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 관리자가 쓰러지면 누가 서버를 지키는가?
보안 프로그램? 방화벽? 아니다.
결국엔 전원 플러그를 뽑거나, 도둑을 몽둥이로 후려갈길 수 있는 물리 보안 요원이 최후의 보루다.
특히 그 요원이 3천억 원짜리 자산을 지키려는 악착같은 건물주라면, 그 전투력은 특수부대를 능가한다.
- 영적 균형 학회 4대 석학, 김경훈.
「조율과 축출에 관한 소고 - 개정판 서문」 (자가 출판, 2025년) 31쪽 (물리적 보안 편).
## 에피소드 31. 자산 방어와 샤넬의 탄도학
1.
"끄으윽..."
사무실 바닥, 최고급 대리석 타일 위에서 김경훈이 머리를 감싸 쥐고 뒹굴었다.
그의 뇌 속에서는 끔찍한 경고음이 울리고 있었다. 차승목이 심어둔 소닉 재머가 뿜어내는 백색 소음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김경훈의 영적 데이터 처리 장치를 강제로 셧다운 시키는 디도스 공격이나 다름없었다.
눈앞이 캄캄했다. 평소라면 숫자와 코드로 보이던 세상이 깨진 픽셀과 회색 노이즈로 뒤덮였다. 벨루티 구두의 감촉도, 로로 피아나 코트의 부드러움도 느껴지지 않았다.
완벽한 시스템 다운이었다.
"흐흐흐. 꼴좋다, 장님 전파사."
사무실 문을 활짝 열고 차승목이 들어왔다. 그의 기름진 포마드 머리가 사무실 조명을 받아 번들거렸고, 싸구려 향수 냄새와 땀 냄새가 김경훈이 애써 맞춰둔 사무실의 쾌적한 공기 데이터를 오염시켰다.
그의 뒤로는 검은 선글라스를 쓴 GBI 요원들이 펠리컨 박스에서 포획 장비를 꺼내며 진입했다. 그들의 동작은 기계적이고 위협적이었다.
"자, 이제 이 건방진 버그 덩어리를 수거해 볼까? 미국 형님들이 아주 궁금해하시던데."
차승목이 쓰러진 김경훈의 멱살을 잡으려 손을 뻗었다. 김경훈은 저항할 힘조차 없었다. 탱고는 책상 밑에서 겁에 질려 낑낑거릴 뿐이었다.
그때였다.
"이봐."
아주 낮고, 건조하며, 지극히 사무적인 목소리가 차승목의 등 뒤를 때렸다.
2.
차승목이 멈칫하며 고개를 돌렸다.
사무실 안쪽, 사장실 문 앞에 황 소장이 서 있었다.
그녀는 지금 상황을 공포 영화가 아니라, 아주 골치 아픈 재산권 침해 현장으로 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쓰러진 김경훈(자산 가치 3천억 추정)과 흙발로 들어온 차승목(무단 침입자)을 번갈아 훑었다.
"남의 사무실에 흙발로 들어와서 내 가장 비싼 집기(김경훈)를 고장 냈어?"
황 소장이 천천히 어깨에 걸치고 있던 샤넬 트위드 재킷을 벗었다.
수백만 원짜리 재킷이 소파 위로 툭 떨어졌다. 전투에 방해가 된다는 뜻이었다. 타이트한 실크 블라우스 차림의 그녀가 지미 추 힐을 또각거리며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너, 내가 누군지 잊었나 본데."
그녀는 프라다 갤러리아 백을 열었다. 보통 여자들의 가방에는 화장품이나 지갑이 들어있겠지만, 험한 부동산 바닥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그녀의 가방은 생존 키트나 다름없었다.
그녀의 손이 가방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묵직하고 차가운 금속성 광택이 도는 물건.
호신용 가스총이었다.
"어? 야, 잠깐만... 황 소장, 말로 해!"
차승목이 기겁하며 뒷걸음질 쳤다.
"말? 3천억짜리 계약 날아가게 생겼는데 무슨 말!"
*취이이익!*
황 소장이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매운 캡사이신 가스가 차승목의 얼굴을 정통으로 강타했다.
"끄아악! 내 눈! 내 눈!"
차승목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굴었다. 기름진 포마드 머리가 바닥의 먼지와 뒤엉켜 엉망이 되었다.
