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처음 하는 것도 아닌데

by 최서연

연애 안 한 지 어언.. 만으로 6년.


흔히 말하는 쓰레기 컬텍터라는 별명으로 20대의 화려한(?) 연애사를 기록하고 그 마지막을 오지게 가스라이팅을 당하면서 연애에 질려버렸거든요. (아마 제 책 <단단하지만 뾰족하지 않은 마음>을 보셨다면 아시겠지만요. 이제 와서 밝히건대 거기에는 그 친구가 한 진짜 나쁜 행동은 적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글을 쓰는 사람이고 그걸 제 글에서 밝히는 게 일방적인 폭로나 비난으로 느껴질 것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찾아와서 뭐라고 할 거 같아서 너무 무서웠거든요.)


매번 나쁜 선택을 하는 제가 멍청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이 정도면 나한테 진짜 내가 모르는 끔찍한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계속 그런 애들만 만나는 걸 보니 이제 걔네가 문제가 아니라 그냥 내가 쓰레기인가 보다 아예 선택을 하지 말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연애라는 것이 결국 내 일과 글에 쏟을 에너지와 시간, 마음, 돈, 모든 것들을 갉아먹힌다는 기분만 들었어요. '그냥 가족한테나 잘하자. 남는 건 엄마 밖에 없어.' 하고 엄마와의 관계에 과몰입했던 시절도 있었고, 그래도 종종 누군가를 좋아하기도 했었는데 내가 대체 뭘 잘못하고 있는 건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어요. 사람을 보는 눈이 없는 건지, 아니면 누굴 봐도 장점만 엄청 크게 보고, 단점은 지나칠 정도로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이해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면서 모르는 척하고 지나가버리는 게 문제인지.


명상과 마음공부를 하다 보면 나에 대한, 또 타인에 대한 평가, 판단하지 않는 온전한 수용을 향해서 나아가자고 분명히 그랬는데,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건가? 이런 억울한 마음이 들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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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의 엉망징창 연애가 반복되면서 저는 우울증을 심하게 겪고, 계속 상담을 다녔습니다. 굉장히 힘든 일이 있고 나서 3-6개월 정도는 흔히 말하는 우울증이 맞는데요, 그 이상 길어지면 인생의 고통스러운 사건으로 인한 발병이라기보다는 내 사고방식 자체가 우울할 수밖에 없는 방향으로 설계되어 있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단순히 항우울제를 먹고, 간단한 면담을 하는 것으로는 근본적으로 나아지기가 힘들고 심층심리분석이라는 장거리 레이스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요즘은 기분이 어떠세요, 어떤 일이 있었나요, 그런 기분이었겠군요, 같은 상담과는 다르게 (물론 그런 상담도 충분히 도움이 됩니다! 다만 그렇게 하면 그때는 괜찮아지는 것 같은데 나에게 우울증이 반복되고 패턴화 되어 있는 것 같다면 고려해 보세요.) 이 상담은 일주일에 2번, 45분의 심층 상담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상담자가 저의 기분이나 감정에 대해서 무한하게 지지를 해주지는 않아요. 엄청 건조하고 객관적인, 중립적인 입장으로 저의 상담을 진행하게 되는데요. 무한한 지지를 해주는 선생님께 상담을 받은 기간도 있었습니다. 그건 일반 상담이었고 그게 어느 기간까지는 참 마음에 힘이 되는데, 내가 근본적으로 나아지지 않는데 이 사람이 앞에서 내 기분이 아 그럴만하죠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하는 것 자체가 지겹고 의미 없이 느껴질 때도 있거든요.


