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한 일을 마무리하는 힘

by 김경훈

시작이라는 도파민의 유혹과 마무리라는 의지의 근육



매년 12월이면 찾아오는 불청객이 있다. 한 것도 없는데 시간만 빨리 갔다는 허무함, 그리고 작년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내 모습에 느껴지는 씁쓸함이다. 연초에 세웠던 거창한 계획들은 이미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 지 오래고, 호기롭게 결제했던 헬스장 회원권은 어느덧 기부 영수증으로 변해 있다. 사두고 읽지 않은 책들은 방 한구석에서 침묵의 탑을 쌓고 있고 말이다. 우리는 왜 이토록 '시작'에는 능하면서 '마무리'에는 서툰 걸까?



시작은 달콤하고 끝은 쓰디쓴 뇌의 구조


뇌과학적으로 보면 우리가 시작만 잘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우리 뇌는 '도파민'이라는 보상 시스템을 가동한다. 새로운 목표를 세우는 것만으로도 이미 그 일을 다 이룬 것 같은 쾌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헬스장을 등록하는 순간 이미 몸짱이 된 기분을 느끼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시작의 짜릿함이 지나가고 지루한 반복의 시간이 찾아오면, 뇌는 금세 흥미를 잃는다. 마무리를 담당하는 영역은 도파민이 샘솟는 보상 회로가 아니라, 고도의 집중력과 끈기를 요구하는 전두엽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결국 마무리를 못 하는 건 내 의지가 부족해서라기보다, 우리 뇌가 '새로운 자극'이라는 달콤한 유혹에 훨씬 약하게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마무리의 힘은 '의지'가 아니라 '설계'에서 나온다


양은우 작가는 이 책을 통해 마무리는 결코 타고난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것은 오히려 뇌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관한 기술적인 문제에 가깝다. 시작할 때의 그 거창한 열정은 금세 식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마무리를 하려면 열정에 기대기보다, 우리 뇌가 지치지 않고 끝까지 달릴 수 있도록 매일의 리듬을 아주 작게 쪼개어 설계해야 한다.


예를 들어 '올해 책 50권 읽기'라는 목표보다는 '매일 밤 잠들기 전 한 쪽 읽기'가 훨씬 마무리하기 쉽다. 뇌가 부담을 느끼지 않을 정도의 아주 작은 행동으로 목표를 파편화할 때, 전두엽은 비로소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쓰기 시작한다. 마무리는 한 번의 거대한 폭발이 아니라, 수천 번의 작은 발걸음이 모여 완성되는 예술이다.



마무리는 새로운 시작을 위한 '지적 정리'


마무리를 못 하는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는 모든 것을 완벽하게 끝내려다 결국 아무것도 끝내지 못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진정한 마무리는 단순히 목표를 100% 달성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때로는 내 한계를 인정하고 그 일을 적절한 지점에서 매듭짓는 것도 훌륭한 마무리다.


끝맺음이 없는 일들은 우리 마음속의 보이지 않는 짐이 되어 에너지를 야금야금 갉아먹는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자이가르닉 효과'라고 부르는데, 끝내지 못한 일일수록 자꾸 생각나서 뇌를 피로하게 만드는 현상을 말한다. 책 한 권을 끝까지 다 읽지 못하더라도 "여기까지 읽은 것으로 충분하다"라고 스스로 마침표를 찍어주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우리 뇌는 그 짐을 내려놓고 비로소 새로운 시작을 위한 공간을 마련할 수 있다.



올해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며 자책하기보다는 작지만 내가 끝까지 해냈던 사소한 일들에 집중해보고 싶다. 헬스장은 못 갔어도 매일 아침 스트레칭을 1분이라도 했다면, 책은 다 못 읽었어도 한 문장을 가슴에 새겼다면 그것대로 의미 있는 마무리다. 마무리의 근육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지만, 아주 작은 마침표를 찍어본 경험이 쌓일 때 비로소 우리는 인생의 주인공으로서 끝까지 달릴 힘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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