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이 악성 코드에 감염되어 마비되었을 때, 유일한 희망은 외부에서 접속하는 '관리자(Admin)'다.
하지만 그 관리자가 접속할 통로마저 막혀 있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시스템 내부의 '코어(Core)'를 직접 깨워서 안과 밖에서 동시에 벽을 부수는 것.
이것은 '수리'가 아니다. '재부팅(Reboot)'을 위한 필사적인 '심폐소생술'이다.
- 영적 균형 학회 4대 석학, 김경훈.
「조율과 축출에 관한 소고 - 개정판 서문」 (자가 출판, 2025년) 32쪽 (시스템 복구 편).
에피소드 32. 소닉 재머와 역방향 디버깅
1.
황 소장의 아이언 7번 골프채와 탱고의 이빨이 침입자들을 잠시 물리쳤지만, 사무실의 공기는 여전히 무거웠다.
... 윙...
마크 레빈슨 앰프 뒤쪽에 숨겨진 소닉 재머는 멈추지 않고 돌아갔다. 인간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초고주파 노이즈가 마치 방사능처럼 사무실을 오염시키고 있었다. 그 보이지 않는 독가스 속에서 김경훈은 바닥에 웅크린 채 식은땀을 흘렸다.
"김 팀장! 정신 차려! 3천억이 날아간다고!"
황 소장이 김경훈의 어깨를 흔들었지만, 그는 반응하지 못했다. 그의 뇌 속은 이미 블루 스크린으로 뒤덮여, 외부의 어떤 입력 신호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태였다.
"안 돼... 이대로면 뇌가 타버려..."
그때, 사무실의 적막을 깨고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화기도, 인터폰도 아니었다. 김경훈이 그토록 아끼던 마크 레빈슨 스피커에서 지직거리는 잡음과 함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 아, 아. 마이크 테스트. 황 이사님, 들리세요?]
"조 실장?"
황 소장이 골프채를 쥔 채 스피커를 쳐다봤다.
[다행이다. 앰프 회로는 살아있네요. 제가 외부에서 사무실 네트워크로 우회 접속했어요.]
조 실장의 목소리는 평소의 장난기 어린 톤이 아니었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타건음이 기관총 소리처럼 배경에 깔려 있었다.
"지금 그게 문제야? 김 팀장이 죽어가는데! 빨리 저 기계 좀 꺼봐!"
[안 돼요. 저건 GBI 놈들의 군용 암호화 장비예요. 제가 밖에서 해킹으로 끄려면 3시간은 걸려요. 그전에 팀장님 뇌 회로가 먼저 녹을 거예요.]
"그럼 어떡해! 내가 부셔버려?"
황 소장이 골프채를 들어 올리며 앰프 뒤쪽을 노려봤다.
[멈추세요! 강제로 부수면 '데이터 폭주'가 일어나서 팀장님 청각 신경이 영구 손상될 수 있어요!]
황 소장이 멈칫했다. 김경훈이라는 자산 가치가 '0원'이 되는 것은 그녀가 가장 두려워하는 시나리오였다.
[방법은 하나뿐이에요. '역방향 디버깅'. 안에서부터 코드를 풀어야 해요.]
2.
"안에서 푼다니? 김 팀장은 지금 기절 직전이라고!"
[팀장님은 기절한 게 아니에요. '데이터 과부하'로 처리가 지연되고 있을 뿐이죠. 제가 팀장님의 뇌에 직접 '패치 파일'을 쏘아 보낼게요.]
"뭐? 어떻게?"
[스피커 볼륨을 최대로 높이세요. 그리고 팀장님 귀에 갖다 대세요. 지금 당장!]
황 소장은 지미 추 힐을 벗어던지고 맨발로 뛰어가 볼륨 노브를 끝까지 돌렸다. 그리고 쓰러진 김경훈의 머리를 안아 올려 스피커 쪽으로 돌렸다.
[팀장님! 제 목소리 들리세요? 지금부터 제가 보내는 소리는 '말'이 아니에요. '코드'입니다!]
