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이 잘려야 평안해지는 당신에게

체급이 다른 양귀비를 응원하는 법

by 김경훈

인류의 지성은 비약적으로 업데이트되었는데, 유독 ‘질투’라는 구버전 운영체제는 여전히 에러를 일으키고 있음을 발견한다.

충주시의 얼굴이었던 ‘충주맨’ 김선태 씨가 야생으로 나오자마자 구독자 140만 명을 찍으며 데이터 폭주를 일으켰다.

하지만 그의 성공 로그 뒤에는 어김없이 “운이 좋았다”거나 “세금 덕분이다”라는 악성 노이즈가 따라붙는다.

타인의 성공을 목격하면 일단 깎아내려야 직성이 풀리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버그, ‘키 큰 양귀비 증후군(Tall Poppy Syndrome)’이 도진 것이다.



‘평균’이라는 안온한 감옥과 튀어나온 못


우리 사회에는 유독 키가 커서 눈에 띄는 양귀비의 목을 잘라 다른 꽃들과 키를 맞춰야만 안심하는 집단적 증세가 있다.

김선태 씨뿐만 아니다.

백종원 씨는 “방송발”이라며 폄하당하고, 2026 밀라노 동계올림픽의 영웅 최가온 선수는 “강남 아파트 금수저”라는 프레임에 갇혀 축하 현수막조차 떼어달라는 민원에 시달린다.


이것은 일종의 정서적 리셋(Reset) 시도다.

상대의 성취를 ‘운’이나 ‘배경’이라는 외부 변수로 치환해버리면, 노력하지 않은 나의 현재가 정당화되기 때문이다.

“그는 운이 좋아서 저기 있는 거고, 나는 운이 없어서 여기 있는 것뿐이야”라는 자기 합리화는 달콤하지만, 결국 우리 사회의 혁신이라는 메인보드를 망가뜨리는 치명적인 악성 코드다.



시스템의 수혜인가 개인의 투혼인가


김선태 씨가 ‘친정’인 충주시 유튜브 구독자 수를 가뿐히 뛰어넘으며 140만 유튜버가 된 사건은 아주 중요한 데이터를 시사한다.

그의 성공이 단순히 조직이 밀어준 결과가 아니라, 개인의 집요한 기획력과 투혼이라는 핵심 알고리즘에서 비롯되었음을 스스로 증명해낸 것이다.


성공 비결을 재력이나 운에서만 찾으려는 시도는 편리하다.

하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밤샘 작업과 치열한 사유의 과정을 무시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성공의 소스 코드’를 분석해낼 수 없다.

튀어나온 못을 사정없이 내려치는 사회에서 누가 감히 고개를 들어 새로운 도전을 하겠는가.

“성공하면 찍힌다”는 냉소가 지배하는 세상은 결국 아무도 뛰지 않는 정지된 시스템이 될 뿐이다.



부와 성공의 선순환 : 선한 영향력의 인덱싱


다행히 김선태 씨는 수익의 30%를 기부하겠다며 질투 사회에 세련된 반격을 가했다.

개인의 성공이 사회적 선순환으로 이어지는 부의 재분배 로그를 생성한 것이다.

백종원 씨가 죽어가는 상권을 살려내고,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국민에게 5조 원 이상의 무형적 가치를 제공하듯, 뛰어난 개인의 성취는 공동체 전체의 파이를 키운다.


부자를 끌어내리면서 동시에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바라는 것은 지독한 시스템 충돌이다.

타인의 성공을 시기하는 에너지를 그 성공의 비결을 학습하는 리터러시로 전환할 때, 우리 사회의 천장은 비로소 높아진다.

남의 꽃대를 꺾는다고 내 꽃이 더 잘 자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잘 자란 꽃들이 많아질수록 우리가 사는 정원의 해상도가 높아진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나는 오늘도 꿋꿋이 고개를 드는 모든 ‘키 큰 양귀비’를 응원한다.

그들이 보여주는 과감한 도약은 우리 모두가 도달할 수 있는 새로운 좌표를 찍어주기 때문이다.

타인의 성취를 깎아내려 스스로의 천장을 낮추는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말자.

7명의 신입생이 모인 학교와 263명이 몰린 학교의 격차를 걱정하면서도, 정작 성공한 이들을 끌어내리는 모순을 멈추어야 한다.


김선태라는 한 개인의 성공이 '운'이라는 단어 속에 박제되지 않고, 더 큰 세상으로 뻗어 나가길 바란다.

당신의 전두엽이 누군가의 성공을 보며 '질투'라는 알람을 울린다면, 그것을 당신의 잠재력을 깨우는 '동기부여' 신호로 재번역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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