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세상에서 자존심보다 중요한 한 가지
요즘 카페를 가면, 주문대신 서 있는 ‘기계’가 반겨줍니다.
‘키오스크’.
손가락으로 몇 번만 누르면 커피가 나오지만,
그 몇 번이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겐 여간 버거운 일이 아닙니다.
며칠 전, 한 자영업자가 온라인 커뮤니티에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노인 손님께 키오스크 사용법을 알려드렸더니 화를 내셨습니다.”
손님은 “내가 교사까지 한 사람인데, 날 무시하냐”라며 목소리를 높였다고 했습니다.
글쓴이는 “어머니 생각도 나서 도와드리려 했는데, 괜히 오지랖 부린 것 같다”고 말했죠.
이 짧은 사연은 금세 화제가 되었습니다.
댓글에는 “알려주면 고마운 일이지”라는 말도,
“자존심이 상하셨겠지”라는 공감도 섞여 있었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읽고 오래 마음이 머물렀습니다.
왜냐면, 그 ‘교사였던 어르신’의 마음이 이해됐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도와주려던 젊은 사장님’의 마음도 이해됐거든요.
예전엔 나이 들수록 존경받았습니다.
경험이 많고, 지혜가 쌓인 사람으로 대접받았죠.
하지만 지금은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손끝 하나로 결제하고, 앱 하나로 모든 걸 해결하는 시대.
젊은 사람들은 그 속도를 당연하게 받아들이지만,
우리 세대에겐 따라잡기 버거운 변화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해서, 세상이 우리를 기다려주진 않죠.
그래서 결국 필요한 건,
‘자존심’보다 ‘배우려는 용기’입니다.
모르면 배우면 됩니다.
그건 창피한 게 아니라, 아주 멋진 태도입니다.
처음 스마트폰을 배우던 날, 손가락으로 화면을 잘못 눌러 당황했던 기억…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잖아요.
사실, 배움이라는 건
언제나 ‘나보다 어린 누군가’에게 배우는 순간이 생깁니다.
이제는 손주에게서 키오스크 주문법을 배우고,
아들에게서 모바일뱅킹을 배우는 시대가 되었죠.
처음엔 괜히 마음이 쓰릴지도 모릅니다.
“내가 예전엔 그 아이들을 가르쳤는데,
이젠 그들에게 배워야 하다니…”
하지만 그건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그건 ‘세상과 다시 연결되는 과정’이니까요.
저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나이가 든다는 건,
‘모르는 걸 인정하는 법’을 배우는 일 아닐까.
젊을 땐 자존심이 앞서서 몰랐다고 말하기 어려웠지만,
이젠 솔직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건 잘 모르겠어요. 가르쳐주세요.”
그 한마디는 관계를 열고, 세상과 나를 다시 이어줍니다.
자존심은 잠시 세워두어도 괜찮습니다.
그 대신 ‘배움의 문’을 닫지 않으면 됩니다.
요즘 세상은 기술이 빠르게 바뀌지만,
그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게 하나 있습니다.
바로 사람의 마음입니다.
누군가 진심으로 알려주려는 마음,
그리고 배우려는 마음.
그 두 가지가 만나는 순간, 세상은 조금 더 따뜻해집니다.
오늘 카페에서 키오스크 앞에 서 있다면,
조금은 천천히 해보세요.
그리고 혹시 누가 다가와 알려준다면,
“고맙습니다. 또 하나 배웠네요.”
그렇게 말해보세요.
그 한마디가,
디지털 세상 속에서도 품격 있는 나이 듦의 시작일 겁니다.