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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은나의것 Jun 29. 2021

실수는 누구나 해.

또다시 자학하는 나에게


몇 달 전, 꽤 까다로운 공증 번역이 들어왔다. 한국에서 받았던 졸업, 경력, 학위, 성적과 교수요목 목록, 실습증명서 등을 모조리 번역하는 일이었다.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으나 전공 영역이 완전히 생소한 것이었고 여러 문서가 비슷한 듯 다르기도 해서 실수가 있었고 의뢰인의 요청에 맞게 수정을 했다. 사실 독일과 한국의 교육이나 과정 등이 너무 상이해서 모든 것들을 일치시킬 수 없고 공인 번역사로서 그것을 한국의 것과 메치시켜주는 것까지 나의 일이 아니기도 하기에 숫자 2를 3으로 잘못 표기하는 등의 실수는 내 것이었다 인정한다 하여도 명칭 등을 독일의 것과 정확하게 일치시켜야 할 의무가 없고 일치하는 것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의무만 없을 뿐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해서는 안되기도 다. 의미를 최대한 자연스럽게 전달시켜야 하는 일반 번역이 아닌 공문서 등의 번역은 최대한 원어의 표현을 그대로 유지하라고 되어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 역자의 주를 달아 주기도 하지만 말이다.


여하튼. 그 번역을 의뢰했던 사람에게서 오늘 전화가 왔다. 제출 기관에서 문서의 진위를 의심하며 돌려보냈다는 것이다. 진위 여부는 내 번역의 잘못으로 의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너무 의아했다. 의뢰인은 어떻게든 내 탓으로 이 사단을 돌려 보고 싶어 하는 듯한 뉘앙스였다. 독일은 담당자의 재량이 아주 크기 때문에 깐깐한 담당자를 만날 경우 말도 안 되는 것으로 트집을 잡는 일이 있을 수 있지만 원어를 모르는 담당자가 문서의 진위를 따지는 것은 번역 뒤에 붙어 있는 한국어 문서의 원본이 너무 허접해 보이거나 아포스티유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거나여서이지 번역 때문은 아닐 것이다.


의뢰인의 남편이 독일인이어서 꼼꼼하게 봤다며 나에게 다시 수정 의뢰할 때 사실 수정하지 않아도 되는 부분까지 체크를 해서 돌려보내기도 했고 말이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입장에서 컴플레인도 일의 일부이고 나는 일인 사업자로 혼자 오롯이 일을 하므로 당연히 실수가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오늘 짜증 섞인 목소리의 전화를 받고 나니 또다시 심난함과 자학이 스멀스멀 올려오려고 한다. 완벽하지 못했던 것 때문에 또 근본적인 내 자질까지 의심하려고 하고 있다. 내가 나에게 다시 독침을 쏘려고 준비하는 게 느껴진다. 실수는 실수다. 나는 사람이다. 실수할 수 있다. 더 이상으로 나가지 말자. 이제 그만......!!!

이렇게 글을 쓰는 것 말고 지금 한껏 심난해진 나에게 용기 주는 일이 무엇일지 모르겠다. 더 나아지는 데는 이런 일도 필요하겠지. 그럴 것이다.

위의 사진은 우리 집 근처의 밭에 핀 꽃과 하늘을 찍은 것입니다. 제 마음은 심란하지만 세상은 이렇게 평화롭고 아름답다는 것을 알려주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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