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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seongi Kim Dec 31. 2018

시간은 금.

그녀는 전이성 유방암 환자였다.

호스피스 내원 첫 면담 시-수척하고 사지가 마른 그녀는 꼿꼿하고 당차게 말했다.
"나는 여기에 숨차고 아픈 것 때문에 왔어요. 그것만 없애 주세요."  

"그녀는 스스로 '암'에 걸렸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의식적인지 무의식적인지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정말 힘들어요.."
가족 면담시간에 그녀의 남편은 한없이 지친 목소리로 이렇게 호소하였다. 
나는 이전 대형병원의 혈액종양내과의사가 기록해 놓은 진단서와 소견서 및 경과기록지를 쭉 읽었다. 서류에는 그녀가 임신 시 유방암 진단을 받았고, 출산 후에 항암치료를 시작하려고 했는데, 그녀 본인이 완강하게 거부하여,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았다는 내역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결국엔 정신건강의학과도 그녀의 불순응에 진료를 포기했고, 어쩔 수 없이 혈액종양내과의 사는 항암치료를 하지 못하였다.


이전의 여러 검사와 신체 진찰을 통해 확인한 바, 그녀는 뼈 전이와, 폐 전이가 있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았다. 지속적으로 숨찬 증상과, 통증을 호소하였는데, 대학병원에서의 치료를 받지 못함으로, 여러 병원을 전전하였다. 하지만 결국엔 스스로 암환자라고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제대로 된 통증 및 증상 완화에 도움을 못 받고, 힘들어하였다., 그런 육체적인 통증은 가족의 역학에도 영향을 미쳐, 남편은 지칠 때로 지친 상태였다.


모르핀을 주어야 했다.
통증과 숨찬 증상에 현재 이 약보다 더 좋은 약은 없다.
하지만 그녀는 암환자가 아니기 때문에, 모르핀을 맞을 수 없다고 했다. 이해할 수 없지만 감내해야 했다. 천천히 시작해야 했다. 그러나 그녀의 호르몬 수용체, 성장인자 수용체 결과를 아는 나의 머리엔 그녀가 조금 더 비껴 서서, 혈액종양내과의 치료를 받으면 생존기간과 삶의 질이 '훨씬 더' 좋아질 것이라는 '의학적 사실'에 마음이 급했다. 모르핀 대신 다른 진통제와 이뇨제를 시작했다. 다행히 그녀의 증상은 다소 호전되었고, 그로 인해 의사와 환자 관계의 라포는 아슬아슬 유지되었다.


"선생님, 저는 여기를 나가고 싶어요, 아들을 계속 봐야 해요. 걔는 내가 없으면 안 돼요"
그녀는 외박을 원했다. 아들이 너무 보고 싶다고 했다. 그토록 원했던 자식을 가졌을 때, 들었던 '암 선고'는 그렇지 않아도 약했던 그녀의 정신을 송두리 채 앗아가고, 올 곳은 아들에 대한 생각이 그녀의 '암'에 대한 인식을 올 곳이 빼앗 아가 버렸다. 현실에 대한 부정을 통해 그녀는 갓 태어난 아들을 계속 키울 수 있어야 한다는 어미로서의 본능을 유지시킨 것이다. 하지만 몸은 쇠약해지고, 아팠다. 그럴수록 부정의 강도는 점점 심해졌다.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끓어야 했다. 난 많은 문헌을 조사하고 읽었고 더불어 호스피스의 선생님들과 상의하고, 정신과 친구와 내가 아는 심리 상담사 선생님들께 자문하였다. 여러 이야기가 나왔다. 여러 정신과적인 약물 및 상담 치료. 하지만 핵심은 환자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 이야기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이끌어 환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제공해주는 것이었다. 그것은 일견 '항암 치료'인 것 같지만, 사실 그것이 제일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항암 치료'는 어떻게 보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그녀에게 중요한 것들을 해줘야, 우리가 필요한 것들이 나올 수 있었다. 호스피스 사정으로 내가 다른 병동으로 옮긴 사이에도 우리 의료진은 지속적으로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환자 보호자를 위로하였다. 그녀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내원 전 보다 많이 호전되어 '퇴원'하였다. 그녀가 퇴원하여 다시 큰 병원의 혈액종양내과로 가서 항암치료를 받았는지는 잘 모른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그녀의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그녀에게 이전의 의료진보다 조금 더 세심하게 접근했고, '시간'을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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