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괴의 심도

지하 칠십 미터의 사투.

by 김경훈

지하 칠십 미터 대심도 배수터널 공사장의 공기는 시멘트 분진과 짙은 습기로 늘 무거웠다. 십오 년 차 토목 기사 최진우는 안전모의 턱끈을 조이며 축축한 암벽을 쓸어내렸다. 손끝에 닿는 콘크리트의 서늘한 촉감과 미세한 진동이 터널의 상태를 말해주고 있었다. 환풍기가 이십사 시간 돌아가는 웅웅거리는 저음이 고막을 무겁게 짓눌렀고 공기 중에는 용접 작업에서 발생한 매캐한 오존 냄새와 지하수의 비릿한 흙냄새가 끈적하게 섞여 있었다. 지상의 햇빛이 단 한 줌도 닿지 않는 완벽한 폐쇄 공간에서 시간의 흐름을 알려주는 것은 오직 교대 시간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와 인부들의 거친 땀 냄새뿐이었다.


오후 두 시 굴착기 엔진 소리가 갑자기 불규칙하게 헐떡이기 시작했다. 쿠궁 쿠구궁. 최진우는 본능적으로 걸음을 멈추고 바닥에 무릎을 댔다. 작업화 밑창을 뚫고 발바닥을 통해 전해지는 진동의 주기가 미세하게 어긋나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기계 결함이 아니었다. 터널 저편 뚫린 어둠 속에서부터 무언가 거대한 것이 암벽을 긁으며 밀려오는 듯한 묵직한 마찰음이 들려왔다. 우르릉거리는 소리는 순식간에 고막을 찢을 듯한 거대한 굉음으로 변했다. 상부 지반을 지나던 노후화된 대형 상수도관이 엄청난 수압을 이기지 못하고 파열되며 칠십 미터 아래의 터널 천장을 뚫고 쏟아져 내린 것이다.


대피해 모두 입구 쪽으로 뛰어. 최진우가 목청 밑바닥에서부터 소리를 끌어올렸지만 그의 다급한 외침은 쏟아져 내리는 거대한 폭포수 소리에 무참히 짓눌려 흩어졌다. 그 순간 천장을 밝히고 있던 임시 가설 조명들이 팍 팍 하는 날카로운 파열음과 함께 일제히 터져 나갔다. 완벽하고 절대적인 암흑이 지하 공간을 단숨에 집어삼켰다. 차갑고 끈적한 흙탕물이 순식간에 작업화 발목을 덮치고 무릎까지 차올랐다. 어둠 속에서 방향을 잃은 인부들의 둔탁한 비명과 철근 파이프가 휩쓸리며 부딪히는 끔찍한 금속음이 뒤엉켜 지옥의 아우성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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