고 앤드류는 마약과 술에 중독돼 단명한 천재 연주자가 될 것 같다고 답했다. 생각해 보니 그의 말이 맞았다. 앤드류는 자신이 원하는 '천재'가 됐다. 다른 영화라면 앤드류는 드러머로서 탑을 찍고 니콜과 재회하며 가정도 꾸릴 것이다. 어느덧 나이가 들어 플레쳐와 같은 지휘자가 될 것이고, 플레쳐의 잘못을 매듭짓고 제2의 션 케이시를 만들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과 함께 영화는 끝난다. 그러나 현실은 감독의 인터뷰에 가깝다. 천재가 된 앤드류에게 행복은 자연히 따라올 것 같지만 그는 금방 죽는다. 플레쳐를 원망하고, 자신의 삶을 비관하며 말이다.
그러나 모든 천재가 날 때부터 재능을 안고 태어나지 않는다. 어떤 천재는 가스라이팅을 거듭하고 턱 끝까지 옥죄는 플레쳐 같은 스승이 없다면 태어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회의 수많은 플레쳐를 지켜봐야만 하는가? 한 분야의 대담한 발전이 동반된다면 개인의 삶은 짓밟혀도 되는가? 어려운 일이다. 오래 앉아서 생각해 봐도 답은 없을 것이다. 난 플레쳐가 옳다고도 틀리다고도 할 수 없다. 그저 앤드류가 자신의 삶에도 관심을 가지길 바라는 것이 할 수 있는 전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