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문득 나도 쇼츠처럼 점점 짧아지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조금 무모한 결심을 했습니다. 1,000페이지가 넘는 책을 읽어보겠다고. 그것도 단번에 끝내겠다는 게 아니라 하루 10쪽씩만 읽겠다고요.
사실 저는 벽돌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두꺼운 책은 늘 상징처럼 느껴졌습니다. ‘시간 많은 사람들이나 읽는 책’, ‘지적인 사람들의 취미’ 같은 이미지요. 저처럼 일하고, 블로그 쓰고, 하루를 빽빽하게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사치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건 오해였습니다.
두꺼운 책을 읽는다는 건 시간을 많이 가진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라 시간을 ‘쪼개는’ 사람이 하는 일이더라고요.
하루 10쪽. 정말 별거 아닙니다. 스마트폰을 조금 덜 보면 충분히 가능한 분량이니까요. 저는 책을 침대 머리맡에 두었습니다. 자기 전, 불을 끄기 전에 딱 10쪽. 어떤 날은 피곤해서 눈이 감겼고 어떤 날은 생각보다 재미있어 20쪽을 읽기도 했습니다. 중요한 건 ‘많이’가 아니라 ‘계속’이었습니다.
신기하게도 책 속 이야기가 머릿속에 오래 머물렀습니다. 하루 만에 끝나지 않으니 등장인물과 함께 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긴 호흡의 문장을 따라가다 보니 제 생각도 길어졌습니다. 무언가를 판단할 때 조금 더 기다리게 되었고 결과를 빨리 보고 싶어 안달하던 마음이 조금 느슨해졌습니다.
우리는 너무 빠른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빨리 답을 찾고, 빨리 성과를 내고, 빨리 인정받아야 한다고 배워왔습니다. 하지만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들은 대부분 오래 걸립니다. 관계도, 실력도, 신뢰도. 그런데 저는 늘 결과만 바라보며 조급해하고 있었습니다. 벽돌책을 읽는 시간은 제 조급함을 마주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왜 이렇게 진도가 안 나가지?’, ‘이걸 언제 다 읽지?’
그 질문이 떠오를 때마다 혹시 나는 다른 일들도 이렇게 조급하게 대하고 있지는 않은지를 떠올리게 되거든요.
이제 저는 벽돌책 읽기를 일종의 의식처럼 생각합니다. 매년 한 번, 나의 호흡을 길게 만드는 훈련. 내 뇌를 짧은 자극에서 잠시 분리해 깊은 물속으로 데려가는 시간.
중요한 건 완독의 기록이 아닙니다. 사실 1년 안에 다 읽지 못해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건 포기하지 않고 다시 펼치는 태도입니다. 하루를 빼먹어도 괜찮습니다. 대신 다시 돌아오는 것. 그 반복이 결국 나를 바꾼다고 믿습니다.
혹시 요즘 마음이 자꾸 조급해진다고 느끼신다면 한 번 시도해 보셔도 좋겠습니다. 거창할 필요 없습니다. 집에 이미 꽂혀 있는 두꺼운 책 한 권이면 충분합니다. 그리고 하루 10쪽.
아마도 우리는 그 책을 다 읽기도 전에, 조금 달라진 자신을 먼저 발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조금 더 기다릴 수 있는 사람, 조금 더 깊게 생각하는 사람, 조금 더 자신의 속도를 인정하는 사람으로.
저는 오늘도 10쪽을 읽고 잠들 예정입니다. 그리고 그 느린 걸음을 꽤 마음에 들어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