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곁의 페미니즘] 조동연 관련한 언론의 경마보도, 공해 수준이었다
(※이 편지는 오마이뉴스 연재기사입니다. 홈페이지에서 직접 보시면(http://omn.kr/1wcep) 작가의 편지낭독 음성을 바로 들으실 수 있습니다. :) 재회의 고리가 되어준 편집자 고 이환희님께도 감사를 전합니다.)
'페미니즘을 뭐라고 번역하시나요? 우린 '성평등주의'로 읽습니다. 성별로 인한 차별을 없애자는 얘기죠(오바마도 페미니스트라네요!). 페미니즘이 오해받는 한국, 그 안에서 페미니스트로 사는 두 여성의 이야기. 2주마다 한번씩 편지를 주고받으며, 연대와 성장을 꾀해봅니다.[기자말]
편지를 쓰기 전, 6월에 제가 받은 첫 편지 '여자로 태어난 건 축복일까요'를 다시 읽었어요. 요즘 마음이 정말 심란했거든요. 정책은 시야에서 사라지고, 거대 양당의 대선 캠프가 경쟁하듯 인선과 인재영입에만 열을 올리는 정치 풍토가 이제 저는 좀 질리는데... 당신은 어떠신가요.
한편 정말이지 지켜보는 게 괴로웠던 이슈도 있었어요. 민주당에서 공동 상임선거대책위원장으로 영입했던 조동연 교수의 사퇴 말이에요.
영입 인사 검증은 당연한 일이지만, 이번엔 공익적이라기보단 사생활을 파헤치는 데 혈안이 된 것 같았어요. 가세연(가로세로연구소) 강용석 변호사와 김세의 대표 등은 유튜브에서 조 교수 자녀 사진을 눈만 가린 채 공개하고, 실명·생년월일 등 신상을 페이스북(강용석)에 올렸다가 지웠다고도 하죠. 가족의 개인정보까지 공개될 필요가 있었을까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더 분노하는 지점은 따로 있어요. 가세연이 사회에 혼란을 일으키는, '가짜뉴스'에 가까운 과장정보를 마구 퍼뜨리며 이걸로 돈을 번다는 점요. 유튜브 조회수가 곧 돈이기 때문이겠죠. TV조선 등 언론도 이를 퍼나르는데, 이건 '국민 알 권리'를 빙자한 관음증 아닐까요. 이 문단을 쓰는 내내 제 구겨진 미간이 펴지지를 않네요(덧붙여 가세연은 과거에도 수차례 허위정보로 지적받았었고요. http://omn.kr/1n4gg).
제가 겪은 사이버불링(cyberbullying)의 기억도 떠올랐습니다. 저도 지난 총선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했었는데, 일부 남성 중엔 '친해지고 싶다'며 제 SNS로 계속 메시지를 보내는 사람, 자기와 따로 만나줘야만 후원을 하겠다는 이가 있었거든요. 그런데도 저는 그들을 '언팔'하는 것 외엔 적극 대응하질 못했어요. 강하게 나가면 그걸 또 캡쳐해 문제삼을까, 겁이 났었거든요.
그뿐인가요. 선거운동을 다닐 때 전국 유세현장에서 만난 다른 당 남성 후보들은 저를 '후보님'이 아닌 "아가씨"라고 불렀고, 제 외모와 얼굴에 대한 평가를 아무렇지 않게 던지곤 했습니다. 제가 정색하고 "그런 말씀은 하면 안 됩니다"라고 반박을 해도 그분들은 뭐가 잘못인지 모르는 것 같더라고요.
출마경험이 있는 동료들과 대화해보면 이게 여성 정치인들의 보편적인 경험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정의당 대표였던 이정미 전 의원조차 그런 경험이 있더라고요. 유권자들과 악수를 하는데, 한 남성이 성적인 의미로 이 의원의 손바닥을 긁는 성추행을 했다는 얘기였습니다(관련 기사: 이정미 "'손바닥 희롱'한 그 분, 지금 만나면 달리 대응할 것").
여성은 검증의 문턱을 넘기도 힘들지만, 넘는다고 삶이 달라질까요?
서울시의회 여성의원 100명에게 물은 조사에서는 절반에 가까운 의원이 '나는 성차별·혐오 표현의 대상이 된 적이 있다'고 답했대요(민주당·지방자치발전소 등 '여성정치인 대상 폭력 실태조사'). 남성의원이 여성의원들 사진을 불법으로 촬영해 서로 공유하기도 했다는데, 믿어지시나요.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이 최근 별도사이트를 열고 '정치에서의 여성폭력 뿌리 뽑기 캠페인(Stop Violence Against Women in Politics)'을 시작한 것도 이런 정치권 성폭력의 오랜 역사 때문이더라고요.
여기엔 여성을 향한 일부 언론의 '논란' 딱지 붙이기와 갈등 부추기기 보도도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이슈에서도 드러난 성차별적 보도는, 여성 정치인·연예인·스포츠인 등 그게 유독 '여성'이었을 때 더 가혹했어요.