아무튼 이 상담 과정 자체가 나의 의식과 그 밑에 무의식에 들어있는 모든 것들을 꺼내서 대면해봐야 하는 과정이에요. 사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이제는 잘 덮어놓고 살고 있는 나의 트라우마나 진짜 안 좋은 기억, 절대 재현하거나 회상하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남들한테는 아무 일도 아닐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심장이 무너지는 일들도 얼마나 많은가요. 예전에 어떤 작가님이 제 글을 읽고 '사소하지만 아찔한 기억들'이라는 표현을 해주셨는데 저는 그 표현이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굳이 이런 것들까지 내가 왜 꺼내봐야 하지? 이미 과거에 일어난 일이라서 지금 시점의 내가 이걸 어떻게 수정하거나 해결할 수도 없는데!!' 하면서 가기 싫어서 울면서 억지로 간 적도 있고, 상담이 끝나고 나면 항상 진이 빠지도록 울고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웃으면서 필라테스 강사로서 일을 하기 위해 가야 했는데, 그 과정이 엄청 힘들었어요. 겨우 겨우 잔잔히 가라앉혀놓은 흙탕물을 굳지 꺼내서 막 흔들어놓고, 그게 가라앉지도 않은 상태로 웃으면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게 매번 버겁고 힘들었습니다. 그냥 그렇게 가라앉혀놓으면 적당히 잘 살아나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내가 이렇게까지 들여다봐야 하지? 그러면서도 1년을 다닌 건 그냥 나와의 약속이다라고 생각했고, 저는 그 약속을 꽤나 잘 지키는 편이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다행이죠?


상담한다고 해서, 내가 나도 모르는 마음에 숨겨놓았던 깊은 구석들을 꺼내본다고 해서 그게 당장 해결되거나 괜찮아지지는 않습니다. 사실 그런 걸 꺼내서 누군가 앞에서 솔직하게, 포장하지 않고 얘기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 힘들고 어렵고 용기가 필요하고 수치심을 감내해야 하는 일이에요. 그렇게 힘들게 말하고 나면 그게 내 눈앞에서 너무 선명하게 있어서 그걸 보고 있는 것 자체도 너무 힘들죠. 그리고 상담실을 나가면 흙탕물을 잘 가라앉히는 것도 나의 몫입니다. 그리고 꽤 비싼 상담료도 내야 해요!


이걸 일 년 내내 하면서 정말 수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정상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비용이 아무래도 너무 큰 거 같은데?라는 의문과, 왜 내가 모든 걸 다 해야 하지, 왜 선생님은 하나도 안 도와주지, 왜 선생님은 나한테 지지해 주는 입장으로 상담해주지 않지, 전에 일반 상담할 때는 따뜻한 말을 많이 해주셨는데, 그게 훨씬 나은 거 같은데, 선생님은 중립적인 입장으로 나와 상담하는 게 나에게 더 도움이 된다고 하셨지만 그건 선생님이 잘 못 판단한 게 아닐까? 아니면 이 상담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데 비싼 상담료를 내면서 따뜻한 말도 못 듣고 수습되지도 않는 힘든 기억만 계속 꺼내봐야 하고 이건 가스라이팅이 아닐까?????? 하는 오만가지 생각을 헤치면서 매번 상담실에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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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심각한 얘기가 되었지만 저는 그냥 연애 이야기를 쓸 거예요. 특별히 연애 안 하고도 그냥 지금처럼 행복하게 잘 살 수 있겠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저는 제 일도 너무 재밌게 하고, 글도 쓰고, 책도 내고, 그러면서 다양한 사람들도 적절히 만나고, 혼자 있는 시간도 재미있게 잘 보내고, 혼자서도 너무 즐겁게 잘 살고 있는 것 같아서 주변 사람들도 모두 혼자 있어도 될 것 같다고 했거든요. 그리고 저도 어느 순간에는 그냥 연애는 수많은 인간관계의 종류 중에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하기도 했고요.


근데 연애의 가장 중요한 점은 안 한 지 오래돼서 까먹고 있었지만 (그리고 그때는 저도 상대방들도 너무 미성숙했을 것이고) 내가 모르는 나의 구석들을 또 찾아준다는 겁니다. 저는 제가 꽤나 괜찮고, 잘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이제는 예전과는 다르게 꽤나 현명하고, 성숙하고, 생각이 깊고, 다른 사람들을 잘 이해하고, 잘 배려하고, 힘든 일이 있더라도 잘 지나가면서 글도 쓰고, 내가 하는 일도 잘 해내고, 나의 생활과 사는 공간, 인간관계들을 적당히 잘하면서 균형도 잘 잡고, 인생의 행복한 순간들을 잘 느끼고 기록하면서 살고 있다는 그리고 아주 마음 깊은 곳에서 '어쨌든 내가 맞아.'라는 약간의 오만함과 함께.


