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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심 Jul 24. 2020

필기 발표를 기다리며 자문자답

경력 공백기, 불안한 나와 마주하기


1. 오늘이 필기시험 합격자 발표일이라고 들었다. 지금 기분은?
마음이 가볍기도 하고 무겁기도 하다. 이미 결과는 나와있으니 내 마음 하나 잘 추스르면 될 것 같다.

2. 마음을 추스르다니 결과를 이미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는 것인가?
여러모로 정황을 따져봤을 때 떨어질 가능성이 큰 것 같다. 서류는 적부였고 필기에서 전체 응시자 중 상위 10명만 면접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시험 난이도가 쉬웠어서 실수가 없어야 했는데, 나는 시간 조절에 실패하는 바람에 문제를 2개 찍기까지 했다. 거기에 같이 시험 본 친구랑 얘기하다가 푼 문제, 찍은 문제 각각 하나씩 틀렸다는 사실도 알았다. 붙는다면 정말 운 좋게 커트라인에 걸린 것일 것이다.

3.  좋게 합격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럴 수도 있다. 사실 내심 운이 따라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이번에 지원한 기관은 전 직장을 퇴사하기 전부터 눈여겨봐 두었던 곳이다. 서류도 열심히 썼고 필기 준비도 성실히 했는데, 면접도 전에 여기서 올해 채용 기회를 날리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크다. 이번 채용으로 기관 정원도 채워지는 터라 내년부터는 입사하기 더 어려운 직장이 될 것이다.

4. 그래서 여러모로 복잡한 심경에 집을 나선 것인가?
그렇다. 되면 좋고 안돼도 어쩔 수 없지만, 기왕 예쁜 공간에서 결과를 맞이하고 싶었다. 그래서 한강뷰가 보이는 카페를 검색해서 찾아왔다. 복층 구조에 책들이 벽면을 에워싸고 있는 곳이라 마음에 든다. 달달한 밀크티와 잔잔하게 흐르는 음악이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키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5. 사실 떨어져도 상관없지 않나?
길게 보면 상관없을 것이다. 나는 또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끝내 어딘가 붙고야 말 것이고 심지어 들어가면 잘하려고 열심히기까지 할 테니까. 그냥 지난 7개월간의 긴 고민 끝에 이 일이 내가 버티면서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일이라고 결론 내렸기 때문에 더 간절해지는 것 같다. 그리고 전형이 끝날 때마다 결과를 기다리는 일이 썩 적응할만한 일은 아니어서 이번에 어떻게든 끝내고 싶은 마음도 있다. 공백기가 더 길어지면 안 될 것 같다.

6. 이번에 지원한 기관과  직장 모두 하는 일이 비슷하다. 옛날에는 버틸  없어서 퇴사했는데, 이번에는 버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계기가 있는가?
맞다. 동종업계라 볼 수 있다. 질문대로 예전에는 전 직장의 비효율적이고 불공정한 부분에 깊이 분노했고 나랑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일이 되게 하는 게 아니라 문제 생기지 않게 하는 게 먼저고, 성과보다 그 밖의 요소로 평가하고 보상하는 체계를 가진 이 조직이 나의 성장을 가로막고 그 의지마저 갉아먹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회사를 나와 해당 업계의 생리에 대해 정리해놓은 책을 읽고 나니, 당시에 내가 소속된 분야의 가치체계와 한계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덜 중요한 문제에 괜한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을 둘러싼 환경에 자주 실망한 나머지, 종국에 내가 좋아하는 일마저 싸잡아 포기했다고 볼 수 있다. 지금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지켜내는 것의 가치를 알았다. 그래서 버티고 싶어 졌고 또 즐기고 싶어 졌다.

7.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고 어떻게 자신할  있나?
나는 사주에 흙(토)이 많아서 그런지 여러 가지 재능이 많다. 처음 하는 일도 웬만큼 능숙하게 해낸다. 이렇다 보니 뭐든 잘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이것저것 손대는 편이다. 퇴사하고 나서도 글쓰기, 그림 그리기, 굿즈 만들기 등등을 시도하고 있다. 처음에는 꼭 또다시 직장인이 될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새로운 진로를 찾고자 시작했다. 금세 처음 하는 사람 같지 않은 결과물도 만들어냈다. 그런데 어쩐지 원래 했던 일만큼 아이디어가 확장되지 않았다. 왜 안되는지 보다 어떻게 하면 되게 만들까를 고민하는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나에게 책임을 묻는 사람도 없건만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문득 슬로건 하나를 뽑기 위해 일주일 내내 문장을 수없이 고쳐가며 최고의 결과물을 찾아내던 과거의 내가 떠올랐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몰입하고 욕심을 낸다면 그게 내가 좋아하는 일이 아닐까.

8. 조만간 발표가   같다.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란다. 끝으로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혼자 있는 시간은 대개 축복이지만, 이런 날은 혼자 있는 시간이 영 달갑지 않다. 오늘은 나를 가장 잘 아는 나와 이야기할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었다. 끝으로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은 ‘자신을 믿자’ 정도다. 돌이켜보면 나는 항상 나의 선택을 의심했던 것 같다. 정답 맞니? 이번에는 오래 할 자신 있니? 이렇게 간곡히 결과 발표를 기다리는 와중에도, 어쩌면 나만 변했고 다른 것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을 그곳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두렵다. 하지만 이번에도 나를 믿어야 한다. 그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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