3.
하지만 적은 차승목뿐만이 아니었다.
뒤에 있던 GBI 요원들이 당황하며 포획 장비를 들어 올렸다. 그들은 훈련받은 요원들이었지만, 한국의 성난 건물주 아줌마라는 변수는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
"헤이! 스톱! 진정해!"
요원 하나가 테이저건을 꺼내려했다.
황 소장은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프라다 가방 옆에 세워져 있던, 평소 퍼팅 연습용으로 두었던 골프채를 집어 들었다.
아이언 7번. 적당한 무게감과 타격감을 자랑하는 훌륭한 물리치료 도구였다.
"내 자산에 손대지 마!"
황 소장이 골프채를 야구 방망이처럼 휘둘렀다.
그녀의 스윙은 타이거 우즈 못지않게 완벽한 궤적을 그리며, 요원의 손에 들린 테이저건을 정확히 가격했다.
*깡!*
경쾌한 금속성 타격음이 사무실에 울려 퍼졌다. 테이저건이 허공을 날아 구석에 처박혔다.
"아우! 마이 핸드!"
요원이 손을 감싸 쥐며 주춤했다.
"이것들이 어디서 감히! 수리비 청구하기 전에 꺼져!"
황 소장은 지미 추 힐을 신고도 놀라운 균형 감각으로 사무실을 누비며 골프채를 휘둘렀다. 그녀의 금발 웨이브가 사자의 갈기처럼 휘날렸다. 그것은 우아함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자본주의가 낳은 전사의 기백이 넘쳐흘렀다.
그녀에게 김경훈은 단순한 직원이 아니었다.
그는 걸어 다니는 빌딩이자, 미래의 상장 주식이었다. 내 주식을 휴지 조각으로 만들려는 작전 세력을 용서할 개미 투자자는 없는 법이다.
"저리 안 꺼져? 경찰 부른다! 아니, 변호사 부를 거야! 너네 본사에 내용증명 보낸다고!"
그녀의 고함 소리는 소닉 재머의 노이즈보다 더 크고 날카로웠다.
4.
[크르르...]
책상 밑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탱고가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었다.
무서워서 숨어 있었지만, 황 소장이 저렇게 필사적으로 싸우는 모습을 보자 가슴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비록 지금은 니트를 입은 귀여운 소년의 모습이고, 목에는 에르메스 하네스가 채워져 있지만, 그의 본질은 저승 관리국의 엘리트 관찰자가 아니던가.
[우리 소장님... 아니, 내 밥줄 건드리지 마!]
탱고가 책상 밖으로 튀어 나갔다. 그는 야수로 변신하지는 않았지만(아직 무서우니까), 가스총에 맞아 괴로워하는 차승목의 정강이를 냅다 걷어차고는 GBI 요원의 다리를 꽉 깨물어 버렸다.
"악! 이 개... 아니, 애새끼가!"
황 소장의 골프채와 탱고의 이빨 공격, 그리고 사무실에 가득 찬 최루 가스.
최첨단 장비를 갖춘 GBI 요원들과 차승목은 이 원시적이고 물리적인 방어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후퇴! 일단 후퇴해!"
차승목이 눈물 콧물을 쏟으며 기어서 도망쳤다. GBI 요원들도 장비를 챙겨 허둥지둥 그 뒤를 따랐다.
*쾅!*
황 소장이 문을 발로 차서 닫고, 잠금장치를 걸었다.
"헉... 헉..."
사무실에 다시 정적(물론 소닉 재머의 윙윙거리는 소리는 여전했지만)이 찾아왔다.
황 소장은 헝클어진 머리를 쓸어 넘기며 골프채를 지팡이처럼 짚고 섰다.
그녀는 바닥에 쓰러진 김경훈에게 다가갔다.
김경훈은 여전히 귀를 막고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김 팀장. 괜찮아? 죽은 건 아니지?"
황 소장이 김경훈의 뺨을 툭툭 쳤다. 그녀의 목소리는 거칠었지만, 그 속에는 자산 가치 하락을 걱정하는 마음 그 이상의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정신 차려. 3천억 벌어야지. 여기서 죽으면... 내가 너 퇴직금도 안 줄 거야."
(에피소드 31.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