근데 연애를 하다 보니 제가 엄청나게 유치뽕짝이더라고요. 너무 싫었습니다. 유치하게 구는 거 너무 싫어!! 성장하지 못한 사람들 너무 싫어. 왜 여즉까지 어른이 못 된 거야. 어떻게 그렇게까지 어른스럽지 못할 수가 있는 거야. 아무리 그런 일이 있더라도 여기까지는 왔어야지. 하는 나도 모르게 마음속 깊이 숨겨져 있던 마음들이 나오면서 내가 싫어하는 것들과 내가 엄청 거리를 두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또 저는 회피형 인간들을 정말 싫어했는데요, 좀 더 정확히 얘기하면 30대 회피형 남자들을 싫어한 거겠죠. 근데 저의 가장 친한 남자 사람 친구 역시 그런 사람입니다. 가장 오래된 친구라서 저는 그 친구가 그러는 걸 이해하면서도 '근데 너는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되는데 왜?'라고 생각하며 놀라기도 했습니다. 근데 남이 어떻게 보든 자기가 겁이 나고 무서운 건 무서운 거잖아요.


그리고 방어기제가 너무 티 나는 사람들도 안 좋아해요. 회피형의 연장일 수도 있는데, 방어기제가 눈에 좀 보이더라도 그게 뻘쭘하고 어색해서,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조금은 미성숙하지만 그런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어서 그런 거면 괜찮아요. 근데 이것도 개인적인 판단 기준이죠. 어쨌든 다른 사람들한테 은근히 상처를 주는 방식이거나, 다른 사람들의 수치심을 자극하는 방식이라거나,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 한다거나 은근히 꼽주거나, 괜히 아쉽게 만들려고 한다거나 등등. 아주 교묘한 방식과 정도도 저는 귀신같이 감지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쓰레기를 많이 만난 것이 준 유일한 자산일까요? 그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이 있거든요. 사소한 말이나 선택하는 단어, 어떤 일에 대한 반응, 같은 일을 겪었을 때 그걸 받아들이는 방식과 대처하는 방식 등에서 그게 느껴집니다. (부록으로라도 한번 정리해 놓으리, 쓰레기 감별사의 판단 기준)


저는 그런 걸 엄청 싫어하니까 제 안에는 그런 것들이 하나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자격지심, 열등감, 자존감은 낮으면서 쓸데없는 자존심만 높아서 자꾸 남 지적하고, 자기 뭐 한 거 엄청 티 내고 포장하면서 안 그런 척하면서 티 내고, 뭐든 괜찮은 척하고, 비난에 엄청 예민하고, 모든 사람들이 나를 공격할 거라는 전제를 깔고 세상을 받아들이고 그렇게 반응하고, 틀린 거 인정하기 싫어서 고집부리고, 비판 잘하는 것처럼 똑똑한 척하고, 묻지도 않은 인맥 자랑, 물어볼 용기도 없고 말할 용기도 없어서 계속 이래 저래 사람 떠보고, 그게 다 티 날 것 같아서 가끔은 안 그런 척 쿨한 척 엄청 부족하고 소탈한 척도 번갈아가면서 하고, 그리고는 그 모습을 드러내 보인게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봐 이내 다시 방어기제라는 가면을 쓰고 나온다거나. 상처받기 싫어서 도망치고, 모르는 척하고, 쿨한 척하고, 먼저 선 긋고, 관심받고 싶어 하고, 그걸 또 티 낼 용기는 없으니까 또 괜히 사람 찔러보고.


물론 너무 티 나는 행동들은 저도 안 하죠. 내가 그런 모습이 되고 싶지 않으니까. 그래서 저는 제가 싫어하는 모습들을 저에게서 대부분 제거했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근데 마음에서 그런 게 스멀스멀 올라올 때가 있잖아요. 엄청 피곤하거나, 한동안 잘 참고 착한 마음으로 살기도 하고, 진짜 화가 치미는 순간에도 '그래 내가 더 성숙하고 현명한 거 같으니 내가 한번 더 참고 이해하마.' 라며 오만한 마음을 가져볼 때도 있고, 근데 계속 참으니까 나도 쌓이는 게 있고 열받는다!! 나도 사람이야!! 이럴 때도 있고. 그걸 이성으로 잘 누르고 있는 것뿐이죠.


그러니까 데미안에서 자기가 유독 싫어하는 모습들은 결국은 자기 안에 어떤 형태로든 있는 거라는, 사람은 자기가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흥분하지 않는다는 문장을 엄청 좋아해요.


