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2학년 겨울, 『태백산맥』을 읽었다. 지리산 빨치산들의 생생한 이야기가 다양한 인간 군상과 함께 내 눈앞에 거대하게 펼쳐질 때, 나는 지하철에서 당당히 책을 펼치지 못 했다. 그건 그 이야기가 ‘빨갱이’ 이야기여서가 아니라, 중간중간 등장하는 지나치게 ‘야한’ 장면들 때문이었다. 단언코, 이전까지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들어보지도 못했던, 감히 상상해보지도 못했던 최고 수준의 ‘야함’이 서울 한복판 대중교통 안에서 펼쳐질 때, 나는 두 번, 세 번 책을 덮어야 했다. 대학교 2학년 때니까, 내 나이가 스물 하나. 스물 한 살짜리가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성인이었지만 어른이 아니었던 내게 『태백산맥』은 읽기 버거운 텍스트였다.
나는 조정래 선생님을 존경하지만, 많이 좋아하지는 않는다. 『태백산맥』을 끝까지 읽었고, 개정판도 구입해 놓았지만, 언제 다시 읽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더 ‘야한 걸’ 좋아하게 되는 어느 날에, 담담한 마음으로 야한 장면들을 지나쳐 갈 수 있을 때, 조선의 공산주의 운동에 대해, 밑바닥 삶을 살아야 했던 민중의 처참한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공부할 수 있을 때, 그 때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다.
내가 말하고 싶었던 건, 『태백산맥』 이야기가 아니고. 그제 저녁부터 『포트노이의 불평』을 읽고 있다. 『포트노이의 불평』은 필립 로스를 미국 최고의 대표 작가로 수직 상승시킨 작품으로 출간 당시 미국 도서관들이 금서로 지정하고, 호주에서는 금수 조치되었던 화제작이다. 문제가 되었던 부분은 주인공의 자위행위에 대한 묘사인데, 사춘기 소년의 화장실 행각에 대해서는 궁금하지 않았지만, 필립 로스가 그려내는 10대 소년의 폭발적 분노와 광기에 대해서는 적잖이 궁금했기에 어쩔 수 없이 책을 펼쳤다.
사춘기 소년의 일탈은 언제쯤 나오려나, 두려움 반, 기대 반을 가지고 읽어 나가던 차에, 주인공의 어머니를 만나고서는 나도 모르게 활짝 터뜨린다. 웃음꽃을 말이다. 위생과 정리정돈에 ‘강박증’을 보이는 주인공의 어머니가, 어느 날 밤, 아무 것도 먹지 않겠다는 주인공에게 말한다. 뭐라고? 저녁을 먹지 않겠다고? 너, 커서 어떤 사람이 되려고 그러니? 인간이야 쥐야.
왜 이러니! 너처럼 잠재력 많은 아이가! 너의 소양! 너의 미래! 하느님이 너에게 아낌없이 주신 모든 선물. 아름다움, 두뇌라는 선물. 그런데도 이렇다 할 이유도 없이 그냥 굶어죽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게 어디 가당키나 해?
네 평생 사람들이 비썩 마른 아이로 멸시하며 내려다보기를 원하니, 아니면 당당한 어른으로 우러러보기를 원하니? 사람들이 너를 마구 밀치고 놀려대는 꼴을 당하고 싶은 거야? 다른 사람들이 재채기만 해도 자빠지는, 뼈하고 가죽만 남은 사람이 되고 싶어? 아니면 존경을 받고 싶니?
커서 어느 쪽이 되고 싶니? 약한 사람이야 강한 사람이야? 성공한 사람이야 실패한 사람이야? 인간이야 쥐야? (28쪽)
어제 아침. 아롱이가 속으로는 아침메뉴가 마음에 안 들어서, 말로는 학교에 늦었다며 두어 숟가락을 뜨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식탁에서 일어서려 한다. 나는 책을 펼치고는, 이 부분, 정확히 이 부분을 읽어 준다. 아롱이가 웃고, 부지런히 수저를 옮기던 아침형 저기압 딸롱이도 웃는다. 인간이야 쥐야?
읽던 책이 재미있으면 딸롱이에게 말한다. 무얼 어떻게 해보려고 딸롱이에게 이야기하는게 아니라, 제일 자주 얼굴을 대하는게 딸롱이라서 그렇다. 내가 읽는 책, 내가 감동 받은 책에 대해 이야기한다. 좋아하는 구절은 읽어주고, 책도 보여준다. 물론, 딸롱이는 건성건성 보고 만다.
밥 먹지 않겠다 떼를 부리던 아롱이는 “인간이야 쥐야”에 홀려서는 밥 한 그릇을 먹고 일어섰다. 혹 학교에서 돌아오면 자기들도 이 책을 읽어보겠다, 덤비지는 않을까 쓸데 없는 걱정도 생긴다. 나도 아직 결정적으로 ‘야한’ 부분은 만나지 못한 상태라 아이들에게 쉽게 책을 내줄 수도 없는 일이다. 다행이다. 아침에 아이들한테 책 제목은 이야기하지 않은 것 같다. 책을 숨겨야겠다. 이 재미있고 놀라운 책, 『포트노이의 불평』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