조 실장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찢을 듯이 울려 퍼졌다. 하지만 그것은 평범한 대화가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의 천재적인 해킹 실력을 동원해, 목소리의 주파수와 억양을 0과 1의 디지털 신호 패턴으로 변조하고 있었다.
"끄으으..."
김경훈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의 마비된 '디지털 공감각' 인터페이스에, 회색 노이즈를 뚫고 선명한 파란색 데이터 스트림이 꽂히기 시작했다.
[집중하세요! 지금 들리는 삐- 소리는 노이즈가 아니라 악성 코드의 '주소값'입니다! 제가 보내는 신호랑 동기화하세요!]
김경훈의 머릿속, 칠흑 같은 암흑 속에서 한 줄기 파란빛이 번쩍였다.
그것은 조 실장의 목소리였다. 아니, 그녀가 보낸 '복구 프로그램'이었다.
'...... 데이터...... 변환......'
김경훈은 본능적으로 그 파란빛을 붙잡았다.
17살 충주 기숙사에서 '소음의 홍수'를 견뎌냈던 그 처절한 집중력이 되살아났다. 그는 귀로 들어오는 조 실장의 목소리를 언어가 아닌, 시스템 명령어로 번역하기 시작했다.
[입력 신호 감지: 디버깅 툴]
[명령어 실행: 노이즈 캔슬링]
3.
김경훈이 눈을 번쩍 떴다.
선글라스 너머의 눈동자는 초점이 없었지만, 그의 뇌 속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한 코딩 작업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는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그의 눈에는 허공에 떠다니는 소닉 재머의 '악성 파동'이 붉은색 스파크처럼 보였다. 그리고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조 실장의 목소리는 그 붉은 스파크를 잠재우는 파란색 냉각수처럼 보였다.
"조 실장... 좌표값... X-78, Y-40..."
김경훈이 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네! 확인했어요! 주파수 대역 14킬로 헤르츠! 역위상 신호 송출합니다!]
김경훈은 자신의 JH 오디오 커스텀 이어폰을 주머니에서 꺼내 꼈다. 그리고 아스텔 앤 컨 플레이어와 앰프를 케이블로 연결했다.
"내가 '경로(Path)'를 열게. 당신이 '엔터(Enter)'를 쳐."
김경훈이 앰프의 이퀄라이저를 미세하게 조작했다. 그는 소닉 재머가 뿜어내는 노이즈의 파형을 정확히 읽어내고, 그 틈새를 벌렸다.
[지금이에요! 덮어쓰기(Overwrite)!]
조 실장이 엔터키를 누르는 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전해졌다.
동시에 김경훈도 플레이어의 볼륨을 높였다.
콰아아앙!
물리적인 폭발음은 없었다.
하지만 사무실을 가득 채우던 끈적하고 불쾌한 노이즈가 마치 유리가 깨지듯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산산조각이 났다.
붉은색 악성 데이터가 사라지고, 맑고 투명한 C 메이저의 공기가 다시 사무실을 채웠다.
툭. 투두둑.
앰프 뒤에 숨겨져 있던 소닉 재머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툭 하고 전원이 꺼졌다. 기계적 과부하로 회로가 타버린 것이다.
"하아... 하아..."
김경훈이 앰프를 짚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로로 피아나 코트는 땀에 젖어 축축했다. 하지만 그의 귀에는 다시 선명한 세상의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황 소장의 가쁜 숨소리, 탱고가 꼬리를 흔드는 소리, 그리고 창밖의 바람 소리.
"김 팀장! 괜찮아?"
황 소장이 맨발로 달려와 그를 부축했다.
김경훈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입꼬리가 다시 익살스럽게 올라갔다.
"아이고, 황 보. '시스템 복구' 비용 청구하셔야죠. '난이도'가 꽤 높았습니다."
스피커에서 조 실장의 안도하는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휴... 살았다. 팀장님, 제 목소리... 데이터로 들으니까 좀 섹시하던가요?]
"글쎄요. '이진법'치고는 꽤 수다스럽더군요."
김경훈이 오클리 선글라스를 바로잡으며 말했다.
"자, 이제 우리 사무실에 흙발로 들어왔던 놈들에게... '바이러스'를 돌려줄 차례입니다."
(에피소드 32.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