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26일 일요일, 대구의 오후는 어제의 폭풍 같은 환희가 지나간 자리에 내려앉은 정적 속에 있다.
4월 25일.
나는 사랑하는 보보와 '부부'라는 이름의 새로운 서버를 공식 개설했다.
애초에 내가 설계한 알고리즘은 지인들과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며 0.3초의 눈 맞춤 대신 3분 이상의 깊은 인사를 나누는 평화로운 아카이브였다.
하지만 현실의 웨딩 로직은 무자비했다.
한 분 한 분 제대로 인사드리지 못한 채 식이 끝났다는 사실에 죄송함과 아쉬움이라는 '에러 메시지'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 혼란 속에서 내가 발견한 가장 놀라운 데이터는 바로 '사랑의 규모'였다.
나라는 사람의 인생 장부에 이토록 소중한 지인들이 많이 인덱싱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어제의 그 벅찬 소음 속에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쏟아진 축복의 총량은 처리 용량을 초과하는 감동의 과부하였다.
거룩한 공존: 열한 분의 사제와 함께한 미사
결혼식의 정점은 무엇보다 거룩한 미사였다.
나의 작은아버지이신 김두찬 세례자요한 신부님의 주례를 필두로, 이제는 나의 처남이 된 황지현 예로니모 신부님, 그리고 임성호 베네딕토 삼촌 신부님이 자리를 지켜주셨다.
여기에 신홍식 루가 신부님, 백명흠 바오로 신부님, 박정근 테오디모 신부님, 정광호 도미니코 신부님, 김관호 리카르도 신부님, 박태훈 마르티노 신부님, 장개석 베드로 신부님, 박경웅 베드로 신부님까지.
무려 열한 분의 사제께서 공동 집전으로 올려주신 미사는 내 인생에서 가장 '보수적이면서도 혁신적인' 성스러움의 극치였다.
이분들이 쏟아주신 기도의 에너지는 내 삶의 어떤 악성 코드도 침투하지 못하게 할 강력한 방화벽이 되어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깊은 감사를 올린다.
영혼의 단짝, 신재혁이 부르는 위로의 선율
축가의 문을 연 것은 나의 영혼의 단짝, 재혁이었다.
우리는 내가 중도 실명이라는 거대한 시스템 오류를 겪고 만난 충주성모학교 동기다.
세상의 모든 주제로 밤을 지새우며 공통분모를 찾아냈던 나의 첫 번째 시각장애인 친구.
하지만 그는 단순한 친구를 넘어, 2018년 김광석 노래부르기 대회 대상에 빛나는 이 시대의 진정한 가객이다.
어반자카파, 자이언티, 폴킴 등 내로라하는 아티스트들이 러브콜을 보내는 그의 연주를 내 결혼식에서 듣다니, 이건 내 인생 장부에서 가장 화려한 '지출'이자 '수익'이었다.
쌉싸름한 송진 향기와 17년의 진동: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선
다음은 17년 전 캘리포니아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만난 꼬마, 지선이의 순서였다.
당시엔 그저 귀여운 동생이었던 그녀가 맨해튼 음대 석사를 마치고 카네기홀과 서울시립교향악단을 누비는 거장이 되어 돌아와 축가를 연주했다.
작년부터 스케줄을 확인하며 공을 들인 보람이 있었다.
바쁜 해외 일정 중에도 오직 오빠를 위해 달려와 준 지선이의 연주는 내 영혼의 결을 하나하나 정돈해 주는 마법 같은 리터러시였다.
보이지 않는 곳의 조력자들: 박영준 미카엘과 나의 지인들
마지막으로, 하루 종일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나의 소중한 순간들을 시각 데이터로 아카이브해 준 내 동생 박영준 미카엘에게 깊은 사랑을 전한다.
그의 헌신적인 촬영 덕분에 나는 비록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훗날 보보의 목소리를 통해 어제의 그 빛나던 장면들을 하나하나 생생하게 복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미처 다 호명하지 못한 나의 소중한 지인들.
당신들이 있어 나의 '나 홀로 연구'는 비로소 '우리라는 팀 연구'로 완성되었다.
이제 나의 충직한 파트너 탱고에게도 보상을 줄 시간이다.
녀석은 어제 하객들의 수많은 손길과 복잡한 소음 속에서도 안내견의 품격을 잃지 않고 묵묵히 내 곁을 지켰다.
녀석의 자아 소모를 해결해 줄 방법은 단 하나, 녀석이 소시지보다 수만 배 더 사랑하는 최애 데이터 '치즈'를 넉넉히 상납하는 일이다.
치즈 한 조각에 꼬리를 흔들며 만족해할 탱고를 보며, 나 역시 보보와의 결혼 생활이라는 새로운 챕터를 가장 정직하고 유쾌하게 기록해 나갈 것을 다짐한다.
우리는 어제부로 '각자'에서 '우리'로 인덱싱을 마쳤다.
이제 남은 것은 이 풍부한 데이터들을 바탕으로, 가장 아름다운 인생의 논문을 써 내려가는 일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