입은 옷이 뉴스가 된 류호정 의원, 청와대 비서관 발탁 뒤 공격받은 박성민 최고위원이 그랬죠. 올림픽서 안산 선수의 헤어를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 가수가 단지 페미니즘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었다는 이유로 기사화되고 손가락질 받던 사례도 기억나고요. 그때마다 제목에 '논란'이라며 검색어 장사에 나섰던 언론들. 클릭수가 그렇게 중요했다면, 가세연 유튜브와는 대체 뭐가 다른 거냐고 묻고 싶네요.
최근 화제인 드라마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에도 현실적이고 '뼈 때리는' 장면이 등장해요. 극 중 검사 출신 야당 4선 의원인 '차정원(배해선 역)'은 그 경력에 맞게 매우 카리스마 있지만, 그조차도 성차별을 겪습니다. 차정원은 라이벌인 문체부 장관 '이정은(김성령 역)'을 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없거든, 그런 여자는. 쉽게 뭘 얻는 여자는 없다고, 이 나라엔. 이정은(문체부 장관)이라고 쉬웠을까? … 온갖 것들을 견뎠겠지."
아무리 경쟁자라도 같은 분야에서 분투하는 여성이라 공감 가능한 부분이었겠지요. 이건 비단 정치 분야만의 얘기는 아닐 거고요.
그런데도 차별금지법은 계속 '나중에'로 미뤄지고, 여성가족부를 축소·폐지하겠다는 이가 대통령 후보로 활보하고 있어요. 저도 차별금지법과 여가부가 더는 필요 없는 사회를 환영합니다, 단 여성들이 죽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요. 그런데 현실은? 10월 25일 경찰청에 따르면, 최근 5년(2016~2020) 연인 간 폭력 신고 중 살인으로 검거된 것만 227명이었다고 합니다.
낙선 뒤 제가 잠 못 들때마다 펼쳐든 책이 있는데, 미국 역대 두 번째 여성 대법관이었던 루스 긴즈버그(Ruth Bader Ginsburg, 1933~2020)의 <긴즈버그의 말>이란 책예요. 평생 '차별'에 맞서온 그의 발언들을 읽다 보면 최전선에 있던 그가 어떤 마음이었을지 짐작해보게 됩니다. "내가 작은 성취나마 이룰 수 있었던 건 내 앞에도 뒤에도 여성운동가들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문장, 최근엔 이 앞에서 오래 머물렀네요.
긴즈버그는 자신이 페미니스트라는 걸 당당히 드러내고 자신보다 먼저 싸운 여성들에게 감사하는 걸 잊지 않았어요. 저도 그래보려고요.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라 말하는 게 두려운, 매우 어두운 시기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앞서 호주제 폐지 등 성평등을 위해 싸워온 선배·동료들에게 애정과 존경을 표해보려고요.
싸울 때 싸우더라도 힘들 땐 쉬자고, 그리고 당신이 혼자 있게 내버려 두지는 않겠다는 결심으로... 오늘 이 편지를 부칩니다.
▲당신에게 추천합니다: <긴즈버그의 말> 성평등과 소수자 보호에 평생을 바친 그의 지혜가 우리에게도 함께하길 바랍니다.
2021년 12월 8일
분투하는 당신을 응원하며, 혜미 드림.
첫번째 편지☞ 같이 걷게 될 당신, 멀고도 가까운 당신
두번째 편지☞ 이런 시대... 여자로 태어난 건 축복일까요
세번째 편지☞ 청년 부르짖는 정치인은 모르는 청년의 심각한 현실
네번째 편지☞ 길바닥 나앉은 목사, 청년 예수가 봤다면
다섯번째 편지☞ 노동자 과로사하는데... 윤석열 말에 한숨부터 나왔다
여섯번째 편지☞ '숏컷 괴롭힘' 사회... 아이를 낳고 싶다, 낳고 싶지 않다
일곱번째 편지☞ 늘어나는 비혼·비출산, 윤석열만 못 보는 현실
여덟번째 편지☞ 아프간 '난민'을 왜 내가 신경 써야 하냐고요?
아홉번째 편지☞ 여성 안 보이는 선거, 2022년에도 봐야 한다니
열번째 편지☞ 가족, 짐일까 힘일까... '정상' 너머 대안이 필요하다
열한번째 편지☞ 아파보니 알겠어요, 한국에 '돌봄'이 있나요?
열두번째 편지☞ 성범죄 무고 처벌 강화? 윤석열의 참 '후진' 약속
열세번째 편지☞ 뺏기고 내몰리는... '코시국' 여성 홈리스들의 삶
열네번째 편지☞ 다 괜찮으니까, 죽이지만 말라고요
* 혜미와 성애가 2주에 한 번씩 주고받으며, 격주 금요일 게재될 예정입니다. 이 편지는 문학동네 이슬아x남궁인의 연재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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