저는 관종을 엄청나게 싫어했습니다. 다들 대단히 좋아하지는 않겠지만 그렇게 과한 것 말고도요, 아주 가까운 사람 중에 그런 사람이 있거든요. 그걸 한두 번 보면 괜찮을지도 모르지만 아주 오래, 자주, 모든 문제 상황에서 그런 대처 방식을 보면 진짜 질리게 됩니다. 그럼에도 저는 그 사람을 싫어하는 건 아니에요. 사랑하지만 그 모습은 도저히 킹 받아서 받아들일 수가 없어. 그레타 거윅의 영화 <레이디 버드>에서 '우리는 서로 사랑하지만 좋아하지는 않나 봐.'라는 대사 아시나요? 그래서 어디 가서도 그런 방식의 태도를 보면 어흑 하고 마음속으로 과잉반응이 생기면서 몸서리를 칩니다.


그리고 합리화를 진짜 싫어해요. 적당한 합리화와 자기 확신는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오은영 선생님도 그러셨다는데, 제 주변에 또 미친 합리화의 대가가 있었거든요. 그 사람도 사랑하지만 도저히 그 모습은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근데 제가 그러지 말라고도 얘기하지 못하는 건 그게 그 사람의 코어라서 그래요. 진짜 깊게 상처받을 만한 말은 오히려 피하게 되잖아요. 물론 싸우면 물불 가리지 않고 치부를 공격하는 사람도 있지만요. 저는 상대방이 진짜 무너질 만한 얘기는 오히려 하지 않아요. 아무리 머리끝까지 분노하더라도요.


어쩌면 그게 잘못된 대처였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런 생각하지 말고 차라리 얘기를 했으면 고쳐졌던 걸까? 근데 지금 생각해 보니 아마 그렇게 하면 더 큰 공격을 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자기를 지켜야 하니까. 본인이 그걸 조금이나마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시기가 왔을 때, 조금씩 조심스럽고 예쁘게 잘 얘기하는 것이 참 어렵고도 인내심이 필요한 일인데요, 요즘은 그 과정을 겪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과도하게 싫어하게 된 모습들은 저는 또 과도하게 피하고 안 하려고 하게 되겠죠. 그러면 또 과도하게 그 모습을 더 싫어하게 됩니다. 합리화가 너무 싫으니까 합리화를 아예 안 하려고 하다 보면 자기 의심, 자기 검열, 자책 이런 것들이 너무 심해져서 힘들어요. 그리고 굶어 죽겠으면 배고프다고 얘기를 할 줄 알아야 하는데 관종같이 굴기 싫다는 이유로 그냥 얘기 안 하고 굶어 죽을래 그게 더 마음이 편하고 수치스럽지 않아라고 생각하는 것도 전혀 건강해 보이지 않죠?


그러니까 그 수용이라는 게 참 어려운데요, 나의 마음에 안 드는 모습, 진짜 안 그러고 싶은 모습, 꼴 보기 싫은 모습, 숨기고 싶은 모습, 진짜 너무 제발 고치고 싶은 모습, 죽어도 끝끝내 말을 안 듣는 모습. 그런 모습들이 마음먹고 찾아보면 너무 많잖아요. 그런 걸 어떻게 수용하라는 건지. 본능적으로 싫은 사람을 억지로 좋아하라는 거랑 똑같잖아요. 뭐 맘먹고 좋아하려고 하면 또 좋아할 수도 있겠죠, 근데 그러는데 에너지가 지나치게 많이 소모가 되잖아요?


저는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해 봤는데, 수치심을 극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내가 진짜 싫어하는 그 모습이 한 번쯤은 되어보는 겁니다. 아무도 신경 안 쓸 텐데 나로서는 평생의 윤리 의식을 내려놓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근데 기꺼이 해보는 거예요. 그러면 의외로 그 사람이 왜 그렇게 까지 했는지, 조금은 이해하게 됩니다. 그리고 어떤 감정이든 인생에서 조금은 다 필요한 것이라는 것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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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또 무거워졌지만 저는 연애 얘기를 쓸 거예요. 새로운 나의 모습들을 대면하면서 생각으로 무거워지기도 하고, 진짜 남들과 다를 바 없는 유치뽕짝의 연애로 즐겁기도 가볍기도 한 그 이야기들을 쓸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