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벼르고 별렀는데 울릉도에 가지 못했다. 정년퇴직을 앞두고 여행작가를 꿈꾸며 본격적으로 여행을 시작한 게 2009년이었다. 그때 세운 여행 목표는 우리나라 군 단위까지 다 가보는 것이었다. 오랜 시간 꾸준히 여행하다 보니까, 이젠 울릉군만 빼고 나머지 군 지역을 다 가보았다. 그때부터 퍼즐의 마지막 조각을 채우지 못한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회를 보았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울릉도와는 인연이 닿지 못했다.
올해 들어서 유난히 울릉도 앓이를 했다. 여러 날을 고민하다가 이렇게 가고 싶을 때 가야 한다는 생각에 연차 휴가를 내고, 여행사를 통해 배와 숙박, 렌트카를 예약했다. 애초 출발지는 서울에서 가까운 강릉이었다. 정말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들떠서 하루하루 날짜를 꼽으며 기다렸다.
한데 출발하기 전부터 조짐이 좋지 않았다. 출발을 이틀 앞두고 강릉에서 출발하는 배편이 취소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렇지만 포항에서는 예정대로 출발할 수 있다는 소리에 두말없이 출발지를 바꾸었다. 아침잠이 많은 사람이 새벽 4시부터 일어나 서둘러 포항으로 달렸다. 가는 동안에도 불안한 마음을 떨칠 수 없어 수시로 하늘을 살폈다. 먼동이 트면서 보이는 하늘은 걱정과 달리 맑았다.
그랬던 하늘이 포항에 가까워지면서 잔뜩 골이 난 아이의 얼굴처럼 찌푸렸다. 마음속으로 제발 아무 일이 없기를 빌면서 포항 여객선터미널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걱정을 숨길 수 없었지만, 부두에 정박해 있는 울릉도 가는 큰 배를 보면서 이 정도 비는 괜찮을 거라고 자기최면을 걸었다. 갈 수 있다고 아니 가야만 한다는 생각에 멀미약까지 미리 사 먹고는 초조하게 기다렸다.
터미널에 있는 모니터에서는 독도의 현지 영상이 계속 나오고 있었다. 파도가 조금 높아 보이기는 했지만, 날씨는 괜찮아 보였다. 영상을 보면서 조금은 안심되었던 마음도 점점 굵어지는 빗줄기에는 애간장이 녹아날 수밖에 없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이제나저제나 하면서 기다리는 사이에 승선 시간이 다 되었다.
그때 안내 방송이 나왔다. 불길한 예감이 빠르게 머릿속을 스쳐 갔다. 아니나 다를까 파도가 높아 출항이 지연된다고 한다. 덧붙여서 30분 간격으로 기상 상황을 보고 출항 여부가 결정된다고 한다. 초조하게 30분이 지난 후, 또다시 출항 지연 방송이 나왔다. 그리고 다시 또 30분이 지나 출항할 수 없다는 최종 방송이 흘러나왔다. 터미널에는 어림잡아 300여 명의 사람이 출항을 기다리고 있었다. 최종 방송이 나오는 순간, 여객선터미널은 일순간 정적이 흘렀다.
곧이어 여기저기서 아쉬운 탄성이 터져 나왔다. 한바탕 소란이라도 일어날 줄 알았는데, 그것으로 끝이었다.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속에서는 참을 수 없는 분노와 허탈감이 폭발했다. ‘왜? 하필 오늘!’ 마음 같아서는 수영해서라도 울릉도에 가고 싶었다. 마음을 접은 사람들이 하나둘 재빨리 여객선터미널을 빠져나갔다. 이제 여객선터미널에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오늘따라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었다.
이런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럴 때 무엇을 할 지에 대한 생각이나 계획이 전혀 없었다. 그렇다고 먼 길을 왔는데 그대로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그때 울릉도 가는 게 취소되었다는 소리를 듣고 큰딸이 포항에서 가볼 만한 곳을 몇 군데 문자로 보내왔다. 그중에서 제일 먼저 선택한 곳이 이가리 닻 전망대였다.
울릉도에 가지 못한 분노와 실망감을 삭이려면 그래도 바다가 나을 듯싶었다. 이가리 닻 전망대는 해안에서 바다 쪽으로 걸으면서 바다 경치를 즐길 수 있게 만들어 놓은 해안 전망대다. 눈앞에 걸리는 것 없이 하나 없이 탁 트인 푸른 바다가 펼쳐졌다. 굵고 긴 철제 기둥을 세워 그 위에 사람들이 다닐 수 있도록 해놓았다. 사람 속을 온통 뒤집어 놓았던 비는 멈추었지만,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것처럼 잔뜩 찌푸렸다.
무엇보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 먼바다에서부터 밀려오는 파도가 거칠기 이를 데 없었다. 해변으로 밀려와 사정없이 부서지는 거대한 하얀 파도는 무서울 정도였다. 탁 트인 바다와 거친 파도 그리고 세차게 부는 바람이 걷잡을 수 없이 타올랐던 불덩이 같은 마음을 식혀주었다.
전망대는 부는 바람과 밀려온 파도에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휘청거렸다. 이제야 울릉도 가는 배가 출항하지 못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전망대 끝에서 짙은 회색의 하늘과 파란 바다가 겹치는 수평선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리고 속으로 외쳤다. “기다려라! 울릉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