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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르웨이숲 May 02. 2023

뿌리 깊은 지역감정을 경험한 순간

전라도와 경상도의 화합은 가능한 걸까?

아이를 어린이집에 적응시키며 엄마들 몇몇과 친해졌다. 어느 날은 동네 카페에서 시간이 되는 엄마들끼리 모여 커피를 한잔 하는데 서로 나이와 고향을 얘기하다가, 한 엄마가 말했다. 

"와, 나도 경상도 사람인데.. 어딜 가서 잘 통한다 싶은 사람이 있으면 경상도 사람이고, 별로다 싶은 사람이 있으면 꼭 전라도 사람이더라니까? 하하하."

그 말을 들은 몇몇 엄마가 맞장구를 친다.

가만히 있던 전라도 사람인 나는 일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나... 어떻게 해야 이 불편함을 모면할 수 있을지 생각하며 어색한 미소를 짓는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

맞은편에 앉은 엄마가 내게 "00이 엄마는 서울사람이에요? 말투가 그런데.." 묻는다. 나는 어색함을 달래며 "아니요, 저도 지방사람이에요."라고 눙치며 상황을 모면했다. 

남편이 예전부터 많이 겪어왔다는 그 상황을 내가 겪게 될 줄은 몰랐다. 남편이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는 얘기를 했을 때, 반신반의했던 나였다. 술이 거나하게 들어간 남자들의 술자리 용태겠거니 넘겨짚었다. 하지만 이렇게 모멸과 차별, 무신경함의 언어에 직면했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사람이 특별히 나쁜 사람이어서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저 경험의 폭이 좁고, 무신경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의 무신경함에 다치는 사람이 있다는 걸 그도 미처 몰랐겠지.

하루 종일 그 말이 머릿속을 맴돌다가 나는 얼마나 사려 깊고 배려심 많은 사람인가 생각해 본다. 의도하지 않은 무신경함과 편협한 경험의 폭 때문에 다른 사람을 상처 입힌 적은 없었나 생각해 보니 부끄럽기 짝이 없다. 또래들은 당연히 대학을 나왔을 거라고 생각하고 몇 학번이냐고부터 묻는 무신경함. 아버지의 회사에서 학비가 지원되는 까닭에 사람들이 학자금 대출을 갚으며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것 또한 알지 못했다. 그래서 학비는 부모님이 해주시는 거 아냐,라고 생각했던 내 무지와 편협함이 어떠한 방식으로 발화되어 다른 사람들을 상처 입혀 왔을지 나는 감히 상상할 수 없다. 

한편, 나는 얼마나 당당한 전라도인인가. 아이들의 출생신고를 하며 본적(현 등록기준지)을 수도권인 현주소로 선택한 나. 본적이 아버지의 고향이기 때문에 지역을 보고 사람을 가려 뽑는 기업들은 꼭 본적을 적어내라고 한다는 것을 어디선가 읽고, 나와 남편이 전라도인인 것이 아이에게 발목 잡히지 않도록 아이의 등록기준지는 수도권으로 적어내며 안도했다. 또 말투는 어떤가. 나와 남편은 완벽한 서울말을 구사한다. 어린 나이부터 상경해서 이곳에서 자리 잡기 위한, 동물의 보호색처럼 혐오와 차별에 대비하고 살아남으려는 몸부림이 아닐 수 없다.

결정장애, 암 걸린다, 그 밖의 사회적 약자들을 향한 시혜적인 표현. 인권 감수성을 길러 민감하고 분별력 있게 말과 행동을 하려 매 순간 노력하지만 숨 쉬듯 뿜어낸, 지금도 내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무신경한 말들이 얼마나 많을지 생각해 본다. 잘못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다 했던가. 아파하는 개구리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안쓰럽고 서글프다. 당해보니 의도와 상관없이 아프고 쓰라리다. 혹자들은 어떤 일을 꼭 겪어봐야 아는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겪기 전엔 알지 못하는 세상도 있는 것임을 오늘 다시 마주한다. 어떤 사람들은 결코 경험하지 못하는 분야가 있는 것이다. 사는 것이 스펙트럼을 넓혀가는 과정이니 이 사건 또한 나의 스펙트럼을 정교하게 하는 일화려니 생각하려 애쓰지만 상처 입은 마음이 회복되는 데는 약간의 시간이 걸릴 것 같다. 더불어 내가 가진 스펙트럼이 너무 단조롭고 얄팍해서 그 잣대로 사람을 재단하고 평가하지는 않아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남편은 갓 돌 지난 아이들에게 "너희 이제 00이랑 놀지 마." 한다. 나름대로 속상함을 표현하고 나를 위로하려는 그만의 표현이다.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나. 아이들이라도 잘 지내서 동서 간의 화합이 일어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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